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_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다.
“오늘 하루 공부하는 건 어땠습니까?”
“괘, 괜찮았어요.”
“시간표를 보니 시간이 빡빡했을텐데 생각보다 많이 공부했네요. 내일도 이렇게 했으면 합니다.”
근신이 종료되는 저녁 10시가 되자 오늘 작성한 플래너와 반성문을 가지고 학원 실장님을 찾아갔다.
학원 실장님은 플래너를 꼼꼼히 보며 공부 량을 확인했고, 반성도 살폈다.
‘진짜 이렇게 공부한 건 오랜만이네.’
학원 실장님의 말에 순수하게 공부에만 집중한 게 얼마인가 떠올려보았다.
솔직히 오늘 공부도 쉽게 한 건 아니었다.
오늘 저녁 자습도 2시간 동안 서서 해야 했는데, 1시간은 버틸만 했다. 그런데 남은 1시간은 진짜 힘들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복도에 앉을 수 없어 이를 악물고 공부에 집중했다.
모든 일은 마음 먹기에 달라지기에 공부에 집중하면 조금이라도 다리 통증이 덜해지지 않을까 해서였다.
덕분에 평소 4시간을 해야 하는 공부 량이 2시간만에 나왔다.
학원 실장님은 오늘 자 플래너에 사인하며 말했다.
“오늘 고생했습니다. 자습실에서 마무리 공부하다가 퇴실하세요.”
“네.”
이 집중을 이어가기 위해 바로 자습실로 갔는데, 앉아서 힘들지 않게 공부하니 굉장히 행복하다.
덕분에 아까보다 더욱 강한 집중력으로 계획된 공부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으아아아. 사, 살려줘.”
“야, 왜 그래?”
“다, 다리가... 너, 너무 아파!!”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욱신거리며 통증이 심했다.
“어제 근신 섰잖아요. 그럼 무리해서 근육통이 온 것 같은데요?”
“뭐?”
“하긴. 계속 앉아서 공부하다가 서서 공부하는데 버티기가 쉽지 않겠다.”
룸메이트들은 내 증상을 듣자 원인을 추측했고, 정답에 이르렀다.
평소 운동을 하는 편도 아니었기에 오랜 시간 다리에 힘을 주고 서 있었다니 다리에 무리가 왔다. 계속 침대에 누워있을 수 없기에 허벅지와 종아리를 조물락거리며 마사지하고 일어나 걸어보니 참을만했다.
“어찌되었든 해 봐야지.”
근신 기간은 아직 이틀 남았다.
다행히도 1교시부터 7교시까지는 강의실 수업이라 편하게 공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야. 야. 일어나.”
“응?”
“왜 이렇게 정신을 못 차려?”
“나도 몰라. 미치겠다.”
그런데 수업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를 미친 듯이 돌리며 졸고 있었다.
그게 너무 심해 옆 자리에 앉은 친구가 깨우는데, 일어나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스스로도 미칠 지경이었다.
인식을 못하고 있지만 체력이 떨어져 지쳐 있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졸음을 참으려고 해도 자꾸 눈꺼풀이 감기며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며 오전을 보냈다.
“이제 좀 낫네.”
그래서 점심 시간이 되자마자 아예 강의실 책상에 엎드려 잠을 좀 더 자고, 점심 시간이 끝나기 전에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니 살 것 같았다.
‘진짜 아무나 근신 서는 거 아니구나.’
그나마 자신은 3일이지만, 그 이상으로 서는 학생들이 많다.
덕분에 담임 선생님이 근신을 설 지, 퇴소를 할 지 결정하라고 권하는 이유도 알 것만 같았다.
5교시부터 7교시는 조금 나아진 컨디션으로 강의실 수업을 마치고, 다시 8교시부터는 복도에서 자습을 시작했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문득 서서 자습을 하다가 현실 타격이 왔다.
자신은 어쩌다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목소리를 들으며 여기 서 있는 지 의구심이 생겼다.
‘내가 원하던 공부가 이런 것이었나?’
