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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얼굴

by 소향

사람은 울음으로 세상과의 만남을 신고 한다. 작은 몸이 세상과 만나는 첫 대화가 울음인 것이다. 그러나 살아가는 동안 우리를 붙드는 힘은 아이러니하게도 소리의 반대편, 소리가 억눌린 채 유지되고 있는 것, 곧 침묵이다. 울음으로 시작된 생이 결국 침묵으로 닫히듯, 인간의 삶은 처음과 끝은 그 고요함에 맞닿아 있다.


침묵은 텅 빈 그릇 같으나, 그 안에는 가장 무거운 진실이 가라앉아 있다. 빈 항아리가 밤새 이슬을 받아들이듯, 침묵은 흘려보낸 말들을 다시 모아 깊이 저장한다. 말은 종종 거품처럼 흩어지지만, 침묵은 무게를 잃지 않는다. 그래서 침묵은 허공이 아니라 심연이고, 결핍이 아니라 충만이다.


우리는 흔히 말을 통해 소통한다고 믿지만, 사실 가장 진실한 순간은 말의 부재 속에 있다. 누군가의 눈빛이 잠시 멈추는 순간, 손끝이 가볍게 떨리는 순간, 그 고요한 틈에서 우리는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말은 다듬어지고 장식되지만, 침묵은 꾸밈이 없다. 꾸밈 없는 침묵 속에서 마음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침묵은 부재가 아니라, 언어보다 더 큰 언어다.


위로 또한 침묵의 다른 얼굴이다.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 곁에 앉아 긴 설명을 늘어놓는 대신, 그저 손을 잡아 주는 일이나, 아픈 이를 향해 수많은 말들을 던지는 대신, 가만히 곁에 머무는 일처럼 그 침묵의 자리에서 더 큰 기도가 흘러간다. 긴 말은 때로 상처를 헤집지만, 침묵은 덮고 감싸며 회복을 돕는다. 사람은 종종 설명이 아니라 함께하는 고요 속에서 살아난다.


침묵은 또한 용기다. 억울할 때 반박하지 않고, 분노할 때 소리치지 않고, 슬플 때 울음을 삼키는 일이다. 그것은 무기력이 아니라 절제에서 비롯된 단단함이다. 함부로 터져나오는 말은 순간의 분노를 식힐 수는 있어도, 시간이 지난 뒤 종종 깊은 후회를 남긴다. 그러나 침묵으로 지켜낸 품위는 세월이 흘러도 빛을 잃지 않는다. 가장 큰 용기는 목소리 없는 인내에 있다. 침묵 속에서 사람은 자신을 단련하고, 결국 더 단단해진다.


삶은 침묵 위에서 자란다. 세상은 끊임없는 소음으로 우리를 흔들지만, 마음 깊은 곳에 우물을 품은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 우물가에서 그는 자신을 비춰 보고, 무너진 마음을 정리하며, 다시 길을 걸어갈 힘을 얻는다. 고요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귀 기울이고, 놓쳤던 것을 다시 주워 담는다. 침묵은 흐르지 않는 듯 보이나, 맑은 샘물처럼 영혼을 정화한다. 끊임없이 말이 쏟아지는 세상에서 침묵을 지킨다는 것은, 자신만의 맑은 물줄기를 품는 일이다.


그러나 침묵은 회피가 아니다. 해야 할 말을 삼키는 침묵은 돌처럼 무겁고, 전해야 할 진실을 감추는 침묵은 칼날이 된다. 도망의 침묵은 상처를 남기지만, 기다림의 침묵은 치유를 낳는다. 참된 침묵은 도망이 아니라, 더 깊은 이해를 위한 준비다. 마음을 지키며 상대의 시간을 기다리는 선택일 때, 침묵은 관계를 살리고 삶을 일으키는 힘이 된다.


침묵은 우리를 겸허하게 한다. 말로 자신을 내세우는 동안 우리는 타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러나 바람의 결, 나무의 속삭임, 별빛의 떨림, 타인의 마음은 침묵할 때 비로소 들린다. 세상은 늘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으나, 침묵 속에서야 비로소 그것을 알아차린다. 침묵은 나를 낮추고 세상을 받아들이는 통로다. 그 통로를 지나갈 때 사람은 비로소 자신이 세상의 일부임을 깨닫는다.


사랑 또한 침묵을 통해 깊어진다. 오래 함께한 이들은 많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짧은 눈길, 고요한 동행, 말없이 차려진 식탁. 그 안에 세월의 사랑이 배어 있다. 화려한 언어보다, 오랜 침묵 속에서 사랑은 더 단단해진다. 사랑은 침묵을 닮고, 침묵은 사랑 속에서 자란다. 말보다 오래 남는 것은, 결국 말 없는 배려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남는 것은 침묵이다. 숨이 가빠오는 끝자락에서 더는 말을 잇지 못할 때, 침묵은 모든 것을 대신한다. 마지막 순간, 생을 마무리하는 언어는 소리가 아니라 고요다. 남은 이들은 그 고요 속에서 마지막 마음을 읽는다. 침묵은 끝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언어다. 울음으로 시작된 생이 침묵으로 닫힐 때, 인간은 가장 완전해진다.


그러므로 침묵은 두려움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비추는 또 하나의 얼굴이다. 말이 전하지 못하는 것을 침묵은 전하고, 소리가 닿지 못하는 곳까지 침묵은 닿는다. 삶의 깊이는 침묵 속에서 자라며, 그 고요는 결국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침묵은 상실이 아니라 품음이고, 결핍이 아니라 충만이다.


밤하늘의 별빛이 소리를 내지 않고도 세상을 환히 밝히듯, 침묵은 소리 없는 빛으로 우리를 감싼다. 새벽의 강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 흐름 안에 수천의 이야기를 품는다. 돌은 말하지 않지만, 그 무게와 온도로 시간을 증언한다. 침묵은 그렇게 세상의 모든 사물 속에 스며 있어, 결국 삶을 비추는 가장 보편적 언어가 된다.


삶은 소란 속에서 소리를 잃고, 침묵 속에서 다시 길을 찾는다. 침묵은 비워낸 자리에 오히려 별빛을 담아두는 힘이다. 그것은 무언가를 잃는 일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품는 일이다. 침묵의 얼굴은 공허가 아니라 충만이고, 닫힘이 아니라 열림이다. 우리는 그 얼굴 앞에서 비로소 자신을 마주하고, 세상을 받아들이며, 사랑을 배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말 없는 침묵 속에서 자신을 생의 품으로 돌려보낸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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