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친구는

2025년 09월 07일 일요일 [다정]

by 그래

만수와 도원을 발견한 도원의 할머니가 차 문을 열며 가자는 시늉을 했다. 도원은 살짝 만수 옆으로 붙으며 자고 갈 거라고 했고, 도원 할머니는 두말없이 내일 데리러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혼자 집으로 돌아갔다.

“잘 수 있겠나?”

만수 할머니는 도원 방보다 훨씬 작은 방에 둘이 자야 한다며 도원을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도원은 만수 할머니의 걱정을 이해했다. 좁은 방보다는 바닥에서 자본 적이 없는 것이 더 걱정이었지만,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만수에게는 말하지 않았으나 이미 아버지에게 이곳으로 전학가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딱 잘라 이제 다시는 할머니 집에 가지 말라는 엄포에 더 말할 수 없었다. 만약 도원 할머니가 서울까지 데리러 오지 않았다면 이번 방학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만수에게 이제 오지 못한다는 말을 해야 했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은 하루라는 시간을 얻었다.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지 도원 한 사람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그들에게 어찌 말할까?

“여 있어봐라. 아니다. 저짝이 화장실이다. 야, 희철아! 욕실에 따순 물 쫌 받아 놔라. 야들 논두렁에서 놀다 온 거 같은데, 영 몸이 차다.”

“네.”

공방에 있었는지 나뭇가루가 잔뜩 묻은 앞치마를 벗으며 욕실이라는 곳으로 외삼촌이 들어갔다. 이내 물 트는 소리가 나더니, 두 아이를 불렀다. 이미 하얀 열기로 가득한 욕실에서 좀전까지 차갑던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

“도원아, 너 먼저 씻어. 난 나중에 씻을게.”

“머슴아끼리 그냥 같…….”

만수는 외삼촌의 말을 급하게 자르며 도원에게 욕실 수도꼭지 사용법과 샴푸, 린스, 그리고 바디워시의 위치를 알려주고는 외삼촌을 끌고 욕실을 나왔다. 도원이 씻는 소리가 나서야 외삼촌에게 핀잔을 주며 말했다.

“도원이 불편하게 왜 그래? 삼촌?”

“친구라며?”

“쉿! 들리겠네. 조용히 말해. 친구라도 서로 다른 걸 억지로 맞추면서 할 필요가 뭐 있어? 자는 자고, 나는 나야. 친구이지만, 다르다고.”

“올!”

희철은 만수의 말에 만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조카가 대견했다. 젖은 옷을 일단 벗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은 만수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이불부터 살폈다. 이미 할머니가 깔아놓은 얇은 요를 보았지만, 부족해 보였다.

“할매, 이거 말고 겨울 이불 두꺼운 거 있잖아. 그거 두 개만 꺼내 줘.”

“와? 덥게.”

“자는 바닥에서 안 자봤을 거야. 그렇다고 지만 그렇게 깔아주면 불편하니까 내 꺼도 두껍게 깔게. 반으로 접으면 더 두껍겠지?”

“치. 알았다.”

장롱에서 무거운 이불을 꺼내는 만수 할머니 옆에 희철이 나섰다.

“나와봐요. 제가 할게요. 이거랑 이거 꺼내면 되죠?”

“아이다. 그거보다 이게 더 부드럽다. 침대만큼은 아니어도 이게 같은 솜이라도 폭신폭신 하거든.”

“이불은?”

“이불은 내가 가져 갈게. 며칠 전에 새로 산 얇고 가벼운 거 있다. 그거가 여 어디 있을낀데, 여깄네. 봐라. 느낌 좋제?”

“좋네. 새.이.불.이라서.”

괜히 만수가 들으라며 또박또박 말하는 희철이었으나 누구하나 신경쓰는 사람이 없다.

“만수가 이불을 안 덮어서 내가 큰 맘 먹고 샀는데, 오늘 개시하네.”

“올려요. 내가 가져갈게요.”

“어? 가벼운데, 그럴래?”

기다릴 만수를 위해 일찍 감치 씻고 나와 세 사람의 대화를 듣고 도원은 이제껏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묘한 따뜻함에 만수가 부럽고, 동시에 이 순간에 여기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07화 달라도 친구는.jpg 조몽쌤은 찾으셨나요?

오늘의 시제는 [다정]입니다.
정이 많음. 또는 정분이 두터운 것을 말합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와 있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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