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두각시 인형

2025년 09월 13일 토요일 [호흡]

by 그래

오전 7시, 도원이 일어나는 시간이다. 욕실로 들어갈 때마다 만수가 생각난다. 처음 만수가 세수하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때가 몇 살이었더라. 참 오랜 시간 함께 했는데, 어느새 함께하는 게 익숙해져 하루는 특별한데, 시간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날짜보다는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옷이 다 젖도록 손바닥에 물을 담는 연습을 했었다. 처음부터 익숙하게 받아오던 누군가의 챙김이 만수를 만나고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씻고, 입고, 먹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도원 스스로 원해서 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걸 만수를 알고 나서야 알았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단지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 아이가 좀 빨리 된 것뿐이다.


호주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게 이제 1년 조금 넘었다. 호주에서도 표정이 없다고 놀림을 받았다. 미국에서는 놀림 대신 엄청난 관심아래 놓였다. 다름을 인정해 줘서 좋기는 한데, 만수처럼 정을 주고 싶은 친구도 생기지 않는다. 하긴 친구를 사귈 시간이 있어야 사귈 수 있을까 싶다. 일어나면 학교, 마치면 집에서 시간 단위로 이어지는 수업을 소화하고 나면 자기 바쁘다. 미국의 어떤 아이도 도원 같은 스케줄을 보내는 아이는 없다. 강사 수업 중에도 창문 너머로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릴 때면 현재 처지가 확실하게 느껴졌다. 미국은 한국과 다를 바 없는 집이라는 감옥일 뿐이다. 도원은 방학에는 터진 여유가 미국에서는 없다. 방학에도 도원은 바빴다.


이미 생활어가 되어버린 영어는 물론 기본은 알아야 한다며 일주일 동안 여러가지 언어를 배워야 했다. 과목별 과외는 기본. 피아노는 물론 음악 과외도 3개나 되었다. 쉬는 시간에는 관심도 없는 사회 뉴스를 보고, 본 것들을 정리해 아버지께 보내야 했다. 단순 기록이 아닌 도원의 생각을 적어야 했고, 관심도 없는 것에 관심을 첨부하는 것이 제일 고역이다. 하나로 허점이 생기면 다음 과외 수업이 추가되기에 도원은 한 자라도 놓치지 않으려 집중했다. ‘대화’라고 해봐야 “식사하세요.”와 “네.”, “선생님 오셨습니다.”와 “네.”가 전부다. 도원이 하루 중에 제일 많이 하는 말은 “네.”다. “아니오”는 있어도 쓸 수 없는 말이기에 어느 순간 도원은 자신이 인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게 제일 적응하기 편했다. 꼭두각시 인형 도원이라면 그 어떤 명령어에도 “네”라고 말하고 따르기만 하면 되었다.


“오늘은 영어 강사님이 아프셔서 30분 늦어집니다.”

“?”


도원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냥 궁금하다는 듯이 눈을 살짝 키우기만 하면 되었다.


“다른 선생님이 오실 건데, 30분 늦으신다고 하셨어요.”


역시나 수업이 없을 리 없다. 아버지에게 시간은 돈이고, 투자다. 아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지금 도원은 아버지의 소유물에 가깝다. 기대에 부응하지 않으면 버려지더라도 집 어딘가 창고에 가둬버릴 정도로 버리기에 아까운 소유물, 그게 바로 아버지에게 도원의 가치다.



어릴 적이다. 딱 한 번 아버지가 하라는 것을 안 했다. 그날은 너무 화났다. 유치원에서 짝사랑하던 여자애 생일이었다. 선물도 준비하고, 생일파티에 입고 갈 옷도 사다 뒀는데, 아버지가 안된다고 한 것이다. 도원은 강사 눈을 피해 집에서 나와 옆집에 살던 여자애 집에 갔다. 잘 먹고 잘 놀다 집에 왔을 때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도원을 방에 가뒀다. 평소 창고로 쓰는 방은 어린 아이 혼자 있기엔 너무 무서웠다. 그 방에서 울고 빌고 애원해도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틀 뒤에 눈을 떴을 때 방이었다. 울다 지쳐 쓰러진 도원을 아버지가 안고 방에 데려다 놓았다고 유모가 말해주었다. 그러나 도원은 유모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유모의 손이 엄지 손톱 위를 쓰다듬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모와 아기 때부터 함께 동고동락했다. 거짓말할 때 버릇 정도는 알고 있었다.



미국에서 도원이 사는 방식은 딱 필요한 숨만 쉬는 거였다. “네”라는 대답을 하기 위한 커다란 호흡 하나, 학교에서 집에서 쓰러지지 않기 위해 내쉬는 가는 호흡 한 줄, 꿈이라도 만수와 놀 게 해달라는 신을 향한 호흡 한 조각이 꼭두각시 도원이라도 살아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어느 무엇도 뜻대로 할 수 있는 건 제대로 없었다. 대답할 때는 간결하게 호흡하라고 몇 번이나 답해야 했고, 학교에서는 교우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도원을 교우들 사이로 던지는 교사 때문에 어색한 미소를 지어야 했다. 평소에도 잘 하지 않는 미소를 짓기 위해선 더 많은 호흡이 필요했다.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이 짜증날 만큼 지루했다. 차라리 진짜 인형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 한들 그 마음을 알아주는 어른 한 명도 아이 한 명도 없었다.

13화 꼭두각시 인형.jpg 널 위해서라면
오늘의 시제는 [호흡]입니다.
숨을 쉼
함께 일을 하는 사람들과 조화를 이룸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와 있는 뜻입니다.



이전 13화물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