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 클라인바움 (지은이), 한은주 (옮긴이) | 서교출판사
죽은 시인의 사회란 사모임의 명칭이다.
명문학교의 부임한 존 키팅은 꽉 막힌 사고방식의 교사들에게 억압된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들을 보며 가슴 아파한다. 그들 개개인의 특성, 개성 모든 것이 다른 데 모두 동일한 것을 요구하고, 바란다. 규칙 이외의 모든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가르치는 것을 보았다.. 국어 선생님이었던 그는 학교에서 몰래 연극부를 만들고, 문제의 학생들을 설득하여 연기를 가르치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그게 틀린 것이 아님을 가르친다.
나는 책으로 먼저 접했다. 책을 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TV를 통해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본 후에 사실 책 속에서 느꼈던 감동은 다 잊어버렸다. 영화 속에 로빈 윌리엄스 연기에 매료된 것이다. 그는 존 키팅이 되어 진심으로 연기했다. 그의 표정 하나, 대사 한 마디는 감동이었고, 마지막 장면은 꽤나 인상 깊다. 책과 동일하면서도 다른 표현에 감동했다.
당시 20대였던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같은 환경은 아니었지만, 억압된 감정 표현이 서툴 때였기에 더 감정 몰입이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을 다시 읽은 지금, 지금도 변함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과연 내 감정에 솔직한가? 나는 지금을 즐기고 살고 있는 것인가? 나는 과연 행복한가? 다시금 내가 질문을 던져 보지만, 무엇하나 자신 있게 답은 못하겠다.
반항적인 아이들은 진심을 표현할 줄 모른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게 뭔지 몰라 소리 지르고, 잘못된 행동을 한다. 정작 말해야 하는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10대에서 20대까지 아니 그 오랫동안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다 말할 수 없었다. 누구나 좋아하고, 하고 싶고, 해야 할 일이 다르다. 그러나 지금 살고 있는 사회도 여전히 똑같은 것만 강요한다.
돈, 직위, 명성, 유명세
이 중에 하나라도 있어야 성공했다고 말한다. 무엇하나 내세울 게 없으면 마치 실패한 삶이라도 된 것처럼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다. 아무리 귀천 없는 사회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시선은 여전한 것이다. 이 책을 읽었을 때 반항심이 다시 눈을 들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 해도 이때의 시대와 지금의 시대가 변했을까? 아주 조금 바뀌었다. 아주 조금. 하지만 오히려 더 무서워졌다. 억압된 사회에 있던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면 존 키팅 같은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 그와 아무도 모르는 연극을 준비하고, 해방감을 느끼고, 꿈을 꾸고 싶다. 그랬다면 나의 인생도 바뀔까?
내가 존 키팅이 되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런데 나에게 그런 용기가 있을까? 적어도 내 아이에게만 존 키팅 같은 부모이고 싶었는데, 과연 아이들은 그리 생각할지 갑자기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