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_공부만 하고 싶어도 인간관계가 복잡하면 그 것도 힘들다.
정말 거짓말을 하나도 안 보태고 다음 날도 담임 선생님의 허락을 받고 기숙사에서 잠만 잤다.
마침 토요일로 수업이 오전과 5교시까지만 있었고, 6교시부터 잠을 잤는데 얼마나 깊게 잠들었는지 저녁 식사 시간을 놓쳐 밥도 못 먹을 정도였다.
그 영향으로 주변 친구들이 어디 아픈 건지 물어보기도 했는데, 피곤해서 잠을 잤다고 둘러댔다.
저녁 시간에도 잠을 잤는데, 최근 두통이 있어 약을 먹었더니 더 깊게 잠들 수 있던 것 같았다.
집에서는 하루에 많이 자도 10시간 이내였기에, 나도 이렇게 이틀 내내 잠만 잘 수 있을 지 신기하기도 했다.
“이제 쉬는 건 끝이고, 공부해야 한다.”
이틀 내내 잠을 잤더니 확실히 피곤이 풀리고 컨디션이 많이 회복되었다.
좀 더 쉬고 싶지만, 기숙사에서 쉬는 게 마음 편하지 않다.
더욱 나를 불안하게 하는 건 다른 애들은 바로 옆 건물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자신은 쉬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으니 다시 6월 평가원 모의고사를 향해 달려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6평 때까지 무엇을 공부해야 하지?’
단순하게 분량 채우기나 개념 공부 보다는 나한테 어떤 점이 부족한 지 아는 것이 더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 모의고사 과정을 되뇌이며 파악해보니 매 모의고사 때문에 잦은 실수가 있었다.
이상하게 모의고사를 볼 때는 못 풀다가 끝나고 다시 풀어보면 다 맞곤 해서 평균 15점에서 20점 정도가 오락가락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바로 그 날 상담을 한 것은 아니라, 담임 선생님의 휴무와 업무가 있어서 3일 후 상담을 진행하게 되었다.
담임 선생님은 상담 전에 플래너와 지난달 모의고사 문제지를 제출하고 나서 이야기를 해보자고 한다.
그리고 상담하기로 한 날짜와 시간에 맞춰 담임실에 갔다.
“먼저 나한테 제출했던 플래너와 시험지는 잘 봤어. 생각보다 빨리 고쳐야 할 습관들이 보이네. 일단 이 것부터 보자.”
담임 선생님은 상담을 시작하며 컴퓨터 모니터에 문항 분석표를 실행시켰다.
그러자 화면에는 내가 몇 번 문제에 틀렸는지, 어떤 문제를 맞았는지, 이렇게 맞은 문제와 틀린 문제의 확률이 어떻게 되는지 상세하게 표시되었다.
“3월부터 5월까지 문항들을 분석해보면 틀리지 않는 문제들을 틀리고 있네. 자, 이번에 본 모의고사를 참고해서 이야기하면 문학의 현대 소설과 수1의 지수방정식은 수업 시간에 배웠던 것들이야. 덕분에 다른 애들은 이 문제들을 많이 틀리지 않았지? 그런데 너는 왜 틀렸을까?”
“긴장해서요?”
“물론. 그 것도 영향이 있겠지. 현대 소설은 변형이 심해서 깊게 들어가지 않으면 솔직히 풀기 어려울 수 있었지만, 지수방정식은 기본적인 풀이 방식으로 풀면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였다.
내가 볼 땐 긴장 보다는 수업 끝나고 제대로 복습했으면 이 문제들을 틀리지 않았겠지. 즉, 디테일하게 파고 들어가는 공부 부족이다.”
“아....!!”
“국어는 글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과 수학은 아는 문제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 보는 게 중요해. 특히 수학은 한 가지 방법만 고집하다간 여러 유형들이 포함된 기출에선 아예 풀지 못한다.”
그러고보니 자습 시간에 수업 후 복습을 하긴 했지만 대충하고, 자습 시간에 인강 위주로 공부를 했던 것이 기억났다.
게다가 아무런 말도 안 했는데, 귀신처럼 담임 선생님이 태블릿 사용에 대한 경고를 이야기했다.
