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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대 Nov 05. 2020

친구와 돈

세상을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다. 그것은 건강 문제일 수 있고 상대와의 관계 때문일 수도 있다. 일이 뜻한 대로 되지 않아서이거나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그럴 수도 있다. 그 사정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내가 살 집으로 이사를 가지 못하고 길거리에 나앉게 될 형편에 놓였던 적이 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은행이건 개인이건 빚을 지면 잠을 제대로 못 잤다. 나의 경우 돈을 넉넉히 모아두지도 못한 데다가 정부의 9.13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은행 대출도 꽉 막힌 상태였다. 몇 달 전부터 걱정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내 힘으로 어찌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지금은 어려웠던 돈 문제가 해결됐기에 이 글을 쓴다. 


돈이 필요한데 집안 이곳저곳 형제들과 자식들 사정을 들어 보니 공교롭게도 여의찮다. 최근 집을 사기도 하고 투자를 해 도저히 내 사정을 들어줄 입장이 아닌 점이 충분히 이해된다. 만약을 대비해 연 12% 이자를 줘야 하는 사채도 부탁해 두었다. 그다음은 평소 가까운 사람 중 여유가 있을만한 사람을 순서대로 적어 본다. 우선순위를 바꿔보기도 하고 명단에서 빼거나 새사람을 불러다 넣어 보기도 한다. 대부분 친구들이다. 가까이 지내는 친구사이일수록 돈 부탁하기는 쉽지 않다. 


사정을 들은 친구들 반응이 여러 가지다. 각박한 세상인심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다. 경기도 이천에 사는 권*곤 친구는 사정을 듣고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돈까지 빌려 보내 준다. 서울 성내동에 사는 김*만 친구는 은행에 마이너스 대출을 해 보탠다. 사채를 포함해 위기를 넘기고 있던 중 소문을 들은 서울 용두동에 사는 80대 이*임(남자이건 여자이건 ‘왕 언니’라 부름)님이 선 듯 돈을 입금해 주었고, 경기도 광주에 사는 이*모 후배는 일부러 먼 길을 찾아와 적지 않은 돈을 즉석에서 입금해 준다. ‘왕 언니’와 광주 후배 덕에 이자가 비싼 사채를 정리하게 됐다. 


돈을 빌린 나는 빌려 준 사람들이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일일이 차용증서를 작성해 보냈고, 이자도 덧붙여 보냈다. 이자 놀이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많이 보내느냐고 하지만 그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다.


왕 언니는 보내겠다는 이자를 극구 받지 않고, 은행계좌번호도 알려주지 않는다. 왕 언니는 몇 년 전 돌아가신 부군 홍*의 큰 형님과 함께 IMF 금융위기 때 사업이 어렵던 이웃을 위해 저금통장을 선뜻 내놓던 의인(義人)들이다.


돈을 빌려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도 사정이 안 돼 안타까워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여윳돈이 있어도 시치미를 떼고 다른 투자처만 찾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입으로만 번지르르 걱정해 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심지어 돈 부탁받은 그 상황에서 얼른 빠져나가고 싶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이지 돈 빌려주라는데 좋아할 사람은 없다. 내게 부탁했어도 아마 그럴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문제는 내게 있다. 나와 맺어온 관계가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아무튼 어려운 일을 당해 보면 진실한 친구관계를 확인할 수 있게 되나 보다. 내게 큰 힘이 돼 주고, ‘살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준 친구들, 지인, 후배가 참 고맙다. 그들과는 시인 구상과 그의 친구 화가 이중섭과의 우정에 비겨도 손색없는 값진 친구들이다. 그들에 대한 고마움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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