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9월 10일 수요일 [표정]
한국을 처음 떠난 날, 공항에 데려다준 사람은 늘 그렇듯 아버지의 비서였다. 비서 아저씨는 출국 수속을 마쳤고, 간단한 개인 짐과 함께 혼자 비행기를 탔다. 승무원들은 퍼스트 클래스 좌석에 탄 초등학생 손님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개인 비서진이라도 되듯 1시간에 한 번은 들려 괜찮은지 필요한 건 없는지 물었고, 지나는 순간에도 한 번 더 시선을 주었다. 분명 친절이다. 그러나 도원은 그들의 그런 행동이 돈으로 엮인 과장된 몸짓처럼 보였다. 늘 어린 도원에게도 잘 보이려는 사람들만 만났기에 어린 도원을 챙기는 어른의 친절을 피해 하얀 구름조차 없는 하늘만 응시했다.
도착한 호주 항공에서는 이제부터 도원을 챙겨줄 또 다른 비서를 만났다. 단발이 깔끔한 외국인 여성과 만수의 삼촌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남자가 나와 도원에게 자기소개를 했다. 그들에게 도원은 VIP 고객인 듯했다.
“입학하실 학교는 Sydney Grammar School로 한국인 학생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말보다는 영어로 대화하셔야 하므로 오늘 오후 2시부터 영어 과외를 2시간씩 받으실 예정입니다. 이후 교과 과목에서 차이나는 부분을 확인이 끝나는 대로 추가 과외 일정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 등교일은 다음 주 월요일부터이며, 8시 30분까지 가야 함으로 8시까지는 준비를 마치셔야 합니다. 혹시 궁금하신 것이 있거나 필요하신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저나 여기 스미스 씨에게 말하시면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한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듯 그녀의 입에서 유창한 영어가 흘러나왔다. 첫인사는 유창한 한국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공항을 나온 그 순간 그녀의 입에선 더 이상 한국말은 나오지 않았다. 도원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어차피 아이와 어른이 아닌 관계다. 편하게 대해주면 도원을 얍잡아 볼게 뻔했고, 그렇다고 어른과 어른의 관계도 아닌 이 사이에서 필요한 건 서로의 필요한 만큼의 의사소통이면 충분했다. 늘 남과 살았던 도원이 배운 사회생활인 셈이다.
겨울 방학에 갈 거라는 유학은 서울에 올라온 그날, 이미 확정되어 있었다. 만수와 헤어지고 얼마 후 바로 비행기를 탔다. 말도 생각도 생활도 다른 호주에서 도원은 철저하게 혼자였다. 원래 말 수가 적은 편인 도원은 더 말수가 없어졌다. 노란 머리 사이에 유일한 검은 머리 남자애는 어떤 일에도 늘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간혹 농담이라고 건네는 것들은 도원이 생각하는 상식에서 벗어나는 것이었고, 점심시간이면 교실에 있는 학생은 도원 밖에 없었다. 모두 나가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것이 일상인 듯했다. 처음 몇 달은 도원이 아픈 아이이라고 생각했는데, 담임 선생님과 면담이 자주 있었다. 문화의 차이라는 것을 안 선생님은 도원이 밖에서 놀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나 실제 생활 언어인 영어와 배운 영어의 차이에서 도원의 실수를 보며 놀리는 학생도 더러 있었다. 도원은 악착같이 그들의 언어를 배웠다. 그들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초등학생 도원은 필사적으로 버텼다. 그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도 울지 않았고, 실수 앞에선 당당하게 굴었다. 그런 도원이 신기한지 옆에 하나둘 친구가 생겼다. 그러나 그 누구도 만수를 대신할 만큼 도원을 허문 친구는 불행히도 없었다.
처음엔 1년이라고 들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 도원과 함께 생활하는 스미스와 제인은 이별을 준비하지 않았다. 도원은 돌아간다는 가능성을 버렸다. 대신 만수가 느꼈을 ‘버려졌다’라는 감정을 배웠다. 아이들 사이에서 도원은 ‘Blank Face’라고 불렸다. 스스로 어떠한 표정도 짓지 않는 자신과 정말 어울리는 별명이라 생각되었다. 어느새 이름이 되어 버린 별명이 불려도 별 느낌이 없었다. 도원은 굳이 사실을 말하는데 화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호주에서 다시 미국으로 거주를 옮겨도 변화는 없었다. 단지 몇 년의 시간이 주는 공백은 만수와 연락할 수 없다는 답답함으로 느껴야 하는 현실이 싫었을 뿐.
그림 속, 칠판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What kind of expression should I make?
번역 :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요?
오늘의 시제는 [표정]입니다.
마음속에 품은 감정이나 정서 따위의 심리 상태가 겉으로 드러남.
또는 그런 모습.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와 있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