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회 항공공모전/엽편소설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하늘을 날았다. 빨간 보자기를 목에 두르고 슈퍼맨이라도 되는 것처럼 대문 높이에 있던 장독대가 주르륵 세워진 중간 옥상에서 뛰어 내렸다. 아주 찰나의 행복과 일주일의 병원 신세, 그리고 한 달의 불편함을 얻었다. 이때 얻은 찰나의 행복은 꿈을 향한 발판이 되었다.
그때부터 나의 꿈은 하늘을 나는 것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제주도에 여행을 가게 되었다.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게 된 것이다. 김포 공항에서 처음으로 엄청나게 큰 비행기를 보았다. 활주로에 일정한 간격으로 있던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것을 보며 우리 차례가 언제인지 전전긍긍했다. 비로소 우리 가족이 탄 비행기가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을 작은 창문으로 보았을 때 감동이었다. 몸으로 전해지는 진동과 함께 붕 뜨는 느낌은 분명 하늘을 나는 것과 비슷했다. 이윽고 도착한 하늘에서 풍경은 1시간도 되지 않는 비행이 아쉬울 지경이었다.
파란 하늘 위에 구름, 그리고 그 위에 있는 태양의 눈부심. 나는 구름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 당장이라도 창문을 열고 구름 위로 폴짝 뛰어내리면 그 위를 걸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때 옆에 앉은 누나가 아래를 보라고 말했다. 조그마한 집들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언젠가 누나가 보여준 위성사진 같았다. 그보다 더 선명한 느낌에 창에 이마를 붙이고, 정신없이 구경했다. 그때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점점 집들과 가까워지면서 부딪히는 것은 아닌지 걱정까지 되었다. 옆에 앉은 누나는 멀미가 난다며 구역질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이 행복함이 끝나간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아 아쉬웠다.
제주도에서는 잠수함을 타고 바다 안도 구경했다. 배를 타기도 했으며, 바다도 실컷 구경했다. 높은 산 위에 여전히 녹지 않은 눈도 구경했지만, 나의 머릿속에는 언제 집에 가는지가 더 중요했다. 매일 아침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언제 비행기 타?”
“일요일에 갈 거야. 우리 인수는 여기가 재미없어?”
“아니, 재밌어. 그런데 나는 비행기가 더 재밌어.”
“그래? 그럼, 우리 인수는 파일럿이 될 거야?”
“파일럿? 그게 뭐야?”
나의 물음에 엄마는 웃으며 답했다.
“비행기 조종사를 말하는 거야. 비행기를 조종 아니 운전하는 사람을 말해.”
“파일럿!”
그때 처음 알았다. 파일럿에 대해 알려준 엄마는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체력도 좋아야 한다며 겁을 주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하늘을 날 수 있다면 그깟 공부는 하면 되었다. 체력은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나의 꿈은 파일럿이 되었다. 나보다 5살이나 많았던 누나에게 파일럿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누나는 아빠가 사준 노트북으로 열심히 찾아 주었다. 한참 후에 노트북을 닫았지만, 말은 하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왜?”
제법 근엄한 목소리로 말하는 누나는 진지했다.
“지금처럼 공부하면 절대 파일럿 못해. 지금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열심히 운동해. 엄마가 보내주는 태권도 학원 빠지지 말고, 열심히 다녀. 또 학교에서 하는 영어 수업, 열심히 들어. 영어가 한국말처럼 나오게 열심히 해.”
“응?”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내게 누나의 말은 선뜻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누난 내 어깨를 잡으면서 말했다.
“파일럿은 비행기를 조종하는 사람이지?”
“응.”
“그러면 비행기에는 몇 명이 탈까?”
제주도 갈 때를 생각했다. 몇 명인지는 모르지만, 우리 반보다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50명?”
“아니, 200명이 넘어.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타는 비행기도 있지.”
“근데 그건 왜?”
누나는 어깨에서 손을 내리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 많은 사람의 목숨이 파일럿에게 달린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목숨이라는 말은 확실히 내 머리에 꽂혔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운동했다. 그때 누나의 조언은 나의 꿈을 이루는 데에 큰 역할을 해줬다.
