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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정민 Oct 30. 2022

첫인사를 건네다

책방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 아이, 학생, 취업준비생, 직장인, 프리랜서, 주부, CEO, 어르신, 남녀노소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다. 그래서 책방은 진로 체험장이 되기도, 인사이트를 얻거나 영감을 받는 배움의 장이 되기도, 삶의 무게가 버겁고 고민이 깊은 이들에게 안식처가 되기도 하는데 목적은 달라보여도 의미는 하나로 통한다. 최인아책방의 슬로건 ‘생각의 숲’이다.


생각의 힘을 길러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이자 공통적인 질문도 하나이다. 어떻게 해야 잘 살까? 누군가는 쉽게 오지 않는 기회를, 누군가는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현실을, 누군가는 갈림길에서의 선택과 내일을 고민한다. 고난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고 우리는 저마다의 사연으로 삶의 무게를 지고 이미 매일을 애쓰고 있어 마음 편히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라 외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번쯤 좋아하는 일을 찾아 다른 길로 들어서봤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나 또한 경력과 연봉을 뒤로하고 책방으로 왔다. 곧 과장 진급을 눈 앞에 두고 있었고, 연봉 앞자리가 바뀔 타이밍이었다. 회사는 외국계의 한국 지사로 변모하면서 나날이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고 따라서 성과금과 복지 정책도 개선되고 있었다. 그럴듯한 조건같지만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냐에 따라 그 의미는 크게 달라진다.


일을 좋아하는 이유도 일 그 자체, 동료, 수익, 안정성, 성취감, 사명감처럼 저마다 다르니 나에게 '좋은' 조건도 모두 다를 수 밖에 없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기준이라고 해서 나에게도 무조건 좋을리 없는데 이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쉽게 잊고 산다.


여섯살엔 개미 연구자, 일곱살엔 요리사, 여덟살엔 유튜버가 되고 싶은 아이들은 계속해서 꿈이 변해간다. 새로운 세계가 아이들 앞에 계속해서 열리기 때문인데 어른들도 그래야 마땅한 것 아닐까? 나에게도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들이 드나들며 취향이 바뀌는데 원하는 삶인들 변하지 않을리 없다. 직업 체험을 하는 아이들처럼 어른들에게도 문학, 예술, 인문, 사회 다양한 분야를 접하면서 계속해서 나를 발견하고 변하는 나를 마주하는 기회가 필요하다. 나는 최인아책방이 그런 공간이라 생각하기에 이 곳에서 일한다.


물론 책방에서 '뭘 좋아하는 지를 모르겠어요' 라는 이들도 만난다. 좋아하는 일도 하늘에서 뚝 떨어져 한 순간에 생기지 않는다. 이리저리 다니고 요리조리 보다 나와 잘 맞는 일을 찾거나 처음엔 내키지 않았는데 하다보니 즐거워지는 경우도 많다. 취향을 깊게 파고 들 때, 그제서야 얻을 수 있는 귀한 결과물이라는 뜻이다.


또는 무언가를 끈덕지게 하는 것도 좋다. 그것은 다음 또 다음을 위한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습관처럼 일기를 써왔지만 글쓰기가 이만큼 즐거운 일인지 몰랐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점점 읽고 쓰는데 재미를 붙이더니 책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시간이 지나 무역회사를 그만두더니 대뜸 무역회사 해외영업팀 대리가 최인아책방 매니저가 된 것처럼 인생은 계획한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수영을 하고 싶다 생각만 하는 것과 수영장까지 가는 행동은 천지 차이다. 우선 수영장이라는 환경에 나를 던져야한다. 그 곳에서 헤엄치는 사람들과 함께 나도 라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다보면 나만의 영법이 조금씩 몸에 붙는다. 여기서 영법은 나만의 강점이자 취향이 된다. 이 경험을 지속하면 긍정이 쌓이고 궤도에 안착한다. 수영을 할 줄 알게 된다는 건, 수영장 밖으로도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바다 수영, 스노클링, 다이빙에도 도전해 볼 기회가 생긴다. 분명 나의 세계가 넓어진다는 의미다.


시작도 전에 좀처럼 기회가 닿지 않는 사람도 있고, 시작을 하고나서도 무탈할리 만은 없다. 어렵고 난감하고 지치는 날에 중심을 잃지 않게 해 주는 건 '왜 하는가'이다. 종종 긴 무명 시절을 버티고 스타로 떠오르는 배우 분들이 텔레비전에 나와 감동을 선사한다. 그들이 빛나는 이유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에 더해 그만큼 간절히 원하는 일을 가진 인생이라는 점이다.


뭐 먹고 살지? 나는 뭘 좋아하지? 무슨 일을 하지? 자꾸만 물음표가 떠오르는 날이면 오늘과 다른 환경에 나를 놓아보기를 권한다. 일회성의 행사도 좋고 다회성의 커뮤니티도 좋다. 요즘은 취향을 발견하고 순수한 즐거움을 따라 뭉치는 플랫폼들도 굉장히 많다.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다 별안간 다른 내일이 찾아오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


충고라는 걸 하기엔 매일이 별일이고 여전히 흔들리는 나 또한 미완이다. 이 미완의 상태를 드러내는 것이 두려웠다. 그런데 완성 단계란 언제쯤일까? 나이로 진갑을 맞았을 때? 직함에 대표가 붙었을 때? 통장에 100억이 찍혔을 때? 완성의 상태로 공개하기 위해 오랜 시간 내공을 쌓을 수도 있지만 미완 상태일 때 진솔하게 드러내고 주변의 피드백을 받으며 함께 성장해 나갈 수도 있다. 이 경우라면 완성에 이르는 과정은 덜 외롭고, 시간은 덜 걸릴 수 있다. 동시에 모든 순간을 완벽히 기억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무럭무럭 성장 중인 과정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 또한 나름의 의미있는 일이지 않을까.


미완을 두려워 하지 말자. 현재의 나를 진솔하게 드러내는 용기를 가지자. 파도에 모래성이 휩쓸려나가는 날도 있겠지만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얼마나 연결되었을까? 당신에게 첫 인사를 건넨다.  


반가워요, 오늘부터 당신과 함께할 저는 백정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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