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들다

2025년 09월 12일 금요일 [말투]

by 그래

“만수야, 도원이 외국 간다 하던데……, 당분간 안 와.”

“네.”

아는 것을 말해주는 데, 괜히 더 어깨가 푹 내려갔다. 아저씨는 속도까지 늦춰가며 만수를 살폈다.

“몰랐나?”

“아뇨. 도원이가 가기 전에 말해줬어요.”

“그런데 와 왔노? 학교에서 저까지 가려면 니 걸음이면 1시간이나 걸어야 하는 먼 길 아이가?”

“멀었어요. 예전에는 요.”


아저씨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옆에 작은 가방에 요구르트가 있다며 먹으라고 했다. 만수는 투박한 아저씨와 달리 귀여운 병아리가 새겨진 노란 도시락을 보며 웃었다. 지퍼를 열자 맨 위에 요구르트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고 앞에 서랍 열믄 빨대 있다. 도시락 귀였제? 우리 아들 딱 니만 할 때 소풍 가면 아줌마가 김밥 싸 준 도시락이다.”


만수는 아저씨의 수다를 듣기 전에 먼저 요구르트부터 마셨다.


“귀여워요.”

“그제? 내가 서울 출장 가서 요즘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거 달라해서 받아 왔다 아이가. 참 좋아했지. 그때 고놈이 지 맘대로 쏙 드는 선물 받으면 머스마가 꼭 가스나처럼 목소리가 한껏 올라가서 목에 대롱대롱 매달려가 몇 시간이고 고맙다고 말했거든. 그게 듣기 좋아가 내 어디 가면 선물 하나는 꼭 사 오잖아. 요즘은 완전 100% 머스마가 돼 갖고, 걸걸한 아저씨가 따로 없다. 그래도 고 애교 가득한 가스나 같은 그 투는 여전해가 들으면 진짜 개그가 따로 없다.”

“형의 무뚝뚝함은 아줌마를 닮았나봐요.”


아저씨의 아들과 아줌마는 동네에서 무뚝뚝하기로 소문났다. 그런데 아저씨가 말하는 형의 애교가 뭘 말하는지는 안다. 형은 어른한테만 그럴 뿐 만수 같은 어린아이가 울면 마치 개그맨처럼 여자와 남자 목소리를 오가며 놀라게 해 준다. 그러면 방금 울었다는 것도 잊고 깔깔 웃었다. 그러면 하늘 높이 올려 비행기를 태워주고 울지 마라 웃는 게 예쁘다고 말해준다. 만수도 몇 번 형이 태워주는 비행기가 타고 싶어 눈물도 안 나는데 억지로 운 적이 있다. 형은 그 가짜 울음도 알면서 속아 넘어가주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저씨가 지금 자랑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줌마에 관해선 아저씨가 말해주는 게 전부다. 아직 아저씨가 말하는 그 포인트를 들어본 적이 없지만, 그냥 들어준다. 아저씨가 좋아하니까 말이다.


“아이다. 아줌마 툭툭 던지는 말 가만히 들어봐라. 다 관심 있어야 할 수 있는 말이다. 속정이 얼마나 깊은데, 맨날 하는 말 있잖아. ‘내가 전에 봤는데.’ 그러는 거 들었제? 그 말하믄 잘 들어봐라. 관심 없는 사람은 절대 모르는 거 말할 기디.”


아저씨는 다정한 사람이다. 동네에서 어른들이 살갑게 말한다고 다 좋아한다. 나무에게는 아이 다루듯 어른들에게는 부모님 대하듯 아저씨는 만나는 사람마다 항상 다른 말과 목소리를 내었다. 아저씨의 진짜는 바로 오늘처럼 가족들 이야기할 때다. 아저씨는 알까? 내가 지금 들은 이야기를 볼 때마다 한다는 것을 말이다. 똑같은 지점에서 특히 목소리가 한껏 올라가고, 어떤 지점에서는 비밀을 말하듯 작다. 매번 같지만, 만수는 그냥 듣는다. 아저씨도 만수가 언제 말해도 듣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

그리고 보면 도원도 늘 쓰던 말이 있었던 것 같다


“진짜?”


도원이 이 말을 하면 처음 겪는 상황일 확률이 높다. 만수와 있으면 하루에 열 번도 넘게 말한다. 무엇이든 만수에게 먼저 묻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사를 늘여 놓았다. 때론 만수의 표정만 봐도 아는지 묻지도 않는 답을 줄 때는 차분하게 말하는 것이 TV에서 나오는 아나운서 같다. 오늘따라 도원이 차근차근 설명하는 그 차분한 목소리가 듣고 싶다.


“니 둘이 이젠 진짜 친구 같다.”


순간 딴생각을 하다 놀란 만수가 아저씨를 쳐다봤다. 아저씨는 앞만 보면서 만수가 놀란 건 귀신같이 알았다.


“와 그리 놀라노? 친구 같다는 말이 그리 놀랄 일이가?

“아, 아뇨. 근데 친구 아니고 친구 같아요?”

“아, 거기서 놀란 기가? 내가 잘못 말했다. 친구다. 친구 같은 게 아니고 친구다. 니들.”


아저씨는 만수를 한 번 쳐다보고, 살짝 뜸을 들이다 비밀을 말하듯 낮고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내 오늘 보니까, 딱 니 말하는 게 꼭 도원이 같아서 나도 도원이가 보고 잡네.”

12화 물들다.jpg 달라도 친구는.... 만수에게 친구가 생겼어요.
오늘의 시제는 [말투]입니다.
말을 하는 버릇이나 본새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와 있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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