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_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
“당분간이라도 따로 다니는 게 어떨까?”
“응? 갑자기?”
“갑자기는 아니고 근신 서면서 확실해진 생각이야. 같이 다니면 학원 생활을 서로 의지할 수 있어서 좋지만, 확실히 담임 선생님 말대로 공부할 시간이 없더라.”
“하긴. 그건 맞지.”
내 말에 주변 애들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수긍했다.
“이번에 근신 서면서 공부 시간이 늘어나는 거 보니가 좀 더 잘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말야. 따로 다닌다해도 서로 얼굴 못 보고 지내는 것도 아니잖아.”
잠깐 생각에 잠긴 듯 다들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번에 근신을 마치고 혼자 다니고 싶었는데 이를 애들에게 말하기가 껄끄러운 상황이었다.
어떻게보면 같이 다니던 친구들을 버리고 스스로 왕따가 되겠다는 말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우리들이 헤어질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가장 큰 것은 그 동안 몰려 다니던 학생들의 중심이었던 태영이 형이 퇴소였다. 그리고 자신을 비롯해서 같이 다니던 애들도 사고를 쳐서 근신을 서니 주변 애들과 선생님들의 시선이 꽂힐 것이었다.
“그래. 그렇게 하자.”
“어차피 여기 공부하러 왔고, 공부하는 게 맞지.”
“이번 기회에 공부해보자.”
“얼마 안 있으면 수시 상담이잖아.”
다행히도 다들 내 말에 공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학원 생활을 하다보면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잊혀지긴 하지만, 모두 이 곳에 온 이유는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함이었다. 이를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 맞았고, 말을 안 하고 있지만 내심 친구들과 멀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것을 먼저 꺼내는 것이 쉽지 않을 뿐이었다.
이렇게 GA반 남학생들은 서로 개인플레이를 하며 지내보기로 결정했다.
“찬혁님?”
“네. 무슨 일이세요?”
그 날 저녁, 기숙사 점호를 하기 전에 찬혁이에게 말을 건냈다.
서로 동갑내기이지만, 거리를 두고 있어 존댓말을 하는 편이었다.
“혹시 학원 생활 패턴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네?”
찬혁이는 평소 내가 이런 것을 물어보지 않기 때문에 의외라는 기색이었다.
솔직히 나도 의외이긴 하다.
‘설마 담임 선생님이 애를 추천할 줄은 몰랐지.’
혼자 다니기로 결심하고 반 친구들을 떠올려보니 혼자 다니며 공부하는 학생이 잘 보이지 않아 담임 선생님에게 생활 패턴을 보고 따라할 수 있는 학생이 누구있는지 물어보았다.
담임 선생님은 바로 옆에 있다며 찬혁이를 말해주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다른 반이어도 아는 선생님들은 다 알 정도로 본인의 루틴대로 딱딱 움직이며 공부하고 있으며, 틈틈이 선행도 해서 상점도 받는다. 그리고 성적도 뛰어난데 사관학교 지원을 위해 꾸준히 운동도 하고 있다고 한다.
보통 선생님들이 파악하는 학생은 두 종류이다. 정말 학원 생활을 열심히 잘 하는 학생과 사고만 치는 학생.
그 중 찬혁이는 전자에 속해 있는 학생이었다.
“앞으로 혼자 다니면서 공부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서요.”
“그래요? 그럼 내일 아침에 밥 먹으면서 알려줄게요.”
찬혁이는 내 의도를 알자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한다.
‘이번에도 안 하면 쓰레기가 된다!’
덕분에 정말 이번에는 중간에 흔들리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그리고 잠에 잠들기 전에 최소한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찬혁이에게 생활 루틴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뒤 학원 생활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서둘러 씻고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면 약 1시간이 안 되게 시간이 남는다.
이 시간에는 자습실에 가서 문학 문제 2개를 풀고 분석하면 시간이 딱 맞는다.
오전에 수업을 들으면서 이해가 안 됐던 부분은 따로 노트에 체크하고, 쉬는 시간에는 다음 수업을 위해 이동하거나 자투리 시간에는 영단어를 외웠다.
