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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사 key Aug 12. 2020

05. 유치원에서 최고이던 아이, 학교에선 천덕꾸러기

 정후는 **초등학교 1학년이다. 반듯한 자세로 우렁차게 발표하여 공개수업 때나 행사 때마다 눈에 띄는 아이다. 친구 어머니들은 입을 모아 “정후처럼 똘똘하면 얼마나 좋을까요?”라고 말한다. 복도에서 다른 반 선생님들을 만나면 어찌나 씩씩하게 인사를 하는지 선생님들의 칭찬 또한 자자하다.
 이 모든 말을 들을 때마다 김교사는 살짝 미소를 지을 뿐이다.
 작은 일에도 우리 반 자랑하기 바쁜 김교사인데 이유가 뭘까?
 정후는 교실에서 친구들과 늘 마찰을 빚는다. 아이들의 말을 무시하고 소리 지른다. 선생님이 보실 때와 안 보실 때 눈치껏 다르게 행동하여,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친구들은 정후의 먹잇감이 되기 일쑤다. 갈등이 발생했을 때, 말이 막히고 눈물부터 나오는 친구와는 달리 씩씩거리면서도 본인 위주의 할 말은 다 한다. 선생님 몰래 친구를 흘겨보며 주먹을 보이고 협박하기도 한다. 수업시간 늘 산만하여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며, 발표 참여도 들쑥날쑥하다. (물론, 적극적으로 발표할 때의 모습은 모두가 알고 있는 그 모습이다.)
어른들이 어떨 때 사랑을 주는지, 칭찬을 해주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아이다. 문제는 이 부분을 교묘히 이용하여 친구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횟수가 잦아지고 있다는 거다.
상담 전화를 건 담임교사에게 정후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우리 정후는 다들 부러워하는, 엄마의 자랑인 아들이에요. 유치원 때까지 문제는커녕 칭찬만 받던 아이를 갑자기 문제아인 것처럼 말씀하시니 당황스럽네요.”

 건호는 첫날부터 눈에 띄는 아이였다. 쉬는 시간만 되면 사라져 모두가 건호를 찾아 헤매기 일쑤였다. 도서관에서, 운동장에서, 심지어 교장 선생님 손에 이끌려 온 적도 있다. 1학년 아이들의 특성상 초반엔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시간이 흘러도 건호는 변하지 않았다. 교사의 반복되는 설명과 지시에도 불구하고 책상 정리, 자기 물건 관리는 계속 제자리걸음이다. 자신만의 세계가 강해 친구들과의 관계에도 빨간불이다.
상담 중 눈물을 훔치던 건호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선생님, 전 아이가 이 정도인 줄 지금껏 몰랐어요. 졸업식 날, 유치원 선생님께서 ‘어머니, 건호는 학교 가면 선생님께서 좀 힘들어할지도 모르겠네요.’ 라길래 뭔가 문제가 있나 보다 그때 처음 짐작했을 뿐이에요.”

 교사로서 1학년 학부모와의 상담 시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은 바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입니다. 겨우 학교생활 조금 했을 뿐인 우리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니 쉽게 인정될 리 없고, 객관적인 평가를 받는 최초의 경험인지라 아이의 문제행동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기 때문이지요. 유치원 때까지 아이의 문제행동을 발견하지 못한 경우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유치원 선생님도 몰랐다.

 극히 드문 경우이긴 합니다. 몇 달 새 아이가 급변하는 경우란 거의 없으며, 아이와 밀착 생활하는 유치원 선생님도 모를 정도로 작정하고 속이기엔 아직 어린아이죠. 초등교사만 문제행동으로 인식했다면, 이는 문제에 대한 인식의 범위가 달라서일 겁니다. 초등학교는 1~6학년까지 아이들이 모여있는 곳이지요. 다른 학교급에 비해 학생의 연령층 또한 다양합니다. 유아의 특성부터 사춘기 아이의 특성까지 모두 경험하는 것이 초등교사지요. 이러한 경험은 훗날 문제 될 수 있는 인성 관련 부분을 잘 찾아내게 합니다. 규칙 안에서의 단체 생활을 가장 가까이, 오랜 시간 관찰하고 있기도 하고요. 아이의 현재 행동에 대한 데이터가 교사의 눈엔 미래의 가능성으로 연결됩니다. (낙인과는 구별된 개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나이가 어릴수록 ‘지금 발견되어 다행이다’ 말합니다.     


