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그레이 Aug 21. 2020

믿고 거르는 결혼 조언

전혀 도움 안 되는 사랑, 결혼에 관한 훈수

"결혼하면 얼마나 행복해?"

"첫눈에 이 사람이다 싶었어??"


와 같은 순진한 질문을 던지는 싱글 시절의 내게 나보다 한참 앞서 결혼한 지인들은 하나같이 "결혼은 현실이야"라며 나의 무지함을 안타까워했다. 누구는 "야, 그런 게 어딨어. 그냥 때가 됐으니까 하는 거지"라는 말로 경악시키기도 했고,  또 다른 누구는 "선택을 다시 할 수 있다면 난 혼자 살 것 같아" 라며 영혼 없는 if를 전제로 선심 쓰듯 '싱글 라이프'를 치켜세워주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결혼'은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꿈에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였다. 그럼에도 자신했던 한 가지는 '반드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다'라는 믿음이었다.




"사랑 타령하는 것 보니 네가 아직 배가 덜 고팠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소박하고도 당연한 바람을 털어놓을 때마다 사람들은 '배가 불렀다'라는 맥락에 맞지 않는 표현으로 모욕감을 주곤 했다.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 어째서 '포만감'과 비견되는지 결혼을 한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사랑'과 '현실'을  '선과 악', 음과 양', '흑백'처럼 저울의 양 쪽 추에 두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어느 한쪽을 강하게 원하게 되면 다른 한쪽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애초에 반대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양자택일의 논리는 성립할 수 없다.  오히려 둘 중에 어떤 가치를 최우선 할 것인가의 문제에 가깝다. 따라서 사랑의 가치를 결혼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이 안데르센 동화 속의 환상만을 쫒으며 현실을 외면하겠다는 뜻으로 왜곡되면 곤란하다.


결과적으로 난 내 바람대로 인생에서 최고로 '사랑'하는 상대를 만나 결혼을 했고, 현재는 누구보다 충실하게 '현실적인' 삶을 살고 있다.


"나이 들수록 좋아하는 사람 절대 못 만나."


누구에게도 예외 없는 자연섭리가 어째서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이 되는 것일까?  사랑이라는 감정이 나이에 비례해 노화되기라도 하는 것일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그런 상대와 결혼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미련을 아직 살아있는 '기회'가진 미혼의 가능성을 제한하면서 달래려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스스로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시점을 한정하지만 않는다면,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반드시 만나게 되어있다. 다만 사람마다 '그 시기'가 다를 수 있다는 사실만 기억하자. 일반적인 기준보다 훨씬 빨리 만나는 사람도 있지만 나처럼 매우 늦게 만날 수도 있을 뿐이다. 분명한 것은 '반드시 나타난다'는 믿음이다.  그때까지 사랑에 대한 스스로의 믿음이 시들지 않도록 붙잡아 두기만 하면 된다. 그것만 있으면 된다.



"혼인신고는 가급적 늦게 하고, 신혼집은 공동명의로 해. 혹시 모르잖아" 


사랑하는 이와의 장밋빛 인생을 꿈꾸고 있는 예비부부에게 이런 찬물 끼얹기도 없다.  그들은 '혹시 모르니까'라는 불운 가득한 말로 조언하지만 결혼 준비에 그 어떤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누구도 '몇 달 살아본 뒤 여차하면 재산 분할 후 이혼해야지'라는  생각으로 결혼을 준비하지는 않는다. 아니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이건 마치 신혼여행으로 비행기를 타면서 교통사고보다 확률이 떨어진다는 추락사를 걱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 마인드는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는 게 아닌 현재의 행복을 급격하게 반감시키고 다가올 미래를 오히려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또한,  혼인신고는 여건에 따라 언제 해도 상관없지만 다만 그런 '불순한' 의도로 일부러 미루겠다는 심산이라면 결혼에 대한 확신이 들 때까지 결혼 시기를 미루는 것이 차라리 나을 수 있다.


"결혼하고 한 1년은 엄청 싸울 거야."


 빨래 개는 방법, 주말 기상시간, 가사 분배, 음식물 쓰레기 처리 주체, 양가 방문 주기, 퇴근시간 등등 수도 없이 사사로운 이유들로 신혼기간 싸운다고들 했다. 다투지 않고는 진정한 결혼 생활 돌입이 힘들다고도 했고 '서로 밑바닥까지 봐야 해.' 라며 오히려 열정적으로 싸울 것을 장려(?) 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부부인데 싸우지 않는 것이 '비정상'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그런데 우리 부부는 싸우지 않았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이미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싸움의 소재가 우리에게는 충분한 불씨가 되어주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내가 뭐든 더 해줘야지'라는 마음 하나면 된다. 대개 상대에게  바라고 기대는 마음이 우선할 때 서운한 감정이 쌓이게 되기 때문이다.




누구는 말한다.

사랑이 밥 먹여주냐고. 반대로 묻고 싶다. '사랑을 포기하면 대신 무엇을 얻을 수 있으며, 그건 사랑보다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일까?'라고. 

중요한 것은 사랑을 갈구하는 스스로가 인생을 허투루 살지 않았다면 내가 사랑하는 상대도 그렇게 살지 않았을 가능성이 아주 높아진다.  그렇다면 밥 굶을 걱정 따위는 최소한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난 아직도 결혼의 충분조건은 사랑이라는데 100% 동의한다. 사랑은 문제를 해결 해 주지는 않지만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전원을 공급해 주는 것만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100쌍의 커플이 있다면 100가지 결혼 라이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다른 커플의 인생을 무작정 좇을 필요도, 막연한 두려움을 가질 필요도 없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오로지 두 사람만의 전유물로 하나부터 열까지 새롭게 조형해 나가는 것이며 그로 인한 결과물은 유일무이한 것이다.  따라서 어떤 마음과 태도로 상대를 대하고 결혼 생활을 하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꿈꿔왔던 결혼생활을 만들 수 있다.


행복은 결국 우리 모두의 '생각'에 달려있을 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