연지동 일기2
밤새 잠을 설쳤다.
너덜너덜해진 내 눈앞에 아내가 복권 한 장을 내밀었다.
3등, 무려 3등에 당첨된 복권이었다. 여섯 개중 다섯 개를 맞혔다고?
나는 흐릿한 의식 속에서도 휴대폰을 켜고 몇 번이나 번호를 맞춰보았다.
3등이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혹시 1등이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젊은 시절엔 복권을 사지 않았다. 요행을 바라는 건 죄악이라 여겼다.
꽤 시간이 흐른 후, 어쩌다, 아주 어쩌다 한 번씩 복권을 샀다.
회식같은 것이 있던 날, 동료들에게 휨쓸렸던 까닭이다.
하지만, 텔레비전 앞에 앉아 복권 번호를 맞춰보다가, 나는 그것이 불가능 판타지임을 깨달았다.
여섯 개는 커녕 한 개의 숫자도 맞히기 힘들었다.
이후로 복권을 사지 않았다. 일주일의 행복이라는 말은 당첨되지 못한 자들의 자기위로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불가능에 배팅하는 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누군가는 당첨되지 않느냐고 사람들이 말했을 때도, 지나치게 적은 확률은 무(無)일 뿐이라는 나의 확신을 거두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의 복권당첨 이후로,
나도 이 희망의 대열에 합류할까 한다. 다섯 개의 숫자가 연속으로 일치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니, 나도 미래의 희망과 기대를 소유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가만 되돌아보니 나는 희망이나 꿈 따위를 품거나, 그것을 향해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요행이 싫다고 했지만, 그러면서도 사실 노력은 하지 않는 모순된 사람이었다. 몇 번 헛방을 짚다보면 또다시 나의 희망을 거둬 들일지 모르지만, 웬만하면 나의 희망을 지속시키려 한다.
이제 늙어서 다른 노력은 하기도 쉽지 않고 하고 싶지도 않다. 요행에라도 기대지 않으면 삶이 너무 뻔할 것 같다. 어려운 형제들에게 돈도 조금씩 나눠주고, 지인들에게 맛있는 거 맘껏 사주고 싶다. 조카들 만날 때마다 용돈을 주고싶고 비싼 오디오도 사고 싶다. 15년 지난 자동차도 바꾸고 싶다. 일주일에 5천원, 한달에 2만원. 신문 구독도 한달에 2만원인데, 지금 이 순간, 나에겐 신문구독보다 복권구매가 더 다정해 보인다. 희망 혹은 요행을 사는 돈 한달 이만원. 이제 다른 데서 이만원의 지출을 줄여야한다.
오후,
컴퓨터를 켜고 유튜브를 보려는데 키보드 뒤에 노란 알약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전날 저녁에 먹었어야 할 약 네 알 중에 한 알을 빠트리고 먹은 것이다.
밤새 잠 못들고 뒤척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래,
내 삶에 실수가 있었더라도 희망은 나에게로 왔다.
불면 속에서도 로또의 행운은 비켜가지 않았다.
조금 괴로운 일이 있더라도 희망마저 버릴 필요는 없다.
그것이 비록 요행일리자도 뭔가 기대를 갖는 일이 나쁠 이유는 없다.
나의 괴로운 불면과 아무런 인과관계 없이 희망이 내게로 오지 않았는가.
꼭 1등이 아니면 어떤가.
모든 흥분이 가라앉은 저녁,
숫자 하나 때문에 25억원이 날아갔다고 탄식하니 어린 딸이 한마디 한다.
- 감사해라, 감사해. 백 오십만원이 어디고.
#복권#행운#요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