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궐 Jan 18. 2024

평범한 공부가 굉장히 쉬운 것이었구나.

36_일상의 소중함을 평소에는 알지 못한다.


“원래 중대규칙 위반하는 일이 생기면 상벌 위원회가 열린다. 그 자리에는 학원 규칙을 어긴 학생과 담임 선생님 그리고 학원 과장님과 실장님이 참석한다. 즉, 3명의 선생님이 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거다.

그런데 네가 걸린 태블릿 일탈 행위는 너무나도 증거나 행동이나 명확해서 상벌위원회가 열리는 정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처벌이 없는 건가요?”

“아니. 절대 그런 일은 없지. 애매모호한 부분이 없기 때문에 상벌위원회가 열리지 않았을 뿐, 과장님과 실장님의 동의를 얻어서 약식으로 처리한 뒤 학원 규칙대로 근신 3일과 벌점 부여하기로 했다.”

“아....”

“당연히 부모님에게서 근신 사유와 함께 모든 이야기를 공유할 거다.”


담임 선생님의 호출로 담임실로 가니 학원에서 정한 결정을 들을 수 있었다.


“이제 네가 선택하면 된다. 이 근신을 받아들이고 설 것이고, 거부할 건지.”

“거부하면 어떻게 되나요?”

“당연히 퇴소를 선택하는 걸로 결정되서 집에 가야지. 너도 근신 안 서고 집에 간 애가 누구인지 알텐데?”

“그, 그렇죠.”


순간적으로 앞서 다른 학원으로 간 윤성이가 떠올랐다.

남녀 대화를 하다가 걸렸고, 여자친구를 따라 근신을 거부하고 다른 학원으로 옮겨간 케이스였다.


“근신 설게요.”

“알았다. 그리고 근신 설 때 자습 시간만 복도에서 자습이고, 수업은 강의실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 참고해서 언제 할 지 정할래?”

“제가 근신을 언제 설 지 정할 수 있어요?”

“원래 담임 권한이라 학원에서 정한 기간에 내가 마음대로 정하면 되는데, 이 정도는 배려해 줄 수 있지.”


기간을 물어보니 다음주 안에 무조건 근신을 서야 한다고 한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기회에 잠깐 고민에 빠졌다.


“다음주 수, 목, 금. 이렇게 3일 하도록 할게요.”


일주일 중에서 가장 수업이 많은 날짜가 목요일과 금요일이다.

이 기간에 근신을 서면 그래도 다른 요일보다는 자리에 앉아서 공부할 수 있는 생각에서였다.

담임 선생님도 거의 비슷한 생각이었는데 고개를 끄덕거리며 수긍했다.


‘근데 아빠가 노발대발 할 것 같은데.’

“선생님. 근신 선다고 부모님께 꼭 연락하셔야 하나요?”


문득 아빠의 화난 얼굴이 머릿속에 그려지자 혹시나 싶은 마음에 담임 선생님에게 물었다.


“어. 중대 규칙 위반 세 번이면 강제 퇴소라서 무조건 연락할 수 밖에 없다. 한 번 생각해봐. 네가 중대 규칙 위반으로 여러 번 걸렸는데, 연락 없다가 갑자기 학원에서 강제 퇴소 하라고 하면 부모님 입장에선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지 않을까?”


그 말에 반박할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

학원에 비싼 돈을 쓰며 자식을 보내놓았는데, 갑자기 퇴소하라는 연락을 받으면 부모 입장에선 학원에 컴플레인을 걸 것이었다.


‘3일 이잖아. 정기 외출 때 남아서 하는 거와 비슷하겠지.’


친구들에게 가서 3일 동안 근신 서기로 한 사실을 이야기하니, 별 거 아니라고 쉽게 할 수 있다고 응원해주었다.

어차피 수업 시간에는 강의실에 들어가서 앉아 수업 듣고, 자습 시간에만 서서 하는 거니 괜찮을 거라 여기며 그 날이 찾아왔다.




근신을 서는 첫 날에는 강의동에 오자마자 바로 행정실로 향했다.

근신 학생들의 관리는 행정실에서 이루어지며 몇 가지 교육할 내용이 있다고 들었다.


“나진수 학생은 오늘부터 3일간 근신을 서게 됩니다. 기본 규칙은 알고 있나요?”

“아니요. 잘 모릅니다.”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들었지만 혹시 놓치고 있는 것이 있을까 싶어 설명을 듣기로 했다.


