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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궐 Jan 15. 2024

설마 내가 걸릴 줄 몰랐다.

35_안 보는 것 같으면서 다 보고 있다.


6평 평가원 모의고사를 보고 나서 3일이 지났고, 수업 시간에는 모의고사 문제 분석을 하며 학생들이 꼼꼼히 보고 넘어갈 수 있게 진행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기에 보통 학생들은 성적이 잘 안 나왔다 하더라도 마음을 잡기 마련인데, 아직까지 나는 방황하고 있었다.


‘슬럼프인가?’


어떻게든 자리에 앉아있지만, 펜을 들어도 공부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흰 것은 종이고, 검은 것은 글씨일 뿐이다. 아무리 책을 봐도 색깔 구분만 될 뿐 글씨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한테 다시 학원 나간다고 하면 어떨까?!’


응급실에 갔다 온 뒤, 징징거리며 학원을 나가겠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때처럼 지금 이곳을 나가서 공부하게 되면 생활 패턴이 엉망이 된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그렇지만 지금 여기서도 이렇게 공부를 안 할 것이라면 오히려 밖에서 기분 전환을 하고 빡세게 공부를 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태영이 형은 6월 평가원 모의고사가 끝나자 퇴소했고, 편지를 통해 밖은 최고라는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더욱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 몰라! 일단 놀자.’


계속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소리라도 지르고 싶지만, 그랬다간 주변의 시선이 꽂힌다.

지금 자습 시간에 놀기에 가장 적당한 건 태블릿이다.


게다가 담임 선생님은 퇴근하고 없어서 우리 반으로 오는 선생님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미쳤고, 오늘 게임 대회가 실시간 방송으로 진행되는 것을 알기에 보고 싶어 태블릿을 얼른 뚫었다.


‘와, 미쳤다. 어떻게 이런 플레이를 하는 거지?’


무선 이어폰을 끼고 있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시선은 오로지 영상에만 꽂혀있다.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던 신경 쓰지 못하고 오직 방송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의 손이 뻗침과 태블릿이 위로 들려졌다.


“아악!!!”


항상 정숙을 유지하던 자습실에 깜짝 놀란 내 비명소리가 크게 울렸다

주변 학생들의 시선이 향했지만 망했다는 생각에 정신이 없었다.


‘화면을 꺼야 해!!’


태블릿에는 잠금 기능이 있어 홈버튼을 누르면 자신이 딴짓한 것을 감출 수 있기에 본능적으로 태블릿을 붙잡았다.

덕분에 태블릿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게 되었다.


“이거 안 놔?”

“아씨.”

“씨? 이 자식이 개념도 없네.”


자신을 적발한 선생님이 누구인지 보니 GE반 담임 선생님이다.


문과 쪽 담임 선생님 중에서 가장 무섭다고 소문이 났다. 그렇다고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이 무섭지 않은 건 아니다.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은 평상시 조용하다가 화를 낼 때 조곤조곤 팩폭을 때리는 유형이라면, GE반 담임 선생님은 학원 규칙을 어기는 학생을 죽일 것처럼 무자비하게 화를 낸다고 한다.


“조용히 태블릿에서 손 떼고, 따라 나온다."

“시, 싫어요.”


반항기 가득한 내 말에 GE반 담임 선생님은 한숨을 쉰 뒤 태블릿을 한 바퀴 돌렸고, 그 반동으로 내 손이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태블릿을 들고 밖으로 나가며 내게 따라 나오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래도 화면을 껐으니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을 거야.’


GE반 담임 선생님이 태블릿을 완전히 가져가기 전에 찰나의 움직임으로 홈버튼으로 보고 있던 화면을 내리고 전원 버튼을 눌러 화면을 껐다.

다시 화면을 켜고 영상을 보려면 나만 아는 비밀번호가 필요해서 GE반 담임 선생님이 확인할 방법은 없다고 확신했다.


그렇기에 이를 믿고 조용히 밖으로 나와 담임실로 갔다.

GE반 담임 선생님은 담임실 입구 쪽 책상에 앉아있었다.


“태블릿으로 게임 영상 본 거. 인정하냐?”

“아뇨. 안 봤어요.”

“후우. 나도 니네 반 쌤처럼 거짓말하는 애들을 극도로 싫어한다. 다시 한번 묻는다. 했냐?”

“진짜 안 했다고요!”