 2. 알았지만 부모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유치원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선생님에 따라 허용의 범위를 넓혀 문제점을 지적하고 고치기보다 아이가 다른 친구에게 긍정적인 모습으로 비칠 수 있게 좋은 점에 중점을 두고 지도하셨을 수 있습니다. 유치원은 학교보다 돌봄의 성격이 강합니다. 학부모의 요구사항도 다양하고 구체적입니다. 자칫 잘못 말을 꺼냈다가는 양쪽 부모로부터 끝없는 싸움에 휘말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다정함과 따뜻함을 가장 많이 요구받는 자리기에 누군가 티 나는 피해를 보지 않는 한 교사 선에서 타이르고 마무리 짓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에 반해 초등학교는 유치원보다는 규율의 정당성을 보장받고 있습니다. 규율을 벗어난 문제행동 발견과 규율적용이 유치원보다 빠르고 쉬울 수 있지요.     


 3. 학교 적응에 어려움이 있다.

 이 경우는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등교 거부와 같은 학교나 친구, 선생님에 대한 문제를 안고 있는 건 아닌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알아보아야 합니다. 단순히 낯선 것에 대한 일시적 부적응일 수도 있지만, 학교 폭력과 같은 중대 사안과 관련돼 있을지도 모릅니다. 특히 어린 아이들일수록 작은 말장난도 큰 상처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교사, 부모와의 충분한 대화가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또한, 유치원에서는 허용되었으나 학교에서는 허용되지 않은 행동일 수 있습니다. 이 경우는 유치원과 구별되는 규칙과 기준을 반복적으로 알려주면 됩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스스로 성장하고 적응해 가며 자연스레 사라지는 행동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담임교사로부터 전해 들은 내 아이의 문제행동. 하늘이 무너진 듯 눈앞이 캄캄한 이때. 부모가 해야 할 현명한 대처는 바로 교사와의 소통입니다. 아직 충분한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선생님, 제가 30분 후에 다시 연락드려도 괜찮을까요?” 양해를 구해도 좋습니다. 또한, 경황없는 와중에 놓치는 내용이 생기지 않게 질문거리를 정리하여 메모해 놓도록 합니다.

   

 <소통 key>     

 1.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판단을 정확히 구별하라.

 문제행동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질문을 합니다. 내 아이 일에 감정이 100% 배제될 순 없지만, 흥분은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습니다. 요즘은 선생님들도 상담일지에 문제행동 발생 직후 객관적이고 정확한 사건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명확히 사실을 확인하고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질문은 구체적일수록 좋습니다.

“친구들을 때린다거나 하는 폭력적인 모습이 하루에 몇 번 정도 보이나요?”

 (‘자주’, ‘많이’ 보다는 정확한 수치를 확인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그런 반응을 보이나요?”

 (기질적인 문제인지 상황의 문제인지를 파악합니다.)

“특정 친구에게만 그러나요, 모든 친구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나요?”

 (대상의 범위를 정확히 파악합니다.)

“선생님께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하셨는데 이건 OO이가 말한 건가요, 선생님의 생각이신가요?”

 (교사의 주관적 생각과 객관적 사실을 구별합니다.)

 이때 주의할 점은, 선생님의 대답 하나하나에 내 아이를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참아야 한다는 겁니다. 부모는 지금 아이의 변호사로 상담 중인 게 아니지요. 교사를 이겨서 수입이나 명성을 얻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교사가 기필코 이겨야 하는 상대도 아닙니다. 지금은 정확한 사실 파악이 우선입니다.

