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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대 Sep 29. 2020

마음의 거리

  2019년 말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온 세계가 일 년 가까이 앓고 있다. 확진자 숫자가 줄어드는 듯하다가 수도권에 이어 충청, 호남, 영남 등 전국에 늘어나고 있다. 늦게 퍼지기 시작한 나라들도 우리나라를 앞지르기도 한다. 발생지인 중국보다 미국, 브라질, 인도, 러시아, 페루, 칠레 등이 더 많다. 특히 미국은 확진자나 사망자 숫자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있어 세계 최강국가로서의 체면을 구기고 있다.


  코로나 19는 경계를 늦출 수 없다. 바이러스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마스크 쓰는 것은 기본이 됐다. 마스크 쓰기와 함께 사람들 사이를 2미터 이상 유지하자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고 있다. 바이러스가 무증상자로부터도 감염될 수 있다 하니 멀쩡해 보이지만 저 사람이 내게 바이러스를 옮기지는 않을까 하는 의심과 공포로 자연히 타인에 대한 접촉을 피하거나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물리적 거리두기’라 하다가 ‘신체적 거리두기’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는 자칫 우리가 살아가는 관계인 ‘마음의 거리두기’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일 것이다.  


  사람들의 이동이 눈에 띄게 줄었다. 전철 승객이 평소보다 훨씬 줄었다고 하나 여전히 전철이나 버스를 이용하면서 다른 사람과 마주쳐야만 한다.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의 이용률이 전년 동기 대비 70% 가까이 증가했다고 한다. 모임이 줄고 이동을 덜하다 보니 코로나 사태를 맞기 전보다 시간이 많아졌다. 사람 많은 곳을 피해 산을 찾게 되고 자전거를 자주 탄다. 평소 주말보다 등산객이 훨씬 많아 서로 비켜가기조차 힘들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많다. 올림픽대로나 강변북로 길을 피해 자전거 타는 사람이 비교적 적은 양재천을 따라 과천으로 가거나 중랑천 또는 구리 왕숙천 길을 이용하기도 한다.


  바이러스는 사회관계를 따라 흐른다. 따라서 여러 분야의 생활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어느 언론인 유튜버가  명보극장에서 ‘1917’이라는 영화를 관람했다 한다. 3백 석의 영화관에서 단 4명이 보았다는 말을 듣고 아내와 같이 ‘1917’을 보러 서울 광진구에 있는 영화관을 찾았다. ‘1917’은 우리나라 영화 ‘기생충’이 아니었다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을 영화이다. 시상식에서 촬영상 등 다른 여러 상을 받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2백 석 영화관에서 단 5명이 관람했다. 코로나 19로 인한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재택근무가 늘고, 동영상 교육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또 온라인 쇼핑이 대세를 이뤄가고 있다. 크고 작은 행사나 모임, 전시, 공연이 취소되거나 미뤄지고 관광여행도 그렇다. 종교기관, 가족과 친구, 이웃, 직장동료가 바로 감염의 주된 매개체가 되고 있다. 내가 속한 단체에서도 미루어 둔 몇 가지 크고 작은 행사를 언제 열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거리두기’는 나 스스로가 하지만 남에게는 ‘오지 마세요’가 된다. 결혼 풍속이 바뀌었다. 서울에서 하는 결혼식 장면을 대구 하객이 축하해 주는 온라인 결혼식이 화제였다. 이날 신랑과 신부가 실시간 영상으로 양가 친척·지인과 축하 메시지를 주고받았을 뿐 결혼식장에 참석을 원치 않았다.


  내가 속한 단체 회원은 병원에 입원한 아내를 몇 달 동안 만나지 못하고 있다. 언제쯤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장례식의 경우 평소라면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고 유족을 위로하느라 문상객은 당연히 붐벼야 좋다. 얼마 전 가까이 사는 고향 친구가 모친상을 치렀다. 그 어머니는 생전에 나를 무척 반겨 주셨던 분이다. 친구는 가족들만이 어머니를 고향 선산에 모시고 돌아와서야 나에게 알린다. 섭섭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음을 이해한다.


  전국의 명소나 지자체에서는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을 맞으면 이를 즐기러 나들이 오는 사람을 더 많이 맞으려고 기를 쓴다. 그러나 금년은 달랐다. 벚꽃의 명소 경남 진해에서 1963년부터 57년간 매년 이어져 오던 벚꽃축제 ‘군항제’를 열지 못했다. 전남 광양 매화꽃 축제, 구례 산수유축제가 그랬다. 제주 유채꽃밭은 꽃이 피기도 전에 갈아엎었다, 내가 사는 서울 광진구에 벚꽃으로 이름난 워커힐 길에도 ‘오지 마세요’, ‘내년에 오세요.’라 써 붙여졌었다.


  ‘옛말에 음식 끝에 정(情) 난다.’는 말이 있다. 사람끼리 함께 음식을 먹을 때 정이 깊어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포장식으로 혼자 밥 먹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식당에서도 서로 마주 보고 앉지 않고 등을 보거나 지그재그로 앉아 침묵하면서 신속하게 먹어 치운다. 그러니 무슨 정이 나겠는가? 코로나 19로 인해 신조어도 등장했다. 재채기나 잔기침에도 코로나가 아닐까 걱정하게 된다는 의미의 ‘상상 코로나’, 한때 금처럼 귀한 마스크란 뜻의 '금(金)스크'라는 말이 생기고 재택근무 등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주부들이 돌아서면 밥하고, 돌아서면 밥하고를 뜻하는 ‘돌 밥 돌 밥’이라는 재미있는 말도 생겨났다.


  세계 모든 사람을 공포로 모는 코로나 19라는 복병을 만나 누군가로부터 바이러스가 옮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으로 지내고 있다. 손이 감염원으로 알려지자 반가운 사람을 만나도 인사마저 제대로 하지 못한다. 뉴질랜드 마오리 족처럼 코를 맞대거나, 유럽식으로 포옹을 하거나 볼 키스는커녕 악수도 주먹을 대는 정도로밖에 하지 못한다.


  어느덧 여름이 지나갔다. 바이러스라는 시련은 반드시 지나갈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관계를 맺으면서 산다. 혼자서는 살지 못한다. 사회적 동물이라 했다. 개인으로서 존재하고 있어도 끊임없이 타인, 즉 사회와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 사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관계 맺고 사는 우리 서로가 어쩔 수 없이 사회적 거리는 두더라도 ‘마음의 거리’는 두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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