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길 위에서 태어난다. 첫 호흡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한 걸음 한 걸음이 길을 만든다. 어떤 길은 넓고 평탄하지만, 어떤 길은 좁고 굽이진다. 그러나 모양이 어떻든 간에 길은 모두에게 주어진다. 삶은 곧 길이며, 우리는 모두 그 길 위를 걷는 나그네의 삶이다.
우리가 매 순간 걷고 있는 길은 어쩌면 선택의 다른 이름이다. 어떤 길은 이정표가 뚜렷해 안심이 되지만, 어떤 길은 아무런 표식조차 없어 불안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멈추지 않는 한 길은 늘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잘못 들어선 듯 보이는 길조차도 결국은 또 다른 길과 만나 새로운 방향을 열어 준다. 그러므로 길 위에서 후회보다는 걸음을 내딛는 용기가 필요하다.
길은 또 다른 시각으로 보면, 만남의 자리이기도 하다.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나고 그 길 위에서 헤어진다. 우연히 스친 인연이 평생을 바꾸기도 하고, 오래 함께 걸은 사람이 어느 날 다른 길로 떠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만남과 이별은 우리들 삶에 길을 만들고 있다. 길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걷는 발자국으로 완성된다. 내가 걸은 길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흔적이 남아 있다.
길은 또한 기다림의 풍경을 가슴에 품고 있다. 목적지에 닿기 전까지 우리는 늘 기다린다. 해가 뜨기를, 비가 그치기를, 누군가를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것과 같이 말이다. 길은 기다림으로 채워지고, 그 기다림 속에서 길은 깊어진다. 기다림이 없다면 길은 그저 이동의 통로일 뿐이다. 기다림이 있을 때 길은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가 삶이 쓰는 역사가 된다.
한편으로 길은 고단 함이라 할 수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오르막길에서 숨이 차오르고, 내리막길에서는 발걸음이 흔들린다. 그러나 그 고단함 속에서 길은 우리를 단련한다. 평탄한 길만 걷는다면 삶은 무미건조해지고 얕아질 것이다. 굽이진 길, 가시 돋친 길, 비에 젖은 길을 지나면서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마음은 조금 더 넓어진다. 그러니 길의 고단함은 곧 잘 숙성된 삶의 깊이다.
길은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아무리 오래 걸어도 끝을 알 수 없고, 아무리 힘써 걸어도 앞을 다 볼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늘 조심스럽고, 늘 배우며 걷는다. 길 위에서는 누구나 초행자다. 이미 걸어본 길이라 해도 다시 걸으면 또 다른 풍경을 보여 준다. 길은 같은 듯 다르고, 익숙한 듯 새롭다. 그래서 길은 늘 우리를 낮추고, 동시에 일깨운다.
길은 결국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걷는지에 따라 길은 달라진다. 같은 길이라도 불평하며 걸으면 고통스럽고, 감사하며 걸으면 아름답다. 길은 변하지 않지만, 길을 걷는 마음은 늘 변한다. 그래서 길은 풍경이 아니라 거울이다. 길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곧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로 귀결된다.
삶의 끝에서 남는 것도 결국 길이다. 내가 걸어온 길, 누군가와 함께 걸은 길, 그리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있다. 그 모든 길이 모여 한 사람의 삶 즉, 이야기가 된다. 삶은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고, 그 과정이 곧 길이다. 그러므로 길을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천천히 걸어도, 때로 멈추어도, 길은 끝내 이어진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멀리 가는가 가 아니라 어떤 발자국을 남기느냐다.
오늘도 여전히 멈출 수 없는 길 위에 서 있다. 어제의 길은 지나갔고, 내일의 길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지금 한 발자국 내딛는 이 순간의 길이 어쩌면 유일하고,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길은 늘 현재에 있다. 지금 내 앞에 놓인 이 길을 정성껏 걸어갈 때, 그 길은 곧 내 삶이 된다. 그리고 언젠가 마지막에 다다를 때, 내가 남긴 발자국 하나하나는 모두 말이 되어 누군가에게 작은 울림이 될 것이다. 표식이 없어도 알려줄 수 있는 작은 이정표가 될 것이다. 발자국의 말은 사라지지 않고, 길 위에 남아 끝내 삶을 증언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