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은 없고, 만수는 있는

2025년 09월 05일 금요일 [유대]

by 그래

거실에는 두 개의 상이 있었다. 하나는 네모난 것으로 중간에 진한 된장 냄새가 풍기는 된장찌개가 든 뚝배기에서 하얀 연기가 올라왔고, 그 주위로 생선과 나물 등이 있었다. 사람 수의 맞게 밥과 수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도원에게는 낯선 풍경이었다. 항상 도원은 개인 반찬과 국, 찌개를 먹었다. 생선도 각자 한 마리씩 놓여 있었지 상 한쪽에 커다란 두 마리가 있는 건 처음 보았다.


그보다 둥글고 작은 밥상에는 중간에 된장찌개와 나물과 밥만 있었다. 도원과 만수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니 만수 할머니가 와서는 손으로 생선 가시를 발라 한쪽 접시에 올려주었다. 생선을 바른 후에는 어른 상에는 없는 불고기를 가져와 한쪽에 두면서 다시 자리 앉아 기다렸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 멀뚱히 보고만 있자, 만수가 크게 밥 한 숟갈 떠 만수 할머니 앞에 내밀었다.


만수 할머니는 만수 숟가락 위로 불고기 한 점을 올려주고, 만수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어서 먹으라는 시늉을 했다. 만수가 털질 듯 볼록한 볼이 조금 작아지는 것을 보면서 맨 손으로 뜯은 김치를 빈 숟가락에 올려 두었다. 그것 또한 만수 입으로 쑥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이번엔 도원을 쳐다보았다. 도원은 잠시 망설이다 만수처럼 숟가락 가득 밥을 담고, 괜히 만수를 한번 보았다. 만수는 눈짓으로 할머니를 가리켰고, 그 방향을 따라 도원의 숟가락도 움직였다.


“도원이는 고기보다 생선 이제?”

“네?”


만수 할머니는 웃으며 가시를 바른 생선을 한 번 더 살피더니 도원이 내민 밥숟갈 위로 떨어지지 않게 꾹 눌러 올려주었다. 도원은 슬쩍 만수를 바라보다 천천히 입으로 가져가 넣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만수 할머니는 김치 하나를 손으로 집어 도원의 숟가락에 올려주었다. 그 또한 입안으로 들어간 후에야 자리에 일어나며 말했다.


“이젠 니들이 묵으라. 생선 떨어지면 말하고.”


생선과 불고기, 김치 양념이 묻은 손가락을 들면서 팔목 언저리의 손을 대며 일어난 만수 할머니는 행주에 쓱쓱 손을 닦고는 부엌으로 가서 물로 씻었다. 그리고는 어른 밥상으로 가 앉았다. 그제야 어른 밥상에서 식기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도원은 이 황당한 경험에 멍하게 있는데, 그 사이 만수의 밥그릇은 반이나 비어졌다. 또 만수 할머니가 가득 올려둔 생선과 불고기도 반이나 사라졌다.


“빨리 먹어. 내 다 먹는다. 할머니! 생선 없어.”

“읍나. 잠깐만.”


답은 만수 할머니가 하고, 온 건 일회용 비닐장갑을 낀 외삼촌이 앉았다.


“서울 도련님이 시골 할머니 비위 맞춰줘서 고맙네. 소문하고 틀리네.”

“소문이요?”

“까칠하고, 못됐다고 하더라.”

“삼촌!”


버럭 소리치는 만수 때문에 식사가 잠시 멈췄다. 외삼촌이라는 사람은 놀란 것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놀란 것처럼 만수 쪽에 있던 무릎을 올리고, 만수 쪽에 있는 오른쪽 귀를 팔로 가리는 시늉을 했다.


“알았다. 인마. 이제 친구다. 이 거제!”

“내 친구한테 말 함부로 하지 마라.”

“서울 도련님, 미안하다.”

“외. 삼. 촌.”


한 자씩 끊어 말하는 만수의 말투에 외삼촌은 슬쩍 몸을 도원에게 돌리며 말했다.


“우리 만수하고 오랫동안 친구해라. 자. 이건 뇌물. 조기다. 니 온다고 만수 할무니가 정성껏 말렸다가 구웠다. 간도 적당해서 맛있제?”

“네. 맛있어요.”

“그래. 많이 묵고, 오래 친구 해서 저 급하고, 욱한 성질도 쪼매 달래 주면 고맙고.”


처음 만나 한 번도 사투리를 쓰지 않던 외삼촌의 어색함 없는 사투리에 당혹스러움보다 그 속에 담긴 진심이 느껴져 도원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외삼촌의 철저한 방어력을 뚫지 못한 만수는 괜히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고 으르렁거리고, 할머니는 시끄럽다고 밥부터 먹으라며 부엌으로 가시더니 새로 한가득 밥을 퍼왔다. 이제 초등학생인 도원은 이 관계가 무엇인지 이 사이에 흐르는 공기가 어떤 의미인지 모른다. 단지 이 관계 속에 만수가 넣어준 것에 감사할 뿐이다.


오래도록 여기에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해 보다 도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와? 화장실이라도 가고 잡나?"

"네? 아, 네. 다녀올게요."


화장실로 뛰어가는 도원을 보며, 두 할머니의 시선이 공중에서 부딪혔으나 이내 사라졌다.

06화 도원은 없고, 만수는 있는.jpg 직접 그렸습니다. 조몽쌤은 찾으셨나요?

조몽쌤이 누구냐면 저의 도장캐릭이며, 자캐입니다. 그림 속에 숨어 있지만, 간혹 너무 잘 보일 때도 있죠!!

오늘의 시제는 [유대]입니다.
끈과 띠라는 뜻으로,
둘 이상을 서로 연결하거나 결합하게 하는 것. 또는 그런 관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와 있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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