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은 것과 잃은 것.
국내외 사업을 하고 있는, 직원수 세자리의 회사에서 3년을 다녔다.
그 중에서 나는 글로벌 사업을 하는 부서에서 팀원 중 하나로 근무를 해왔는데, 겉에서 보기에는 멋졌던 이 회사에서의 경험에 대해서 풀어보려고 한다.
(한 회사에 대한 한 사람의 경험담임을 참고 부탁드린다)
전반적으로 매우 젊은 회사라, 열 다섯명 쯤 되는 우리 팀에서 서른 일곱인 내가 내가 (큰 차이로) 최연장자.
나와 동갑인 사람들은 팀장이거나 부서장이었다.
나랑 동갑인 사람들, 나보다 어린 사람들의 아래 직급으로 일하는 것이 자존심 상하지는 않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그렇지는 않았다.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나는 워낙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해왔기에 이 분야의 경력직으로 들어온 것도 아니었고, 그에 비해 굉장히 빠르게 여러번 승진을 해서 레벨이 올라간 것에 의미를 두었다. 나이와 상관 없이 본인의 직무에 필요한 경험들을 쌓아온 사람이 리더 역할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수평적인 분위기를 지향하는 회사들은 보통 영어 이름으로 부르거나 이름 뒤에 ‘님’만 붙이는 경우가 많던데, 우리 회사는 후자였고, 개인적으로 더 선호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영어 이름은 괜히 오글거려서..
그리고 오히려 나보다 많이 어린 사람들과 다소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특히 우리 팀은 외국인/교포, 혹은 외국 생활을 해본 사람들이 많은 팀이라 더 편했다. (최연소는 나와 열한살 차이가 나는 팀원들인데, 그 중 한명과는 정말 마음이 잘 맞는 좋은 친구 사이가 되었다.) 한국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주로 받는 질문 레퍼토리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나이를 알고는) “결혼은 하셨어요? & 애기 있으세요?” 그리고 초면이라도 “그럼 애기 계획은 없어요?”까지 나가는 (큰 확률로 나보다 연상인)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질문 공세가 없는 분위기인 것도 너무 좋았다.
다행히 팀원들 간 사이도 대부분 좋았고, 다들 적극적으로 일하며 서로 자연스레 협업하는 분위기였다. 자유도도 높은 편이고, 주도적으로 이것저것 시도할 수 있기도 했다.
이러한 장점에 1, 2년은 나름 즐겁게 회사를 다녔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이 회사 문화/시스템의 단점이 점점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팀장, 부서장, C레벨 외에는 따로 직급(대리, 과장 등)을 부여하지 않는 곳이라 처음에는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내가 운 좋게도 빠르게 승진을 여러번 한 이후에는 이런 시스템의 문제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 회사에 ‘장’을 제외한 직급은 따로 없지만 관리 차원에서의 ‘직원 레벨’은 존재했다. 그러나 그 레벨에 대한 정의가 제대로 이뤄진 적은 없고 따로 크게 유의미한 의미 부여도 거의 되고 있지 않다고 느꼈다. (이 레벨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고) 예를 들어 새로운 팀원이 입사했을 때, 상위 레벨인 내가 중간 레벨의 다른 팀원을 리드하는 분위기를 보고 신입은 서로의 업무적 관계를 ‘눈치껏’ 파악해야 하는 것.
사실 관리자들의 태도와 리더십의 방향에 따라 그런 타이틀의 존재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아쉽게도 그런 환경이 아니었다.
결국은 신입도 성장의 가능성이 적고 이미 승진한 사람들도 그에 맞는 책임이나 인정이 주어지지 않는 그런 안타까운 환경이 된 것 같았다.
한시간씩, 혹은 그 이상으로 논의가 이어지는 회의들이 많았던 것도 단점 중 하나였다. 회의가 너무 많아 업무할 시간이 부족한 경우도 비일비재.
그리고 부서장, C레벨들도 이 업계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큰 결정이 금새 뒤집어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글로벌 사업을 하는 곳이라 외국인, 교포, 외국 생활을 한 사람들은 꽤 있었지만, 실제로 그 타겟 시장을 잘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해당 국가 출신의 외국인 직원들은 조금 있었지만 시장을 조사하고 전략을 짜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고, 그 조사의 결과는 (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깊이가 부족해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외국인 직원들의 경우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지만 한국 조직문화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에 대한 서포트는 전무했고, 처우도 좋은 편이 아니라서 회사 생활에 불만족하지만 한국에서 직업 선택의 폭이 좁아 억지로 다니는 듯한 모습에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경험했던 좀 더 전통적인 스타일의 한국 회사보다는 훨씬 장점이 많은 곳이었다.
나는 편한 분위기에서 나이 상관 없이 협업하며 일하는 이 회사가 좋았었고, 여러 회사 복지도 잘 이용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성장이 힘들어 보이는 회사의 구조와, 점점 구성원들을 부품화하여 여기저기 끼워맞추는 매니징 방식 등을 보며 이 곳에서 미래가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나는 더 많은 것을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보이는데, 그냥 내가 있는 자리에 계속 있는 것을 원하는 듯한 답변을 계속 받았고, 동기부여도 자신감도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회사 생활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싶었다.
완벽한 회사란 없고, 어디든 장단점이 존재하지만, 나에게 의미있는 장점이 단점보다 많은가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다녔던 회사보다 더 좋은 시스템을 가지고 균형있는 수평성을 유지하는 회사도 있겠지? 이직을 준비하는 분이 있다면 본인과 잘 맞는 환경의 회사를 찾으실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