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용대 Sep 27. 2020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된 경비원

  가을이 되면 누구보다 힘들게 일하는 사람이 있다. 도로나 공동주택단지 또는 빌딩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이다. 듣기 좋게 환경미화원이라 부르지만 쉽게 말해 청소부다. 세대수가 많은 아파트 단지는 경비원과 미화원이 따로 있지만 소규모 단지나 빌딩 청소는 경비원 몫이다. 주된 업무가 청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비원은 하는 일이 많아 늘 바쁘다. 그중에도 늦가을에 낙엽 쓰는 일은 보통 고생이 아니다. 쓸고 나면 쌓이고, 쓸고 나면 쌓이고 종일 쓸어도 감당할 수가 없다. 모았다가 하루 두세 차례 치우면 되련만 주민들 눈치가 보인단다. 비 오는 날이면 전철 역사 바닥이나 건물 입구 바닥에 우산에서 떨어진 빗물을 닦는 미화원도 그럴 것이다.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나면 온 바닥에 낙엽이 깔린다. 내가 일하는 단지에서 경비 일이 처음인 노 씨가 있다. 젖은 나뭇잎을 쓰느라 비지땀을 흘린다. 경험 많은 경비원 박 씨는 젖은 낙엽이 안 쓸린다는 걸 알고 '가을철 비 오는 날은 경비원이 쉬는 날 아니냐!'라고 너스레를 떤다. 가만히 뒀다가 마른 뒤 치워야 된다는 말이다. 마른 나뭇잎은 바람에 뒹굴다 낮은 데나 귀퉁이에 모여 치우기가 훨씬 수월하다. 아닌 게 아니라 젖었던 바닥이 다음날 아침에는 말라 있고 나뭇잎은 바삭거린다. 젖었을 때에 비해 누워서 떡먹기다.

나뭇가지에 붙은 잎은 보내는 가을이 못내 아쉽기라도 한 듯 부들거리다가 어쩔 수 없이 낙엽이 된다. 남은 잎이 한꺼번에 떨어져 주면 좋으련만 시나브로 떨어져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그래도 마지막 잎 새는 긴 겨울을 날지 모른다. 경비원이나 미화원은 계절로 치면 어느 때보다 힘들 때가 늦가을과 한겨울이다. 낙엽 치우는 일 말고도 더 힘든 일이 기다리고 있다. 눈이 내려 쌓이면 치워야 된다. 눈 역시 오다 말다 하면 지켜 서서 계속 치우게 된다. 만약 치우지 않아 언 바닥을 지나가는 사람이 넘어지기라도 하는 날엔 덤터기를 쓸 수 있다. 염화칼슘이나 소금 등 제설제를 쓰기도 하지만 토양이 오염되거나 자동차 하부가 녹슬기 쉬워 사용을 자제하는 편이다. 자칫 화단에 있는 나무에 손상을 줄 수도 있다. 몇 해 전 쌓인 눈을 화단에 퍼 올렸다가 낭패를 당한 적이 있다.


  경비원이 힘들기는 그때만이 아니다. 설과 추석 명절 때면 택배물품 관리를 해야 한다. 사실 그런 건 경비원이 해야 되는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분실될 우려까지 안고 산더미처럼 쌓이는 물품을 관리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주차관리나 재활용품 분리처리, 외곽 청소 등도 그렇다. 심지어 층간소음 분쟁까지 해결해야 될 때가 있으니 경비원 하는 일이 참 많다. 그러면서도 ‘감시 단속적 근로자’라 한다. 심신의 피로가 적은 일, 휴게 또는 대기시간이 많아 노동력의 밀도가 낮고, 육체적 피로나 정신적 긴장이 적은 일을 한다 하여 붙여진 용어이다. 관할 관청에 ‘적용제외 승인’을 받으면 법정근로시간과 휴게 및 휴일 등에 관한 일반 규정(근로기준법 관련 조항)의 적용을 받기에 한계가 있다.  