점심 시간에는 겉옷을 입고 학원 주변을 빠르게 걷는 운동을 시작했다.
이 것이 찬혁이가 가장 추천하는 시간이었는데, 자리에 앉아서 공부만 하다보면 몸이 아프다고 했다. 그리고 이를 실감하고 있는 것이 목에서부터 시작해서 손목과 허리가 조금씩 아팠다.
수능이 끝나기까지 이제 절반이 지났는데,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면 나중에 제대로 공부할 수 없으니 빡센 운동을 하기보단 가볍게 기분전환 하며 할 수 있는 운동이 빠른 걸음을 추천해서 하고 있었다.
점심 식사는 식당 운영 시간이 마감되기 전에 가면 먹을 수 있었다.
오후에도 수업을 들어가며 자습 시간에는 인강 보다는 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인강으로 공부하면 솔직히 편하다. 가만히 있어도 선생님이 강의를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찬혁이의 말에 의하면 수업을 듣는 것만으로는 끝내는 게 아니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한다. 수업은 내가 방향성을 잡기 위한 방법이고, 복습을 통해 공부해야 한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수업을 들으면 그 자리에서는 이해가 되지만 저녁이 되면 그 날 들은 수업 내용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공부한 것을 내 것을 만들기 위해 수업 하면서 체크했던 부분들을 다시 공부하고 관련 문제들을 풀었다.
저녁 시간에도 식당에 일찍 가는 것이 아니라 강의실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했다.
이렇게 오전과 오후를 빡세게 보내다보니 피곤이 머리 끝까지 쌓였다. 저녁에 잠을 자긴 하지만, 정신없이 공부하다보니 육체와 정신적으로 한계에 부쳐 체력 보충이 필요했다.
밥을 먹고 잠자면 배탈이 나는 편이라, 저녁 식사를 먹으러 식당에는 문 닫기 전에 가서 먹었다.
“먼저 사회 문화 기출을 풀자.”
오후에 사회 문화 수업이 있어 복습을 하고 기출 문제지를 풀기 위해 책을 펼쳤다.
만약 전이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탐구 과목이기에 나중으로 미뤄버리고 가장 부족한 수학을 공부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각 과목별로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중요했다.
지금까지 가장 성적 올리는 것이 어려운 국어와 수학을 먼저 해야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찬혁이 말을 들어보니 완전히 반대였다.
찬혁이의 성적이 초반에 크게 올릴 수 있던 가장 큰 이유는 국어의 언어와 매체, 수학의 확률과 통계, 영어, 2개의 탐구 과목을 먼저 마무리한 것이 컸다.
즉, 평소 담임 선생님이 강조했던 대로였다. 담임 선생님은 과목별로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고 어필했는데, 국어와 수학 성적을 올려야 여유가 있다고 여겨 특히 영어와 탐구 과목들은 뒤로 미뤘다.
그런데 6월 평가원 모의고사에서 국어와 수학을 공부한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았고, 다른 과목들은 당연히 잘 나올리 없었다.
더불어 수능은 국어와 수학만 보는 것이 아니라 국수영탐. 총 5개의 과목의 성적이 모두 반영되는 것을 상기하며 점수를 빨리 확보할 수 있는 선택과목과 탐구를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남은 시간에 국어와 수학에 쏟았다.
‘잠을 좀 잤더니 할 만 하네.’
물론 공부하기 싫은 날도 있고, 컨디션이 안 좋은 날도 있다.
그런데 이것저것 핑계대며 하지 않는 다면, 공부할 시간이 나지 않기 때문에 현실을 자각하며 펜을 들어 한 문제라도 푸니 연달아서 하게 된다.
더불어 공부하는 게 재밌지 않다.
하지만 안 풀리던 문제가 풀리면 신기해서 다시 또 다른 문제를 풀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렇게 운동이라는 루틴을 반복하고, 플래너에 하루하루의 공부 계획을 세우며 실천해가니 힘들지만 뿌듯함과 이제서야 간신히 공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공부를 하는 데 있어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계기가 하나 마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