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올게요

2025년 09월 09일 화요일 [태도]

by 그래

아침잠이 별로 없는 만수는 새벽 6시부터 일어나 방을 나갔다. 마치 죽은 듯이 처음 누운 자세 그대로 잠든 도원의 팔은 여전히 눈을 가리고 있었다. 접힌 팔이 저릴까 살짝 내려 이불 위로 내리자, 눈가를 타고 내린 눈물 자국이 그대로 있었다.

“사내자식이 울기는.”

거실로 나가니, 만수보다 더 부지런한 두 어른이 자는 도원이 깰까 조심스럽게 거실을 오가고 있었다. 아침이면 큰소리로 인사하는 외삼촌도 작은 목소리로 만수에게 아침 인사를 한다.

“삼촌, 잠깐만.”

“왜?”

“도원이 10시 되면 서울 간데,”

“그래? 그러면 겨울에 보겠네.”

“아니. 이번 겨울에 호주 간데, 가면 못 올 수도 있데.”

“왜?”

“그건 걔네 부모만 알겠지.”

“그래서?”

“선물 주고 싶어서.”

“뭐?”

“뭐가 좋을까?”

희철은 마음은 있으나 아이디어는 없는 조카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원래는 다음 겨울에 오면 주려고 만든 것이 있었다. 논두렁에서 노는 두 아이가 예뻐 나무판에 새겨 판화 작업을 시작했다. 원래는 겨울에 오면 선물로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무래도 미뤄야 할 듯하다. 미완성의 작품은 다시 보자는 바람과도 같다. 그렇기에 지금 이 두 아이에게는 다시 만나자는 약속이 되어 줄듯 했다.

“내가 아직 완성은 못 했어. 그냥 윤곽만 잡은 거야. 세부 작업은 시간이 오래 걸려서. 이거 가져가서 간직했다가 다시 만나면 달라고 해. 마무리해 준다고. 오면 또 방학 내내 있을 거니까 그때 작업하면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

“고마워. 삼촌.”

“고마우면 여기 뽀뽀.”

“내가 아직도 5살인줄 알아?”

매정하게 돌아서는 만수가 재빠르게 희철의 볼에 입술을 아주 살짝 댔다가 돌아섰다. 5살에 못 받은 뽀뽀를 지금에야 받은 희철은 만수가 좋기만 했다. 누나가 미운 자식이라고 아무렇게 지은 이름, 만수. 그러나 엄마가 뜻이라도 좋으라며 오래도록 복된 삶을 누리기 위한 뜻을 담았다. 버려졌다는 것에 아픔이 큰 만수는 무엇이든 제 손에 들어오면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만수가 첫정을 준 게 도원이다. 도원의 무반응을 아파하던 만수가 생각난다. 늘 같은 마음으로 아껴주면 도원도 알 거라고 말해준 적이 있다. 지금의 두 사람의 관계는 만수의 그런 마음과 변함 없는 모습 때문임을 도원은 알까?

희철이 보기에 도원도 행복한 가정의 아이는 아니었다. 멀리서 본 첫 인상의 도원은 그야말로 외딴 섬에 버려진 아이 같았다. 누구에게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이 더 쓸쓸해 보였다. 그런 아이를 바꾸게 한 만수가 대단했고, 단순히 불쌍하게 보던 시선을 친구의 시선으로 바꾼 도원도 대단했다. 서로를 대하는 마음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고, 우정이라는 감정이 생긴 두 사람이 친구가 되어서 다행인 것만큼 끊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희철의 마음이었다.


오전 7시, 검은 차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쯤 도원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만수와 함께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에 또 올 게요.”

“그래, 또 와. 오면 내가 완성해 줄게. 꼭.”

가슴에 미완성 선물을 꼭 끌어안고 돌아서는 도원은 서두름은 하나도 없는 느릿하기만 했다. 만수는 검은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아마도 도원의 시선도 만수에게 머물러 있을 터다.

09화 또 올게요..jpg 초등학생이 들기엔 살짝 큰 판화를 그리고 싶었는데, 너무 커져버렸네요.^^
오늘의 시제는 [태도]입니다.
몸의 동작이나 몸을 가누는 모양새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와 있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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