GE반 담임 선생님이 짜증 나는 기색으로 추궁하자 반발심에 화를 내며 소리쳤다.


“나, 참! 어느 정도 넘어가 주려고 해도 봐줄 수 없겠다.”

“네?”

“니가 그렇게 나오면 나도 미친놈이 된다는 말이다.”


어이가 없다는 말과 함께 GE반 담임 선생님은 본인 핸드폰을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는데, 그 대상은 태블릿이었다.

한 손으론 동영상 촬영을 하며, 다른 한 손으로는 내 태블릿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응? 이 반 비번은 분명 이거였는데...”


GE반 담임 선생님은 자신이 알고 있는 보안 프로그램의 비밀번호가 틀리자 살짝 당혹스러웠지만, 비밀번호가 틀리는 말은 학생이 임의로 비밀번호를 바꿔 놓았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태블릿 딴짓에다가 임의로 보안까지 바꿨다면 빼빡이네.”


그 말에 내 몸이 살짝 움찔거렸지만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그 사이 GE반 담임 선생님은 태블릿을 조작하더니 보안을 뚫고 바로 화면을 열었다. 그리고 감추어져 있던 어플을 열자 인강 사이트를 뚫고 게임 영상 방송을 틈과 동시에 동영상 촬영을 종료했다.


“더 할 말이 있냐?”

“......”

“없으면 자습실에서 있었던 일부터 시작해서 육하원칙에 맞춰 경위서를 지금 써서 나한테 제출해라.”

“네.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나도 모른다. 담임 선생님이 보고 결정할 거니 따로 이야기하겠지.”


말과 함께 GE반 담임 선생님은 경위서 종이를 건넸다.


“설마 내가 걸릴 줄 몰랐는데...”


우리 반에서 태영이를 비롯하여 몇 명이 태블릿으로 딴짓을 하다가 걸린 적이 있었는데, 나는 조심하고 있으니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커다란 착각이었고, 걸리게 되자 기분이 참으로 더러웠다. 


딴짓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후회가 살짝 들었지만 이미 지나간 뒤였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눈앞의 경위서에 상세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다음 날, 담임 선생님이 출근했다.

내가 쓴 경위서와 태블릿은 담임실의 책상 위에 올려져 있어 보지 못하는 것이 이상했다.


그런데 식사 시간에 지나가다가 얼굴을 봤는데도 아무런 말이 없자 괜히 불안했다.

이래서 사람이 죄를 짓고 살지 못한 것이 어떤 말인지 실감되었다.


‘설마 이대로 묻는 건가?’


잠깐 이런 생각을 했지만, 우리 반 담임 선생님 성격상 어림없는 소리였다.

이런 점에 있어서 철두철미해서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진수야. 자습 1교시 끝나고 담임실에서 이야기 좀 하자.”


예상대로 담임 시간이 끝나고 자습실에 가려는데 이야기가 나오자 고개를 끄덕거리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공부를 하다가 시간에 맞춰 담임실로 가자 담임 선생님이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경위서를 보고, GE반 쌤하고도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화려한 깽판을 쳐 놓았네.“

“....”

“나에 대해서 알겠지만, 내 선에서 덮을 생각이 없다.”

“네.”

“학원 절차대로 하자. 네 경위서에다가 내 의견을 적어서 학원에 제출할 거고, 어떻게 될지는 내일쯤 결과가 나올 거다. 태블릿은 돌려주마.”

“알겠습니다.”

“혹시 할 말이 있냐?”


담임 선생님의 말에 없다는 제스처를 취했고, 바로 태블릿을 받을 수 있었다.

속상한 마음을 감추고 다시 자습실로 가려는데 뒤에서 들리는 말에 발이 멈추었다.


“그리고 정신 좀 차려라. 6평 끝나고 정신줄 놓고 다니는 게 보인다.”

“네?”

“모의고사와 비교해서 성적이 잘 안 나왔다면 네가 한 공부를 되돌아봐. 그러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다.”

“혹시 자세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아니, 오히려 내가 답을 주기보다 네가 떠올리는 것이 정확할 거다.”


하나의 난제가 건네졌다.

자습실에 돌아와 그동안 내가 공부를 어떻게 한 건지 되돌아보았지만 도대체 어디서 문제가 생긴 건지 알 수 없고, 열심히 했다는 생각만이 가득해서 담임 선생님이 무엇을 말하는 건 지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태블릿으로 딴짓을 한 행동에 대한 학원의 결정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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