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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그레이 Mar 16. 2024

어서 와. 프리 지옥은 처음이지?

프리랜서를 버티게 하는 힘 

늘 그렇듯 '불안'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나 지금, 잘하고 있는 거 맞아?



느닷없는 감정의 동요에 평온한 일상이 흔들린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할 수 있어'라는 자기 효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굳건했던 마음의 둑이 하릴없이 무너져 버린다.  


허망하기 짝이 없는 변심은 찰나의 방심에서 비롯된다. 

아무래도 일과처럼 엿보던 성공한(듯한?) 타인의 삶을 무방비로 흡수한 부작용인 듯하다. 



20~30대에도 저렇게 성공을 거두는 데,
나는 왜 이모양이지..?



스스로에 대한 초라함과 성공을 향한 조급함이 고조될 때면,   

   

비행기 탑승 시간이 임박한데 공항에 도착해서야 여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거나,

수능시험 당일인데 고3 수험생인 내 눈에 아는 문제가 하나도 없다거나, 

시급한 용무로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계속 엉뚱한 길로 빙빙 돌며 애 태우는 식의

쫒기는 꿈을 반복적으로 꾼다. 


이럴 때는 맛있는 음식도, 쇼핑도 큰 도움이 안 된다.

자기 극복이 될 때까지 얼마 간은 우울의 심연으로 가라앉는 수밖에 없다.   






나의 미세한 기분 변화를 귀신같이 알아차리는 건 역시나 8년 차 동거인뿐이다.


여느 평범한 저녁식사 시간.  

갈 길 잃는 눈빛으로 저작활동에만 집중하는 내 모습에 

걱정스러운 표정을 한 남편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여보... 왜.. 그래..?" 


"응?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는 일단 던져놓고,  


"사실은.." 


기다렸다는 듯이 묵혀둔 근심을 털어놓는다.


대강 이런 내용들이다.

프리랜서가 된 이후에 들쑥날쑥한 수입 변화

그로 인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

나보다 훨씬 앞서 나가는 듯한 사람들과의 끝없는 비교, 

나이가 너무 많은 같은 데서 오는 자신감 하락..  

  

어린아이처럼 두서없는 울부짖음을 한참이나 진지하게 들어주던 남편은 

내가 조금 진정이 됐다고 생각이 되자 비로소 덤덤한 표정으로 한 마디를 던진다. 



여보, 나는 그런 생활을 15년 넘게 했어..



순간 '딩~'하는 충격이 머릿속을 강타한다. 


"여보가 프리랜서가 처음이라 그래. 

원래 이 세계는 그런걸 감수해야 하는거야" 




그랬다. 

나의 남편은 특정 분야에 뜻을 두고 15년째 프리의 길을 걷고 있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를 포함해 내 주변은 '회사원'일색이었다.   

그래서인지 "00 하는 동생이야"라는 주선자 선배의 소개말에 귀가 솔깃했던 기억이 있다.    

흔하지 않은 직업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나와는 다른 특별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개팅 당일, 

남편은 자신의 직업을 이렇게 설명했다.  



반 백수나 다름없습니다. 하하


소개팅 상대 앞에서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었다. 

솔직히 수많은 소개팅 중에서는 처음이었다. 

대개는 이성 앞에서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든 포장하려고 하지 않나? 


내가 봐왔던 이성과 정반대의 대답은 오히려 남편에 대한 무언의 확신을 갖게 했다.        

   

'이 사람, 찐이구나..' 


남편은 '그 일'을 좋아하고, 자기가 가려는 길이 어딘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 과정이 무척이나 지난하고 어렵다는 것도, 심지어 꿈을 이루지 못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냉철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오랜 시간을 '무명의 프리랜서'로서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평가로부터 

완전히 독립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과 결국 해내고 말 것이라는 '자기 확신', 

이 두 가지가 무명의 프리랜서가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게 만드는 힘이었다. 


울부짖는 4년 차 초보 프리랜서 따위가 가늠할 수 있는 내공이 아니었다. 




비로소 느닷없는 조급함의 이유를 알았다. 


나는 내가 뭘 원하는지 아직 모른다. 

성공은 꿈꾸지만, 어떤 성공인지 설명하지 못한다. 

실체가 없는 목표를 향해 페달질만 하고 있으니, 마음의 배가 여기저기 떠도는 건 당연하다.


지금의 일을 선택한 분명한 이유로 프리랜서가 되었지만,  

정작 프리랜서로서 이 일을 통해 얻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이게 문제였다.  


그래, 

지금의 나처럼 취업에 조바심부터 내는 학생들에게 해주는 말이 있다. 

이번에는 내가 들을 차례인 것 같다.   


"남에게 너를 증명하려고 하지 말고,  

그 일을 통해 네가 얻고자 하는 만족이 무엇인지,  

어떻게하면 네가 행복해질 것 같은지 그것부터 고민해봐

그래야 남들이 뭐라고 하든 지치지 않고 오래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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