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첫 주식은 기아차
“정상병님, 오늘 기분이 좋아보이십니다.”
“하하. 주식이 계속오르네?!”
나는 자랑거리가 있으면 떠벌리는 편이다. 입이 가만있질 못한다. 내 분주한 입 때문에 주식을 하는 선, 후임들이 내 주위로 모여들었다. 그 중에는 김일병도 있었다. 낮음 음성에 나긋나긋한 어투, 군인들 사이에서는 뿔테가 유행이었지만 김일병은 무광 은색인 금속테를 쓰고 있었다. 그는 우리 부대에 몇 안 되는 행정병이었다. 문서작업을 마치고 나면 하늘을 보면서 담배를 피곤했다. 게다가, 서울의 유명 S대의 경제학과를 다닌다는 말을 듣게 되었고, 학교를 듣는 순간, 김일병의 외모와 어투 등 모든 것들에 믿음이 가기 시작했다.
주식을 처음 시작한 건 군인이었을 때였다. 내가 입대한 2008년엔 서브프라임발 금융위기가 있었다. 이, 일병 생활을 정신없이 보내고 있던 나는 이런 상황을 체감할 겨를도 없었다. 조금 편해지기 시작한 상병부터 뉴스에 흘러나오는 이슈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현재 주식이 바닥이라는 말들도 들려왔다. 그 순간, ‘저거다!’ 내 머릿속에서 든 생각이었다. 진급을 할수록 심심해지는 군생활에서 주식은 신나는 군것질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곧 상병진급휴가를 나갔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키움증권 HTS프로그램을 노트북에 설치했다. 내 통장의 잔고는 70만원. 국방부 시계는 쉼없이 돌아갈 것이고 그동안에 나는 치킨 값을 벌어볼 생각이었다. 모든 주린이가 그렇듯이 오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만 꽉 차 있었다. 2009년 4월에 나는 주식계좌를 개설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HTS 아이콘을 클릭했다. ID와 비번 입력화면이 떴다. 숨이 살짝 가빠졌다. 주식을 처음 시작한다는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리니지를 처음 접속했을 때만큼의 설렘이었다. 드디어 입성. 주식 창에 기능들은 왜 이렇게 많은지, 눈이 어지러웠다. 일단, 머리속에 떠오르는 기업들을 관심목록에 하나씩 등록했다. 산업군별로 정리한다는 개념도 없이, TV에서 본 회사들을 나열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정리한 기업은 20개.
기아차 옆에 적힌 8,000원이 내 눈에 들어왔다. 다른 기업들은 모두 1만원 이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시가총액이란 개념도 없이 가장 저렴해 보이는 기아차에 매수버튼을 눌렀다. 내 인생의 첫 주식 종목.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유례없는 주식 상승장을 만나게 될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복귀 후, 나는 매일 저녁식사를 급하게 해치우고 사지방*으로 달려갔다. 포털사이트를 열고 기아차를 입력하기 전에 양손바닥을 비비며 항상 심호흡을 했다. 토요일에 로또 복권을 앞에 둔 사람처럼 말이다. 누가 보면 억단위로 투자한 사람의 모양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때 나에게 기아차 주식은 다음날을 기다리게 만드는 유일한 것이었다.
내 기아차는 거의 매일 상승했다. 결과가 좋으면 다 내 능력 덕분인 거다. 잘되면 내 탓, 안되면 남 탓이라는 자기위주편향이 어김없이 발동했다. ‘역시, 나는 잘해’라는 생각에 군생활도 즐거워졌다. 착각은 자유라고 했었나. 사실, 2009년 4월부터는 어떤 종목을 샀어도 오를 시기였다. 이런 사실은 보이지 않고 모든 공을 나에게로 돌렸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돈이 더 있었으면 대박 쳤을 텐데’
‘나한테 투자자의 기질이 있나?’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주린이가 돈을 벌면 꼭 하는 행동이 있다. 사람들한테 자랑하면서 맛있는 거 쏘기. 70만원이 5% 올라봐야 3.5만원인데 그날 번돈보다 더 큰 비용으로 회식비를 지출한다. 자기 기분이 더 중요한 거다. 그날도 나는 후임들을 불러모았다. 주식도 올랐고 다음 날은 내 병장휴가였기 때문이다.
“오늘 회식이다! 냉동파티!”
나는 만두, 떡갈비와 사발면을 배부르게 먹고나서 담배를 피려고 밖으로 나가던 중이었다. 누군가 나를 따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정병장님, 내일 휴가나가십니까?”
모든 것이 믿음이 가던 김일병이었다. 우리는 서로 담뱃불을 붙여주었고 대화주제는 주식으로 흘러갔다.
“아직도 기아차 들고 계십니까? 항암치료제 관련 주식이 있는데 이게 괜찮습니다.”
“항암치료제?”
“네, 적어도 3배는 갑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린이의 귀를 열게 하는 정보였다. 이번엔 제대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자자의 기질이 있다고 믿고 있는 나에게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휴가를 나가자 마자 나는 기아차 절반을 정리하고 김일병이 말한 종목을 매수했다. 그 후로 감정의 롤러코스터가 시작됐다. 내가 바이오 테마주에 물린 것이다.
그 종목은 10%이상의 포인트로 상승 하락을 1주일간 반복했다. 그날의 주식 수치에 따라 내 다음 날의 감정 상태가 결정됐다. 포인트가 떨어지는 날엔 멍하니 담배나 피고 오르는 날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말 그대로 일희일비. 내가 이 주식에 너무 휘둘리고 있는 것 같아서 정리하고 싶었지만 군대 안에 있었기 때문에 주식을 팔 수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한가 한 방을 맞았다. 하… 잃어봐야 15만원 정도였지만, 이건 기분의 문제였다. 나는 김일병을 공중전화 박스로 불렀다.
“버티셔야 합니다.”
김일병이 내린 결론이었다. 중저음 음성이 주는 안정감에 나는 다시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주린이가 택하는 마지막 선택이자 자기 합리화. 소위 말하는, 존버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얼마 후, 나는 군을 제대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한가 두 방을 맞았다. 눈물의 손절. 그놈도 손절.
*사지방: 사이버지식정보방의 줄임말로 군인들이 18:30~21:00 까지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말한다. 게임은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