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9월 08일 월요일 [몸짓]
만수 할머니가 깔아준 접힌 솜이불은 침대만큼 푹신했다. 새 이불이라는 얇고 가벼운 홑이불에서는 좋은 향이 났고, 바스락 소리가 나는 베개에서는 나무 향이 났다.
“와, 좋다.”
“다행이네.”
방금 씻고 나와 아직 열기가 식지 않은 만수의 몸에서 하얀 연기가 났다.
“너 산신령 같다. 몸에서 하얀 연기가 나.”
“그래? 음, 음. 나는 산신령이다. 금도끼를 줄까? 은도끼를 줄까?”
“둘 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만수면 되옵니다.”
“착한 아이로군. 내 특별히 만수 말고 만수 할머니와 외삼촌도 주마.”
“그게 뭐야?”
“언제든 오고 싶을 때 오라고. 여기 네가 원하면 언제든 와도 되는 곳이라는 뜻이야. 너라면 환영이라고.”
“치. 음음, 감사합니다. 산신령님.”
도원이 머리를 바닥에 찧을 듯 숙이며 인사하는 틈에 만수는 침대에 벌렁 누워 민망한 순간을 피했다. 할머니가 새로 사준 홑이불을 딱 배 위에만 덮고는 도원을 보았다. 도원은 넓게 펼쳐 발끝까지 덮는 모습에 만수가 씩 웃었다.
“어때?”
도원은 덮고 있지만, 덮고 있지 않은 것처럼 무게감이 거의 없는 가벼운 이불과 침대만큼의 푹신함은 없으나 왠지 요람에 누워있는 아늑함 그리고 은은하게 나는 섬유유연제 향이 좋아 자꾸 웃음이 났다.
“좋은가보네. 다행이다. 저기 도원아, 내일 바로 서울 가?”
“응. 내일 가. 아마 10시쯤 출발할 걸.”
“지금 가면 겨울에 오나?”
평소에는 안 묻는 말에 도원은 괜히 뜨끔했다. 아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면서도 어디선가 들은 것이 있어서 묻는 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번 겨울에는 못 와.”
“왜?”
“호주 가. 어학연수.”
“무슨 초등학생이 어학연수야?”
“초등학생이라서 호주.”
“역시 부잣집 아들은 다르네.”
몸을 빙그르 돌려 다른 쪽으로 모로 누운 만수는 한참 말이 없었다. 씩씩대면서 불룩한 배가 쑥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팔을 돌려 땅을 짚다 가도 다시 올리기를 반복하다 나중에는 규칙적이게 움직이는 배를 보고서 도원은 똑바로 누워 눈을 감았다.
“너, 영어는 잘해?”
잔다고 생각한 터라 깜짝 놀랐으나 도원은 늘 그랬듯 내색하나 내지 않고, 묻는 말에 답을 골랐다.
“그냥 그럭저럭. 근데 이제 잘 해야지. 혼자 어떻게든 살려면.”
“그 먼 곳을 혼자 가?”
혼자라는 말이 그리 충격인지 만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응. 항상 혼자였어. 밥도 잠도 노는 것도 전부. 그래서 별 거 아니야.”
“오기는 해?”
“몰라.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만수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어린애라는 사실이 싫었다. 속상한 마음에 새 이불을 저 멀리 던져 버리고, 다리를 쫙 벌리고 누웠다. 그러다 다시 일어나 천장만 보는 도원의 어깨를 툭툭 두 번 두드리고 그대로 누웠다.
“자, 서울까지 멀어.”
“응. 너도.”가까스로 대답은 했지만, 도원의 목소리는 이미 잠겨 들리듯 말 듯 작았다. 이내 조용해진 방은 보이는 것과 달리 시끄러웠다. 오늘이 마지막 함께 하는 밤이 될까 두려운 마음 때문인지도.
오늘의 시제는 [몸짓]입니다.
몸을 놀리는 모양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와 있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