  영동고속도로 어느 휴게소에 '미화원이 된 신부님' 박 씨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50대로 27년 동안 사제복을 입고 '신부님'이라 불리다가 안식년을 기해 미화원으로 한 달간 일했다. 여러 가지 일 중 미화원을 택한 것은 그만큼 희생과 봉사가 뒤따르고 힘든 일임을 증명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2013년 말쯤부터 약 2개월간 경비원으로 일해 본 경험이 있다. 경험이라기보다 체험이라 함이 맞겠다.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힘들 런지 모르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있는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다. 나는 이미 3년 전부터 시설관리 분야에 발을 들여놓고 공백 기간이 있어 그곳을 찾았다. 양재천 너머에 지은 지 27년(당시) 된 40, 50평대 고급 아파트 단지다. 오래되고 단지 면적이 넓다 보니 나무가 무성해 가을이면 잎이 무척 많이 떨어진다. 미화원이 따로 있어도 그들이 출근하기 전 도로청소는 경비원 몫이다. 눈 오는 날이면 그 넓은 곳 눈도 치워야 되지만, 지은 지 오래돼 지하주차장이 따로 없고 지상주차장은 좁아 이중 삼중으로 세운다. 저녁에 주차할 때나 아침에 안 쪽 차를 꺼낼 때 밀어야 한다. 그 큰 고급차들을 밀려면 젖 먹던 힘까지 다 쏟아야 된다.


  나 같은 신입사원은 각 동(棟) 초소에 결원이 생길 때까지 정문근무를 거쳐야 한다. 정문 근무자는 출퇴근 시간이면 야광조끼를 입고, 교통안내 봉을 들고 단지 주출입구 앞 대로변에서 교통정리를 해야 된다. 경비모를 쓰고 남녀노소 드나드는 모든 사람에게 군대 위병소처럼 거수경례도 한다. 정문에서 한 달쯤 지나 아파트 동으로 근무지가 바뀌었다. 정문에서 하던 교통정리 대신 심야 순찰을 해야 한다. 소의 무엇처럼 생긴 순찰용 시계를 메고, 전등을 들고 돌아야 한다. 밤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 한 시간씩 교대로 순찰을 한다. 초저녁이나 새벽녘 당번은 그런대로 할 만하지만 한 시나 두세 시 경에 걸리면 곤욕스럽다. 신입사원인 나는 긴장된 탓인지 잠을 한 숨도 못 잔 적이 여러 날이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아파트 동 입구 초소에 연탄불을 피워 난방을 했다. 지금으로부터 겨우 7년 전인데 말이다. 잠자는 곳도 따로 없이 각 동 출입구 초소에서 의자에 등을 대고 잠을 자야 했다. 아마 지금도 그러리라 짐작된다.


  이쯤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된 경비원이 아닐까 싶다. 그 대신 급여는 강북지역보다 월 30~40만 원 더 준다. 또 추석명절과 연말연시, 여름휴가철에 주민들이 모아 주는 돈을 합하면 한해에 두세 달 분의 웃돈이 생긴단다. 나는 계획했던 일을 하기 위해 설 직전에 퇴사했다. 동료들은 며칠만 버티면 한 달분 봉급이 생기는데 그걸 안 받고 나가는 나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 돈을 받고 나서 퇴사한다는 것은 양심에도 거리낄 일이다. 나는 요즘 경비원들에게 내 체험담을 들려주곤 한다.


  우리나라 아파트 거주자가 전체 인구의 60%에 가깝다. 더 늘어나리라 본다. 경비원은 주민의 편의와 안전 그리고 재산보호를 위해 일한다. 따라서 그들은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사람들이다. 가족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경비원이나 미화원뿐만 아니라 음지에서 힘들게 일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 때문에 많은 사람이 맘 놓고 살 수 있다. 그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될 것이다.

이전 12화 나의 1987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