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나 아닌

2025년 09월 14일 일요일 [반응]

by 그래

외롭다는 건 괜찮다. 도원의 삶에서 제일 흔하디 흔한 거다. 그러나 보고 싶다는 것은 또 달랐다. 먹먹하고 문득 쳐다본 곳에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일 때 그 허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서울에 왔지만, 마음은 벌써 내일 만날 만수 곁에 있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아버지 앞에 사정했다. 아버지가 건 몇 가지 조건을 주었다. 그 모든 것을 이수하는데, 무려 10년이나 걸렸다. 고등학교는 만수와 함께 보내고 싶어서 아버지가 원하고 바라는 하루를 살았다.


드디어 한국 귀환 결정 났을 때 정말 혼자 방에서 울었다. 눈물조차 방을 이중으로 잠그고, 더운 여름에 창문까지 꼭 닫은 후 입까지 막은 다음 흘렸다. 입 주위로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남도록 울고 나서 방을 정리했다. 개인 물품을 만들 시간이 없었다. 챙길 거라고는 한국을 떠난 날 만수와 만수의 삼촌이 챙겨준 완성하지 못한 판화가 전부다. 행여 흠이라도 날까 푹신한 포장지에 몇 겹을 감싸고 옷과 옷 사이에 흔들림 없이 넣고 가방문을 닫았다. 그러다 행여 비행기에서 짐이 없어질까 다 풀어 작은 가방에 옮겼다. 다른 거 다 치우고, 오로지 판화만 챙겼다.


올 때처럼 갈 때도 혼자 비행기를 탔다. 올 때와는 전혀 달리 마음은 벌써 서울에 있었다. 장시간 비행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도원이 힘들었을 때는 서울 본가에 왔을 대였다.


“왔니?”

“네. 아버지.”

“굳이 서울 명문 학교에 갈 수 있는데, 그 시골에 있는 학교에 가고 싶은 이유가 있어?”

“거기도 명문고입니다. 아버지. 한국에서 손꼽히는 학교이니까요. 거기선 외부에 나갈 일도 없고, 공부만 할 수 있잖아요.”


아버지는 여전히 못 미덥다는 눈으로 도원을 위아래로 훑어 내렸다. 도원은 최대한 어떠한 표정도 짓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 순간 기다릴 만수를 만나러 간다는 걸 아버지가 안다면 모든 것이 헛수고다.


“그래. 알았다. 입학 수속은 마쳤다. 모레부터 가야 하니까 오늘 밤에 할머니 집으로 가거라. 짐은 먼저 부쳤다.”

“네.”


검은 차에 앉는 순간 본가에서 한 번도 앉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어머니는 보지도 못하고, 책상에서 시선을 놓지 않던 아버지는 도원의 빈틈을 확인할 때 빼고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도원의 집에서는 당연한 거다. 그래서 괜찮다. 아니 괜찮았었다.


할머니 집에 도착했을 때 밤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현관문 앞에서 만수 할머니와 마주쳤다. 이 시간까지 만수 할머니가 계신 적이 없어서 의아했다.


“왔니? 몸은 건강하고? 완전히 청년이 다 되었구나. 할머니는 안방에 계신다.”


부모님조차 묻지 않는 안부를 남한테 들었다. 정말 오랜만의 듣는 안부가 어색해 도원은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기만 했다.


“참, 도원이 맞네. 만수가 정말 기다렸는데, 집 가서 말해주면 좋아하겠다.”

“저기.”

“응?”

“만수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왜?”


도원의 붉은 뺨을 본 만수 할머니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마. 나는 가마.”

“차 타고 가세요.”

“그래. 고맙다.”


만수 할머니를 배웅하고 할머니에게 갔다. 방에는 할머니가 링켈을 맞고 누워 계셨다. 그러고 보니 예전엔 서울에서 내려올 때면 골목 입구에서 기다리던 할머니였다. 아프셨다는 사실에 도원은 가슴이 아팠다. 아버지는 알까? 어머니는? 왜 말해주지 않았는지 도원은 그들이 이젠 남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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