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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대 Oct 08. 2020

이젠 통행료가 아깝지 않다

자동차 운전 사고 경험담

지난겨울 들어 첫눈이 내릴 때다. 눈 내리는 날이면 어릴 적 눈밭을 뒹굴다가 눈싸움을 하거나 눈사람 만들던 때가 생각난다. 눈 내리는 가로등 불빛 아래를 연인과 함께 거닐던 일, 아니면 눈과 얽힌 다른 추억 하나쯤은 누구나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옛날 좋았던 추억보다 눈길을 운전하면서 사고 났던 일이 뇌리 스친다.

운전을 하다 보면 크고 작은 사고를 내기도 하고 당하기도 한다. 이십 년이 훨씬 지난 전북 익산에 살던 때 일이다. 모처럼 설 명절을 맞아 가족과 함께 경북 영천 처가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대구 광주 고속도로(당시 팔팔 고속도로)에 20센티미터가 넘는 폭설이 내렸다. 경남 창원에서 살 때는 겪어보지 못한 일이다. 물론 스노체인이 있을 리 만무하다. 당연히 갖추어야 할 것을 갖추지 않고 무모한 운전을 한 것이다. 되도록 차가 지나가지 않은 눈길을 택해 기어간다. 평지나 내리막길도 문제지만 오르막길은 앞차와 거리를 유지해 1단 기어로 천천히 따라 올라간다. 가다가 간격을 유지하느라 멈췄다가는 출발을 할 수가 없다. 틈이 조금만 생기면 뒤에서 추월해 앞지르기하는 차가 얄밉기까지 하다. 아내와 중학생, 초등학생인 두 아이가 차를 밀어야 비틀거리면서라도 오를 수가 있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위험을 무릅쓰고 재빨리 올라타야 한다. 수차례를 그렇게 해서 남원을 지나 전주에 왔다. 이제 집에 다 온 느낌이다.

경북 영천을 출발한 지 열두어 시간이 지나 완주군 삼례 국도에서다. 다 왔다는 생각으로 방심을 했던 모양이다. 평평하고 완만한 커브 길인데도 미끄러져 맞은편에서 오던 택시와 정면충돌했다. 눈 덮인 길이라 중앙선이 보일 리 없지만 내 잘못임에 틀림이 없다. 시속 이삼십 킬로미터 속도로 달렸지만 정면충돌이라 양쪽 차량 앞쪽이 크게 부숴졌다. 사람은 다행히 부서진 차에 비해 덜 다쳤다. 내 가족보다는 택시기사가 더 많이 다친 것 같다.

다음날 바로 택시기사가 입원한 병원에 찾아갔다. 조건을 제시한 후 신문 광고지 뒷면 백지에 ‘언제 어디서 일어난 차량사고 건에 대해 돈 얼마를 주는 것에 합의하고 차후 일체의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합의서를 작성해 손도장을 받았다. 순순히 응했던 택시기사가 며칠 부터 “목이 아프다”, “눈이 이상하다”, “이빨이 흔들린다.”라고 하면서 계속 돈을 더 요구한다. 동료기사들이 더 받아내라고 부추긴 모양이다. 그러면서 너덧 장의 진단서를 떼 경찰서에 제출했다. 나는 합의서를 제출하자 이만 원짜리 범칙금 스티커 한 장으로 일이 끝났다. 택시기사는 결과적으로 여러 장의 진단서 떼는 비용과 오가는 택시비만 날렸다. 사고 후 신속하게 합의했던 것은 참 잘한 일이다.

그보다 훨씬 전 면허 취득한 지 보름 만에 일어났던 첫 번째 사고 이야기다. 남의 12인승 승합차를 빌려 경남 마산 어느 증권회사 지하주차장을 내려갈 때다. 벽에 튀어나온 전등을 들이받았다. 전등 커버 유리가 1센티미터가 넘는 두께다. 운전 잘못한 내 탓보다 좁고 소라 고등처럼 생긴 주차장 내리막길에 전등을 왜 벽 속에 묻지 않고 튀어나오게 했는지 불만스럽기만 했다. 나중에 가 보니 운전이 미숙했던 것뿐이었지 내리막길이 그리 좁지 않음을 알게 됐다. 그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전등과 차 문짝 한 개를 변상해 주었다. 수업료를 톡톡히 지불한 셈이다.

또 십여 년 전 여름휴가 때 일이다. 내가 속한 어느 단체 소유의 12인승 승합차를 빌려 가까이 지내는 네 가족 여덟 명이 3박 4일간 휴가를 갔다. 내 고향 전남 여수를 거쳐 경북 안동댐 월영교와 친구 고향인 예천에 갔다. 세금 내는 나무로 알려진 경북 예천군 천향리 석송령과 안동 화해 마을을 거쳐 서울로 올라오는 마지막 날이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중앙고속도로 상행선을 따라 내가 운전을 했다. 날이 어둑어둑 해 지는 시간에 남제천터널을 지날 때다. 2차선을 달리는데 오른쪽 앞 타이어가 펑크 나면서 오른쪽 벽면 앞턱에 부딪치고 심하게 흔들린다. 나는 핸들을 잡고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기를 썼지만 왼쪽 1차선에 정확하게 180도로 돌아 섰다. 나는 비상등을 켜고 얼른 생각나는 119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는 동안 일행 모두는 우산을 들고나가 차가 오지 말라고 맞은편을 향해 흔들어 댔다. 맞은편에서 차가 달려왔다면 정면충돌로 대형사고가 났을 게 뻔하다. 119와 도로공사가 서로 연락이 됐는지 잠시 후 웽웽거리며 방송 소리가 난다. 안이 울려 윙윙대는 소리만 날 뿐 뭐라고 말하는지는 알아들을 수가 없다. 터널 밖 입구는 차가 진입하지 못하도록 이미 차단을 했던 모양이다. 터널 안에서 차가 진입하는 쪽 정면을 쳐다보고 내 차가 서 있는 동안 한 대의 차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 일이 있은 후 십여 일 동안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이는 신의 가호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된다. 우리 네 가정은 그 일이 있은 다음 교회 예배일을 맞아 똑 같이 감사헌금을 바쳤다. 항상 몰려다니는 우리를 아는 사람들이 "저 사람들 틀림없이 무슨 일이 있었구먼!" 하고 소곤거렸다. 이제는 고속도로 통행료 내는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하다. 죽었다가 살아 나 두 번 산다는 생각으로 감사하며 지낸다.

사고를 겪고 나면 후회와 아쉬움이 남는다. 초보운전 때부터 사고를 내지 않으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작은 접촉사고 정도의 경험만으로 능숙한 운전수가 될 수 있다면 다행이다. 숙달이 된 뒤에도 사고를 낸다. 내가 겪은 눈길 사고는 미리 일기예보에 맞춰 출발시간을 조절하던지 스노체인이라도 준비했어야 했다. 무엇보다 도착지 가까이에 왔다고 방심한 것이 사고 원인이었다. 터널 속 사고도 준비를 소홀히 한 탓이다. 남의 차를 빌려 타면서 타이어를 점검했어야 되는데 말이다. 운전뿐 아니라 어떤 사고라도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철저히 준비해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단 한 번의 사고로라도 모든 것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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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석송령(石松靈) : 경북 예천군 천향리에 있는 소나무로 영감(靈感)이 느껴져 지은 이름이라 한다. 천연기념물 제294호이고 수령은 600년으로 추정되며, 높이가 10m, 가지와 잎이 무성한 윗부분이 우산처럼 반원형을 이루고 있고 그 길이가 30m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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