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흔이 다 돼서야 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문학청년'이나 '문학소녀'라는 말은 더러 들어 봤다. 잘 어울리지는 않으나 아무튼 늦깎이 '문학노인'이다. 처음 1년여는 신이 났다. 주위 모든 것이 글감으로 보였다. 일 주일에 한편정도의 글은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글다운 글은 아닐지라도 실제 일 년 간 한 달에 세 편 정도를 썼다. 쓴 글을 문학카페에 올리거나 문학 잡지사에 보내면 글을 실어 보내준다.
내가 쓴 글을 읽어보면 문학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창피하고 고민스럽기까지 하다. 잘 나가는 박 준이라는 젊은 시인은 “어느 순간, 전에 썼던 못난 시들을 모아 ‘화형식’을 했다.”고 한다. 그 말에 적극 공감한다. 그렇다면 내가 쓴 글 모두가 ‘화형식’감이니 이를 어찌 해야 하나! 글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이 어디 있었겠는가마는 스스로 재능이 없다 생각하고 시도도 해보지 않는다. 너무 잘 쓰려는 강박관념 때문에 더 어려울 수 있고 금감이 떠오르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쓸거리를 찾았더라도 재료가 충분하지 않아 포기하기도 한다. 나는 글 쓰는 재능은 특별히 없어도 쓰고자하는 열정은 지니고 있다. 너무 잘 써야겠다는 욕심도 그다지 없다. 평소 쓰고 싶은 제목이나 줄거리를 자주 메모하고 재료도 모으는 편이라 글감도 그리 궁하지 않다. 그런데 전과 달리 쉽지 않다. 슬럼프라고 생각되지도 않지만 그게 잘 되지 않는다.
글 쓸 시간이 없어서 못쓴다함은 핑계에 불과하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시간이 없어 못하는 사람은 시간이 있어도 못한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명언이다. 글쓰기는 찬스가 중요하다. 여행이나 행사를 마치고 그 일에 대해 곧 글이 돼야 하는데 며칠 지나면 영영 쓸 수가 없다. 아름다운 삶을 살다 간 어느 그룹 총수의 20주기에 쓰려던 글도 때를 놓쳤다.
글쓰기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나 자신이 바른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문학 작품과 정반대의 삶을 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답지 않은 삶을 살면서 아름다운 작품을 쓸 수는 없는 겁니다. 문학은 놀랍게도 속이는 게 불가능합니다.”
“글과 가까운 삶을 살려면 자주 뒤돌아보고, 반성하고, 머뭇거리고,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야 가까스로 좋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어떤 글을 쓰겠다기보다 어떤 삶을 살겠다는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잘 쓰려면 잘 살아야 합니다. 글은 자신의 생각이고 삶이기 때문입니다.”
박 준 시인이 한 말이다. 한마디 한마디가 나에게 주옥같이 느껴진다. 나는 증오심이 가득 쌓인 체 지낸다. 잘 살지 못하고 있다. 아니 그리 살 수가 없어서다. 증오심을 버리고 평정심을 유지하려 해도 그게 쉽지 않다. 그러니 무슨 글을 쓰겠는가. 그러고도 좋은 글이 나온다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어느 여성 노인 정신질환자로부터 누명을 쓴 체 여러 해 송사(訟事)에 시달렸다. 노인네란,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 2년 여간 전세를 살던 집 주인이다. 정신질환자라 함은 나를 괴롭히는 노인의 작은아들이 하는 말이다.
“저의 어머니로 인해 선생님(나를 지칭)께서 너무 많은 고통을 겪게 해(자주 고소를 해) 자식으로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중략>
사실 저의 어머니가 정신이 오락가락합니다. 자식인 제가 잘 알지요.”
오랫동안 당하고 보니 그게 맞는 말이다. 한마디로 미친 X한테 물린 것이다. 정신질환 중 ‘리플리 증후군’이란 게 있다.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면서 스스로 만든 허구를 진실이라고 믿고 거짓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이다. 증상으로 보아 그 병이라 생각한다. 나는 졸지에 몹쓸 흉악범이 된 셈이다. 입에 담기조차 쑥스런 절도 등 온갖 죄를 씌워 이사를 나온 지 6개월이 지났는데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다. 법원에 임차권등기명령신청과 보증금반환소송을 거쳐 부동산강제경매신청 중이다. 집을 경매로 날리고 쫓겨나 보면 제정신이 들지 몰라도 아들말도 듣지 않는다고 한다.
절도(돌 두꺼비, 화분, 양산), 모욕, 협박, 공동폭행(아내와), 물손괴(포도나무 독살 등) 등으로 계속 고소를 한다. 돌 두꺼비의 경우 대법원에 재항고까지 했으나 기각결정이 났다. 모욕, 협박, 공동폭행도 서울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거쳐 대법원에 재항고했으나 기각이다. 지금까지 단 한 건의 혐의도 인정되지 않았다. 검찰과 법원의 처분(결정) 내용은 모두 ‘기각’, ‘각하’, ‘혐의 없음’이다. 그러다보니 나날을 증오심으로 지낸다.
티베트 망명정부 정치 지도자 스님 달라이라마는 “부처를 담을 수 있는 그릇에 남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생각을 담고 다닌다면 소중한 인생을 망치는 것이 됩니다. 내 몸뚱이에 남을 증오하고 미워하는 생각을 품고 다니면 결국 내 자신이 먼저 망가져 버릴 것입니다. 부처의 길을 가야할 소중한 육신에 남을 미워하는 더러운 생각을 담아 두어서야 되겠습니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