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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에는 시골에서 자식을 대학에 보내기란 쉽지 않았다. 소나 논밭을 팔아 학비를 대던 시절이라 대학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대단하게 여겼다. 특히 법대에 합격하면 동네에 현수막이 걸리고 잔치가 벌어졌다. 지금도 현수막을 걸기도 한다. 판검사, 변호사가 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면 가문의 경사로 여겨지고 우러러보기까지 한다. 그런데 요즈음 일부 법조인의 언행을 보면 꼭 우러러보이기만 한 건 아니다.
최근 인권변호사 출신 박원순 서울시장에 이어 하루 사이로 6.25 전쟁영웅 백선엽 장군이 생을 마감했다. 백 장군의 빈소를 찾은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은 "백 장군은 한미동맹의 심장이자 영혼이었다."며 깊은 애도를 표하고 유족을 위로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100세 생일을 맞은 백 장군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생일을 축하하는 등 각별한 존경심을 표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백 장군을 육군 장(葬)으로 서울 현충원이 아닌 대전현충원에 안장한 점과 당연히 참배를 해야 할 사람들이 참배하지 않은 것을 두고 홀대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더구나 YTN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노영희 변호사가 MBN 뉴스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해 고(故) 백 장군에 대해 “6·25 전쟁에서 우리 민족인 북한을 향해 총을 쏴서 이긴 그 공로가 인정된다고 해서 현충원에 묻히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사회자는 그의 발언 부분에 대해 수정할 의향이 없느냐고 물었지만, 노 변호사는 “6·25 전쟁은 (우리 민족인) 북한하고 싸운 것 아닌가요? 그럼 뭐라고 말해야 하나요?”라고 반문하며 백 장군을 폄훼하는 발언을 더 강조했다. 현직 검사인 대구지검 서부지청 진혜원 부부장검사는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달려가 팔짱을 낀 사진을 SNS에 올리고 자기가 박 시장을 추행했었다고 말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 시장을 고소한 피해자를 조롱하는 듯한 글을 올려 빈축을 사기도 했다.
최근 이재명 경기지사와 은수미 성남시장에 대해 대법원 재판이 있었다. 이 지사는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2심에서 당선무효형인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었다. 대법원은 이 사건을 흔치 않게 TV로 생중계했다. 대법원장은 대체로 긴 판결문을 낭독했지만 한마디로 ‘거짓말을 적극적으로는 하지 않았다’면서 대법관 7:5로 무죄취지 판결했다. 이에 앞서 은수미 성남시장의 대법원 상고심이 열렸다. 1년 동안 개인적인 정치 활동을 위해 성남지역 어느 기업으로부터 모두 95차례 차량과 운전기사를 무상으로 제공받은 부분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본 사건이다. 대법원은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항소 과정 중 절차적 흠결(항소장 부실기재)’이라며 은 시장의 손을 들어줌으로 시장직을 유지하게 됐다. 이 두 대법원 판결을 두고 어떤 언론인은 ‘황당하다’, ‘기상천외하다.’고 꼬집었다. 법조계에서는 최근 법원이 유독 여권 인사들에 대해 관대한 처분을 내리고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판검사나 변호사는 보통사람에 비해 ‘말(언어-言語) 기술’이 뛰어나다. 이들은 입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기술도 가지가지다. 얼마 전 ‘법 기술’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지난달 판사 출신인 추미애 법무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냥해 "법 기술을 부리고 있다"라고 비판했던 말이다. 그는 “내 명을 거역했다.”고도했었다. 이 발언을 두고 ‘조선시대에나 있을 법한 표현’으로 회자됐다. “내 지시의 절반을 잘라먹었다.”는 말로도 주목을 받았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고도의 ‘말 기술’로 보인다. ‘말 기술’이 있어야 더 주목받고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이라 여길 것이다. 윤 검찰총장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고 ‘말 기술’을 발휘한 바 있다.
요즘 대단한 ‘말 기술’이 또 유행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추행을 당했다며 고소한 전 비서 A 씨를 ‘피해자’가 아닌 ‘피해 호소인’, ‘피해 고소인’으로 불렀다. 서울시, 정부, 여당 등 박 시장 편 사람들의 신조어다. 이를 두고 야권에서는 “가해자 박 시장이 죄를 짓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A 씨를 단지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사람’, ‘피해를 당했다고 고소한 것에 불과한 사람’ 일뿐, ‘피해자'로 인정하기 싫었던 모양이다. 언제부터 그렇게 ‘무죄 추정의 원칙’을 잘 적용했었는가?”라며 비꼬았다. 자기편 사람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 ‘말 기술’을 부린 샘이다. 뭇매를 맞고 나서 결국 ‘피해자’로 정정했지만 마지못해 고쳐 부른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판결로 기사회생한 변호사 출신 이재명 경기지사가 내년 재보궐 선거에 자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당헌대로 “성추행 사건으로 공석이 된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후보를 내지 말아야 된다.”는 취지로 말했다. 당헌 96조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는 조항을 든 것이다. 이 발언으로 당내 반대세력으로부터 항의를 받자, ‘의견’을 말했을 뿐 ‘주장’을 한건 아니라며 발언 하루 만에 꼬리를 내렸다. 의견과 주장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결국 동의어를 두고 '말 기술'을 부리다가 비난을 받았다.
지난 19일 서울 이화장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55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국가보훈처가 주관한 공식적인 행사 추모사에서 박삼득 처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대통령’ 대신 ‘박사님’이라고 일곱 번이나 호칭했다. 이를 두고 어느 우파 논객 언론인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언행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문재인 변호사’로 불러야 된다는 주장과 뭐가 다른가?"라고 말한다.
기술도 필요한 곳에 필요한 기술이 쓰여야지, 일반인도 아닌 공직자, 그것도 법조인이 교활한 기교로 ‘말 기술’을 부려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