“학원 수업은 평소대로 들으면 되지만, 빈 수업 시간과 자습 시간에는 행정실 앞 복도에서 스탠드 책상을 이용해서 자습하게 됩니다. 스탠드 책상 앞 유리에는 학생의 근신공고장과 시간표를 게시한 후, 선생님들이 왔다갔다할 때 마다 시간표에 맞춰 자습하고 있는지 성실히 자습하고 있는지 볼 거예요.”

“네.”

“수업 외 무단 이탈은 안 됩니다. 화장실 이동 시 행정실에 이야기하고 가고, 회복실과 외진은 학원 보고 후 허락할 예정입니다. 만약 무단 이탈이 발견 될 시 2번까지는 경고지만, 3번째부터는 근신 기간이 연장될 거예요.

식사 시간은 다른 학생들과 동일하고 쉬는 시간에는 행정실로 와서 쉽니다. 근신 일과는 오전 8시부터 저녁 10시인데, 매일 당일 기록한 플래너와 반성문을 학원 실장님에게 제출하며 면담합니다.”


생각보다 빡빡함에 나도 모르는 사이 얼굴이 살짝 새하애졌다.

다른 건 나쁘지 않는데, 매일 저녁마다 학원 실장님과 면담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근신을 안 설 수 없는 노릇이기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수긍했다.


“시간표는 미리 담임 선생님에게 받았는데, 오늘은 5교시까지 수업 후 계속 자습이라 6교시부터 복도에서 자습할게요.”

“알겠습니다.”


이후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들은 후 행정실을 나올 수 있었다.

지나가다보니 아까 행정 선생님이 말한 대로 이미 복도에 스탠드책상과 함께 내 이름이 적힌 근신 공고장과 수업 시간표가 게시 되어 있어 근신 선다는 현실감을 확 느꼈다.


시간표대로 5교시까지는 강의실에서 수업이라 편하게 공부했다.

점심 시간에 근신을 서게 될 나를 걱정해주었지만, 남자 자존심만 약한 소리를 하지 못하고 근신 따위는 별 거 아니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그런데 이 말을 서서 자습 한 지 2시간이 지나자 후회한다.


‘평범한 공부가 굉장히 쉬운 거였구나.’


그냥 복도에서 서서 자습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실상을 들여다보니 아니었다.

생각보다 수업 및 자습 시간에 학과 선생님에게 질문하러 왔다갔다 하거나 회복실 이용과 약을 받기 위해 행정실에 오는 학생들의 수가 꽤 많았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들과 학과 선생님들도 업무 상 자주 왔다갔다한다.


문제는 이들이 자신을 보고 자신을 지나치지 않고 한 번씩 보고 간다는 것이었다.

서서 공부하는 것이 체력적으로 힘든데, 남들 시선까지 신경 써야 하니 정신적으로 여간 고된 게 아니었다.


‘이래서 여학생들이 버티지 못하고 나간 거였네.’


보통 남학생들은 무던한 성향을 가지고 있어 시선 따위는 잘 신경쓰지 않고 무시하면서 지낸다.

나 또한 마찬가지지만, 아는 얼굴들이 지나갈 때마다 여기 서서 자습하는 것이 부끄럽고 수군거리는 목소리를 들을 때 괜히 쪽팔렸다.


‘아, 앉고 싶다.’


쉬는 시간이 되면 10분 동안 행정실 의자에 앉아 쉴 수 있지만, 수업 및 자습 시간인 50분 동안 서서 자습을 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1~2시간은 서서 하니 허리도 아프지 않고 굉장히 좋았으나, 3시간이 되자 허리도 아프고 다리가 욱신욱신거려 이유를 떠올려보니 체력이 딸리는 것이었다.


힘이 들어 행정실에 가서 의자를 가져와서 앉을 수 있다고 물었더니 근신 학생은 서서 하는 것이 원칙이며, 아파서 못할 경우에는 증명할 수 있는 진단서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병무청 신체검사에서 당당히 1급 현역이 나왔던 만큼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어 진단서는 없었다.


‘저녁 식사 시간이 얼마 안 남았잖아. 조금만 힘내자!’


이제 마지막 교시인 9교시다.

딱 종이 치면 저녁 식사 시간이라 바로 옆에 식당으로 달려가 밥을 먹고 행정실에 가서 쉴 생각에 이를 악물고 버틴다.


‘그러고보니... 나 잘 할 수 있을까?’


근신 3일 중에서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힘이 든다.

문득 과연 남은 시간 동안 잘 버틸 수 있을 지 머릿속으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