솔직히 기숙학원 보다는 통학하는 학원으로 가고 싶었다. 그래야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놀거나 집에서 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재수를 결정한 이상 빡세게 공부해서 성공해서 싶은 마음에 기숙학원을 선택했다.
기숙학원은 학원에서 먹고 자고 관리가 됨으로써 놀거리와 전자기기의 유혹에서 벗아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에 결정한 것이었다.
‘통학 학원을 갔다면 수업이 끝나자마자...’
바로 친구들과 함께 PC방에 가거나 술을 마시고, 여자친구들을 꼬시러 놀러 다녔을 것이었다.
아니면 집에 가서 밤새 게임하며 놀았을 것이었다.
내 스스로를 돌이켜보니 어떤 행동을 할 지 빤히 상상되었다.
‘그런데 기숙학원에선 어떻게 시간을 보냈지?’
학원에 온 2, 3월과 성실하게 생활을 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때는 학원 적응을 했던 시기라 다른 친구들과 친하지 않아, 할 수 있는 것이 공부 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숙학원에 큰 돈을 들여 온 만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의지가 가득했기에 머릿속에 공부해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했고 힘들어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보냈다.
그런데 이 생활이 바뀐 것은 친구들과 친해진 뒤였다.
며칠 혼자 다니는 건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런데 2, 3주의 시간이 지나자 외롭고 힘들었다.
이럴 때 옆에서 고민을 나누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가 생긴 것만으로도 학원 생활에 많은 위안이 되고, 정신적으로 도움이 되어 친구들을 늘려갔고 그들과 어울리며 학원 생활이 재밌어졌다.
이렇게 지내다보니 처음 기숙학원에 들어올 때 초심은 사라지고 어느 순간부터 시간에 맞춰 수업에 참여한 뒤 간신히 시간에 맞춰 과제를 하고, 인강으로 부족하다 싶은 공부를 하고, 태블릿으로 기분 전환을 하며 지냈다.
-기숙학원에 온 본질적인 목적은 공부입니다. 그런데 점점 친구가 늘어나면 공부 시간이 늘어나기보단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늘어나며 나중엔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게 되죠. '지금의 친구 관계를 끊어야 할까?', '끊으면 친하게 지냈던 애들과 어떻게 지내지?', '왕따 되는 거 아닐까?'라고 말이죠.
그렇지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어떤 형태로든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만드는 습관을 가지고 있기에, 친구를 사귄다면 한 명이나 두 명에서 끝내길 권하고 가장 좋은 건 기숙사 룸메이트와 어울리는 겁니다.
기숙학원에 첫 날에 들은 담임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그 때는 이러지 않을거라 생각하고 흘려들었지만, 되돌아보니 믿기지 않게도 담임 선생님의 말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정말 공부를 하러 온 이상 기숙학원에선 외롭고 힘들더라도 혼자 다녀야 한다. 친구들과 같이 다니면 학원 생활이 재미있지만, 공부할 시간이 없다.’
그 동안 외면했던 기초적인 내용을 복도에서 근신 서며 깨달았다.
더불어 잊고 있던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학원에서 제대로 된 공부를 한 적이 없네.’
모의고사와 비교해서 성적이 잘 안 나왔다면 네가 한 공부를 되돌아보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을 떠올렸다.
내가 부족했다. 아니 정말 미치도록 공부를 한 적이 없었다.
인강을 통해 수박 겉핧기로 공부했고, 암기를 하거나 문제를 풀거나 깊게 파고 들어가 본질을 파악하지 않았다.
즉, 목표는 손에 닿지 않을 만큼 멀리 있었지만 목표에 달성하기 위한 노력과 절실함이 너무도 부족했기에 성적이 오르길 원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욕심이었다.
‘진짜 해야 한다. 못하면 엄마와 아빠 얼굴을 어떻게 보겠어?!’
11월에 수능을 봤을 때 기대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면 시간과 돈을 허무하게 날리는 꼴이다.
결정적으론 나를 믿고 기숙학원에 보내준 부모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었을 지 모르지만 이제부터라도 정신차리고 공부하고자 마음 먹고 펜을 들고 눈 앞의 문제지에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