 “그 친구가 먼저 어떤 행동을 한 건 아닐까요?”

 “그럴 애가 아닌데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이런 말은 잠시 참으십시오. 지금 단계에서 이런 말이 시작되면 정확한 진단은커녕 교사와의 감정싸움으로 이어질 뿐입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정확한 내용 확인입니다. 추측과 의구심 확인은 그다음입니다.     


 2. 이런 모습도 저런 모습도 다 내 아이다. 

 부모가 알고 있던 예쁜 모습은 거짓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유치원 선생님이 전해주던 이야기도 내 아이 이야기고, 지금의 담임선생님께서 전해주는 이야기도 내 아이 이야기입니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내 아이를 이루고 있는 각각의 모습인 거지요. 그중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행동을 바로 잡아, 바르게 흘러가도록 방향을 틀어 주는 게 바로 부모와 교사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부모는 보통 자신의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아이를 다그치다 급기야 심한 말까지 하게 됩니다. 분노는 후회로 남고, 후회는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합니다. 일단 받아들이십시오. 아이니까 그럴 수 있고, 늦지 않게 발견하였음에 안도해야 합니다. ‘아이, 선생님과 함께 노력하며 고쳐 나가면 되는 거지.’ 스스로 다독이십시오. 마법처럼 마음이 진정되면서 대책 없이 눈물만 흘리는 내가 아닌 행동하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3. 탓할 대상을 찾지 말라.

 선생님으로부터 상황을 파악했다면 다음은 아이와 함께 사실 확인을 해야 합니다. “너 똑바로 말해, 거짓말이기 만 해봐”, “정말 네가 그랬어? 아니지? 걔가 먼저 그랬지?” “그러니까 선생님이 잘 알지도 못하고 너한테만 그런 거네?” 이런 질문은 사실 확인은커녕 거짓된 정보를 조장합니다. 아이들은 귀신같이 눈치채지요. 이 순간이 바로 빠져나갈 기회임을.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아이의 표정과 그걸 바라보며 약해져 가는 부모의 마음은 곧 교사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집니다. 모든 잘못이 교사 또는 상대 탓이 되는 순간이지요. 문제는 아이도 함께 그렇게 믿게 된다는 겁니다. 내 잘못이 아닌 다른 사람 잘못이라고. 한 번 이렇게 빠져나간 아이는 앞으로도 모든 일에 있어 이와 같은 생각을 적용합니다. 항상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탓하는 아이가 되는 겁니다. 처음부터 ‘우리 아이 잘못은 없어.’란 전제로 시작하면 답은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엄마는 이때만큼은 아이에게 상담자가 아닌 냉철한 형사로 다가가야 합니다. (이때, 아이를 다그쳐서는 안 됩니다. 객관적 사실관계만 파악하세요.) 물론 어떤 경우엔 내 아이가 억울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교사 또는 상대의 잘못된 판단과 행동이 문제의 원인일 수도 있지요. 이런 경우를 위해서라도 앞에서 말한 단계를 꼭 거쳐야 합니다. 교사와 아이를 상대로 한 객관적 상황 파악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거지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하면 내 아이의 문제행동은 더욱 커져만 갑니다.

 

 사실 파악이 끝났으면 이제 문제의 원인을 찾으면 됩니다. 원인이 여러 개라면 가장 큰 것부터 시작하는 거지요.  

‘교육의 수준은 교사의 수준을 넘어설 수 없고, 아이의 수준은 부모의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고 하죠. 지금부터가 바로 교사와 학부모의 높은 수준을 보여줄 때입니다. 문제행동 해결은 담임선생님과 학부모가 함께 꾸준히 소통하며 장기전을 불사르겠다는 각오로 임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어떻게 도우면 될까요?”라고 묻는 학부모에게 교사는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제시해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들지요. 아이와도 교사, 학부모의 계획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작은 성공에도 큰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아야겠죠. 남은 건 인내와 기다림입니다. 그렇게 아이는 성장합니다. 우리가 그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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