나는 파일럿이라는 화려한 모습 뒤에 목숨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것에 더 매력을 느꼈다. 중학생이 된 후로는 정확하게 진로를 잡고 공부했다. 선생님과 진로 상담을 통해 파일럿을 되기 위한 과정에 대해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나보다 더 열정적으로 알아봐 주신 덕에 나의 꿈은 착실히 절차를 밟아갔다. 선생님은 비행기 기장이 되면 손님들에게 안내도 해야 한다면서 공부, 운동 외에 다른 것도 신경 쓰라는 충고를 주셨다. 결국 사람을 위한 직업인만큼 교우관계나 대외적인 일도 경험이라며 너무 한쪽으로 쏠리지 말고, 균형 있게 학교생활을 하길 원했다. 좋은 스승을 만나면 인생이 바뀐다는 말처럼 나의 삶은 다채로워졌다. 덕분에 공부와 운동 외에 관심 없던 나에게 학교생활은 즐거움의 연속이 될 수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파일럿을 만났다. 비행기를 타러 간 공항에서 우연히 마주친 거였다. 그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학창 시절은 다시 오지 않아요. 학생!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창 시절은 잘 지내도록 해요. 그리고 꿈이 있다면 길은 언제든지 생기니까 절대 꿈을 포기하지 말고요. 시간이 걸려도 반드시 이룰 수 있을 테니, 조바심도 같지 말고요. 언젠가 함께 비행할 날이 왔으면 좋겠군요.”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버지 또래의 파일럿이었다. 그는 진짜 나를 아들이라도 되는 것처럼 파일럿에 되는 과정 등을 설명해 줬다. 그리고 어릴 적 누나가 했던 말을 그를 통해 다시 들었다.
“파일럿에게는 200명 이상의 목숨이 달려 있어요. 이것을 항상 잊으면 안 됩니다. 사람의 목숨을 책임지는 직업만큼 위험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 파일럿이 되겠다고 작정한 거라면 자신이 가질 직업의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길 바랍니다. 인수 학생은 이미 아는 것 같으니, 더 말은 안 하지요.”
마지막으로 돌아서기 전 나에게 해준 말이다. 나는 이 말을 메모지에 써서 매일 아침 읽었다. 고등학생 진학에 앞서 진학 상담 선생님은 여러 가지 파일럿이 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길고 오래 걸리지만, 돈도 벌 수 있는 공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우리 집 형편에 최고의 선택이었다. 부모님은 든든한 지원군이 되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더 좋았다. 나는 하늘을 날기 위해 파일럿이라는 직업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복무기간 15년은 상관없었다. 그동안에도 하늘을 날 수 있으니, 충분히 만족했다.
공군사관학교 입학식 날, 부모님은 한참 우셨다. 아무리 내가 괜찮다고 하더라도 부모의 마음은 다른 듯했다. 5살 많은 누나는 행여 모를 나의 지원을 위해 원하는 대학교가 아닌 공립대를 선택했다. 게다가 죽자 살자 공부해 단 한 번도 장학금을 놓친 적이 없었다. 나를 위한 가족들의 배려와 바람에 나는 열심히 했다. 그리고 드디어 하늘을 날았다. 첫 비행을 하던 날은 잊을 수가 없다. 함께 비행에 나선 선배의 말로는 오늘처럼 비행하기 좋은 날도 없을 거라며 나에게 행운아라고 했다. 드디어 나의 꿈은 이루어졌다. 하늘을 난 것이다.
오늘부터 나의 꿈은 그날 공항에서 보았던 그 늙은 파일럿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었다. 물론 나의 일방적인 약속이지만, 나는 그분과 비행하고 싶었다. 그 꿈을 향해 지금 해 왔던 그대로 다시 꿈을 꾸었다.
늙은 파일럿이 있던 항공사에 면접을 볼 때가 생각이 난다. 지원한 동기에 솔직하게 답했다. 혹시 이름을 아느냐는 질문에 중요한 것을 묻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모른다는 나의 답변에 모든 심사위원이 웃었지만, 나는 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운명과도 같은 숙명일 거라는 막연한 자신감이었다.
다행히 무사히 합격했다. 그리고 첫 비행 날, 나의 두 번째 꿈이 이루어졌다. 나는 첫 비행이었고, 그는 마지막 비행이었다. 우리의 비행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것이다. 다시 만난 늙은 파일럿은 나를 꼭 안아주었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볼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 나는 이석호 기장이라고 하네.”
“덕분에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저는 윤인수라고 합니다. 다시 만나면 꼭 드릴 말이 있었습니다.”
“뭔가?”
“감사인사입니다. 덕분에 저는 하늘을 나는 꿈을 이뤘으며, 더 꿈을 꿀 수 있었습니다. 제게 방향을 알려주어 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나의 손을 꼭 잡고, 토닥여주었다. 우리의 비행은 국내 비행으로 아주 짧은 거리였지만, 그 시간은 내 평생 파일럿 인생 중에 가장 뜻 깊고,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그가 은퇴한 후에도 종종 찾았다. 여전히 그는 나의 파일럿 꿈을 응원했고, 지지해 주었다.
꿈은 꿈을 꾸는 자에게 길을 열어준다. 그가 한 말은 나의 꿈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늘을 나는 꿈을 이루게 해주었고, 파일럿이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그와 누나의 말처럼 사람의 목숨을 책임지는 직업이지만, 나는 이 책임을 어깨에 짊어지고 앞으로도 하늘을 날 것이다. 나는 파일럿이니까 말이다.
작성일 : 2024년 09월 22일
공모처 : 제 10회 항공공모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