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동 일기3
어린 딸과 대학병원에 갔다. 정기검진이다.
딸은 번거로운 혈액검사도 잘 해내는데 늘 소변검사가 문제다.
나이가 어려서인지 종이컵에 소변을 받는 일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종이컵을 받아든 아이는 벌써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나는 미리, 천천히 해도 돼, 라고 말하며 마음을 진정시킨다.
이전에도 소변 검사를 힘들어했던 적이 많기 때문에
아이에게 안정을 주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화장실에 들어간 아이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아이보다 늦게 들어간 사람들이 몇 차례 순환이 되어도 아이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참 후에야 머쓱하게 나온 아이는 빈손이다. 실패다.
나는 괜찮다고 위로하며 좀더 한적한 화장실을 찾는다.
주로 직원들이 이용하는 병원 구석의 한산한 화장실이다.
화장실 밖의 소란스러움이 아이를 더욱 긴장시킬까봐 염려되었다.
다시 실패다.
어쩔 수 없이 의사를 먼저 만나 지난 번 검진결과를 들었다.
그러고서 아이는 다시 화장실로 갔다.
10분, 20분... 드디어 성공이다.
아이는 마침내 해냈다는 흐믓한 표정으로 종이컵을 들고 다가온다.
발걸음도 가볍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재차 괜찮다고 격려한다.
물론 짜증이 날 때도 있다.
하지만 어두운 화장실에서 혼자 끙끙대고 있었을 아이를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불편한 기색을 드러낼 수 없다. 나까지 짜증을 내면 아이는 아주 힘들 것 같다. 빨리 소변을 보지 못했다는 자책감, 아빠를 오래 기다리게 했다는 사실에 대한 미안함 같은 것 말이다.
빨리 소변을 보지 못해 당황했을 아이가 나보다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즉문즉설을 하는 법륜스님에게 어느 여자가 고민을 털어놓았다.
- 아이가 고등학생인데 말을 하지 않습니다. 뭘 물어봐도 통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도와주고 싶은데, 도대체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정말 답답해서 미치겠습니다.
스님이 대답했다.
- 봐라, 엄마가 못됐네. 아이가 말을 하지 않는데, 엄마라는 사람이 자기 답답한 것만 생각하네.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는 얼마나 답답하겠노. 엄마라면 아이의 답답함을 먼저 생각해야지...
내가 힘들 때,
나를 힘들게 하는 그도 힘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는 것이
나의 힘듦을 덜어주는 치유의 첫걸음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