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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본위너 글 날개 Mar 03. 2023

미련을 남기지 않을 연습

삼대의 호주 멜버른 여행에서 내 각오를 느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달라지는 점은, 어떤 부분에 미련과 후회를 남긴다는 것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것이다.


반백살도 아직 살지 않았지만 가끔은

'죽음 앞에 선다면, 내가 가장 후회할 것'이 있을지 생각해보곤 한다.

스티브잡스의 유명한 스탠퍼드 연설 중 '죽음을 인식하는 삶'(죽음 앞에선 나를 생각하면 쓸데없는 허례허식이 아닌 진실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성숙된 마음으로 인식할 수 있는)공감을 한 적도 있고,

무엇보다 20대에는 경험이 없고 용기가 없어서 할까 말까 하다가 말아버린 것들도 많기에 그 아쉬움 가슴에 담아 끌고 간다는 것이 얼마나 후회되는 일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늘 갈등과 선택을 해야 하는 우리네 인생에서 후회와 미련을 전혀 갖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순간의 어떤 상황 때문에 적당히 타협해 버린 나를 되돌아보며 괴로워할 일은 만들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일부터 순간순간 그렇게 대해 보기로  무렵

시드니에 잠시 머무는 나를 방문하신 친정엄마가 멜버른에 갈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다. 코로나로 한동안 여행에 마음을 닫고 있었고, 계획에는 없던 여행인지라 비용의 문제, 시간의 문제를 결정을 해야 하는 앞에서 어떻게든 비집고 이 여행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70세로 들어선 엄마가 건강해서 나와 함께 여행을 할 수 있을 때, 우리 아이가 시드니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멜버른에 가 볼 수 있을 때, 가지 않는다는 것은 언젠가 반드시 후회할 일임에 분명했으니까.


오래전, 다시 가기 힘들 귀한 장소에 여행을 함께 간 친구의 의외의 이중성을 본 후, 맞지 않는 사람과의 여행은 시간낭비, 체력낭비임을 느껴 어설프게 여행을 함께하지 않는다.

누구는 바빠서 함께하지 못하고, 누구는 사정이 있어서 급기야 취소하는 등 여행 멤버에 대한 갈증이 늘 있었다. (차라리 혼자 여행해야겠지만 안전상 또 그러지는 못했으니)


그런데 친정 엄마와, 그리고 함께 멜버른에 간 우리 딸, 그리고 나 셋의 조합은 각자 개성이 다르지만 함께 버무리면 맛이 난다.

스케일이 크고, 빠르고, 방향감도 있는 70세 엄마,

상황에 대한 촉을 세우며 알찬 플랜을 짜는 40대의 나, 영어소통의 자유와 깨알재미를 겸비한 10대 딸.


그렇게 오랜만에 만든 기회, 여 셋, 삼대의 여행.

멜버른에서 일주일이 주어졌다.


호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유럽의 스타일이 곳곳에 숨어있는 멜버른. 그 특유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내 기준에서 정말 후회 없을 만큼 열심히 보고 느꼈다.

누구는 여유와 휴식을 찾으러 여행을 오기에 그렇게 빡빡하게 지내는 것이 여행이냐고 묻기도 하지만,

내게 그런 유형의 여행이 필요했던 것은 10년 전이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이곳을 미련 없이 구석구석 바라보고, 삼대가 함께 할 수 있는  귀한 시간에 알차게, 미련 없이 충실하는 것.


머릿속에 맴도는 곳들은 빽빽한 스케줄일지언정 모두 갔다. 렌터카 없이 두발과 트램, 일일여행 신청 등을 믿고 곳곳을 탐색했다.

우연히 만나고 말을 섞게 되는 이들과 함께 걷기도 하고, 궁금한 맛이 느껴지는 것은 사 먹어보고 후회하기로 했고, 낯선 곳의 밤늦은 풍경을 셋이 서로를 믿고 느껴보기도 했다.


셋이 다닐 플랜은 거의 내가 짜게 되는데 여유 없는 일정이지만 나이 든 엄마도, 아직 덜 큰 아이도 함께 소화를 해나갔다.

세대가 각기 다른 우리지만 음식 스타일도, 걷는 스타일도, 마음도 합일이  여행이었다.






엄마는 한국으로 가시고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몸에 이상신호가 느껴져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으셨다. 그리고 받고 계신다. 

큰일이야 없겠지 믿어보지만,


심장이 쿵! 한다.


그때 멜버른 여행을 삼대가 하지 않았더라면, 어느새

후회하고 있었을 것 같다. 엄마의 건강에는 쭉 별 탈이 없어 그때 함께 하지 못했던 여행을 다시  할 수는 있을까 괜한 조바심이 났을 것 같다. 

그때의 선택에 맘을 쓸어내린다.


아름다웠던 멜버른은

이색적인 광경도 물론 좋았지만,

 안에 내포된 의미가 더 진하게 와닿는다.


멜버른의 아름다움은 우리 삼대가 머물렀던 곳이고,

함께 척척 손발이 맞아 행복했던 기억이 담긴 장소이기에  빛이 나는 장소일 뿐이다.

아픈데 없이 건강하게 웃으며 걷던 엄마가,

아직 사춘기가 심하지 않아 할머니와 엄마와 생글생글 걸어주던 우리 아이가 함께하던,

셋이 함께하기에 타이밍이 적절했던 곳으로 기억될 것이다.


사랑한다는 표현이던,

하고 싶던 것을 하는 선택이던,

두 번 다시  일은 내 앞에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와 연관된 것들에 충실히 마음을 담아내보기로 다시 마음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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