“학원에서 태블릿을 주니 편하게 인강을 볼 수 있단 장점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태블릿 보는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학원 수업만 제대로 따라가도 태블릿으로 인강 볼 시간은 일주일에 8시간 이내면 충분해.
6평 이후에는 인강 보는 시간은 점점 줄여야 해. 이후에도 태블릿을 붙잡고 있는 건 그 전까지 제대로 공부를 안 한 거다.”
“네. 알겠습니다.”
해결 방법은 나왔다. 현강 혹은 인강 이든 수업에 참여하고 나면 제대로 복습 시간을 가져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더불어 어떤 한 문제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문제를 풀 때 시간을 정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바로 다른 문제로 넘어간다. 모르는 것이 있다면 해설지를 보지만 답을 외우지 않는 것이 주의할 점이었다.
이렇게 6월 평가원 모의고사 때 성적을 올리기 위한 솔루션을 받은 후 열심히 공부에 집중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이 터졌다.
“형, 정말이예요?”
“어. 방금 담임 쌤한테 이야기하고 왔어.”
“너무 순식간에 정한 거 아니예요?”
“아냐. 원래 이렇게 하기로 생각하고 들어온 거니까 괜찮아.”
학원에서 같이 다니던 태영이 형이 6월 평가원 모의고사를 본 날 바로 집에 가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가요?”
“집이 대치동하고 멀지 않아서 꼭 필요한 수업만 학원에 가서 듣고 집 근처 독서실에서 해야지.”
“좀 아쉽네요.”
“나가면 종종 연락하면서 지내요.”
이유는 지금까지 기숙학원에 있었던 이유는 공부를 하기 위한 습관을 만들기 위함이라고 한다.
원래는 기숙학원에 들어오는 것도 계획에 없었으나 부모님이 반대해서 어쩔 수 없이 기숙학원에 들어왔고, 성적이 꾸준히 올라가는 것이 보이자 이를 명분 삼아 여기서도 잘 했으니 나가서도 잘 할 수 있다고 주장해서 퇴소하게 되었다.
“근데 담임 쌤은 반대할 것 같은데.... 뭐라고 안 해요?”
“맞아. 여기가 강제성이 있어서 지킬 수 있지만, 나가서 하게 되면 자율 의지로는 쉽지 않을 거니까 만류 하더라. 그런데 정말 난 내 인생이 걸린 만큼 잘 할 수 있고, 부모님이 허락했다고 하니까 알겠다고 하네.”
그 뒤로 담임 선생님은 한 번 퇴소하면 올해에 다시 기숙학원에 들어오는 것은 없다고 하며, 더불어 쉽지 않겠지만 잘 해보라고 격려해 주었다고 우리들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나도 퇴소해서 이렇게 공부해 볼까 생각해보았지만,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3일까지는 혼자서 잘 하겠지만, 그 뒤로는 주변에 휩쓸려 자기 통제를 못하고 망할 것 같았다.
이렇게 태영이 형이 기숙학원을 퇴소한다는 소식은 빠르게 우리 반과 친분이 있는 애들에게 순식간에 퍼졌다.
“야, 태영이 형이 집에 간다고?”
“진짜 좋겠다. 나도 퇴소하고 싶다.”
“엄마한테 한 번 말해볼까? 넌 어떻게 생각해?”
반에서 태영이 형은 리더십이 있어 우리를 이끌고 다녔고, 단체 활동을 할 때도 나서서 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평소 태영이 형과 친하게 지내서인지 태영이 형이 퇴소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애들이 사실 확인을 위해 개인적으로 묻기 위해 온다.
‘아, 은근히 짜증나네.’
나는 애들하고 대화하고 싶지 않고, 딱 정해진 친구들과 어울리며 지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문제는 애들이 와서 말을 걸며 내가 보기에 친한 척을 하니 이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랬다간 바로 나쁜 소문이 퍼져 괜히 이상한 놈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상대방이 말을 거니 강의실에서 공부하다가 흐름이 끊기기도 해서 6월 평가원 모의고사를 앞두고 조금 산만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다보니 강의실에서는 수업이 끝나면 바로 나와서 자습실로 이동해 최대한 공부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또 다시 하나의 이벤트가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