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어, 그렇다고 하더라. 어쩔 수 없지.”
“야, 나 알바 잘려.”
“안 잘려. 내가 사장님한테 전화했어. ‘어쩔 수 없지. 푹 쉬다 와.’하시던데?”
민석은 알바하는 식당에서 알게 됐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거기서 일했고, 사장님은 특히 민석을 아들처럼 살폈다. 덕분에 나도 덕을 보기는 하지만, 이런 덕은 싫었다.
“우리 어디서 자?”
“공주 집에서.”
“공주가 누군데?”
민석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사람은 그 여자애였다. 나에게 선전포고를 한 바로 그 여자.
“아부지, 재들 어디서 자?”
“네 아지트.”
“싫어. 내주기만 해. 나 다음 달에 서울 가서 다시 안 온다.”
“진짜?”
“에이씨, 아버지 미워.”
나에게는 그리 험한 여자애이면서 아저씨 앞에서는 꼼짝도 못 했다. 공주의 집은 섬 제일 안쪽에 있었다. 안쪽까지 가는 동안 다른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집은 단 두 채, 아저씨가 사는 집과 공주의 아지트. 아지트엔 화구가 한가득 있었다. 방 한쪽에는 캔버스가 크기별로 정리되어 있었고, 통창으로 되어 있는 벽 앞에는 소용도의 풍경을 그리다 만 스케치가 그대로 있었다. 벽에는 다양한 풍경이 걸려 있어 얼핏 미술관 같았다. 자연스레 이미 그려진 그림들이 걸려 있는 방으로 이동하려는 찰나 공주가 방문 앞에서 양손을 양 옆으로 뻗으며 막아섰다.
“이 방은 절대 출입 금지. 내 방이야. 잠은 저기, 이 방 외에 다른 데는 다 괜찮아. 어차피 나는 잠은 아부지하고 자니까.”
“오케이. 다행이네. 진영아, 짐 풀자.”
방에는 1인용 침대가 있었다. 민석은 나에게 침대를 양보했다. 침대에 걸터앉아 있으니,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여객선을 타고, 다시 통통배까지 이어진 여정 때문인지 잠이 쏟아졌다.
“좀 자.”
“어.”
잠시 눈만 감으려 했으나 진짜 자버렸다. 눈을 떴을 땐 새벽녘이었다. 나지막하게 들리는 숨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민석이 매트만 있는 곳에서 잠들어 있었다. 민석이 깨지 않게, 조심히 방을 나와 민석이 올려두었을 물통을 열어 마셨다.
“쓱. 쓱.”
듣기 좋은 연필 소리에 나도 모르게 공주가 금지시킨 방으로 향했다. 살짝 열린 틈으로 공주가 보였다. 바다 위와는 달리 가지런하게 묶은 머리는 한 올도 흐트러짐 없고, 그녀가 움직이는 대로 반소매 티셔츠 어깨에 그려진 나비 문신이 보였다가려졌다 했다. 통창을 바라보는 시선은 틈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꼼꼼했고, 허벅지가 드러난 치마 위로 작업 앞치마가 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주의 몸을 보호해 주고 있었다.
“공주 예쁘지?”
“허.”
단말마의 비명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일념의 입막음으로 다행히 공주는 나의 비명을 듣지 못했다. 민석이 순간적으로 가려준 덕이다.
“쉿, 공주한테 혼나. 그림 그릴 때는 아버지도 어쩌지 못해.”
“아.”
“바람 쐬러 가자. 내가 좋은 거 보여줄게.”
민석은 깜깜한 거실을 나오는 동안 발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나는 까치발을 들어서 겨우 발소리를 죽일 수 있었다.
“야, 넌 어떻게 소리 한번 안 내냐?”
“공주 옆에서 살기 위해선 자연스럽게 습득해.”
“너 여기서 살았어?”
“응, 여기가 내 고향이야. 어머니라는 사람이 날 여기에 두고 찾으러 안 왔거든.”
“응?”
처음 듣는 소리에 뭐라 말하지도 못하고, 입만 벙끗벙끗했다.
“괜찮아. 내 나이 24살, 군대 다녀온 멋진 사나이. 산부인과에서 나오자마자 버렸다고 아버지가 욕을 아주 많이 해줬어.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 공주보다 더 예쁨 받았어. 덕분에 아주 잘 자랐으니까 괜찮아.”
“그래. 그러면 됐어.”
“그래. 너는 매번 편지 온다며? 오시겠지.”
“그렇겠지, 오시겠지.”
나의 어머니는 외국에 있다. 돈 벌러 가서 내가 스무 살이 되면 온다던 엄마는 내가 보육원을 나와 4년을 살 때까지 오지 않았다. 그러나 매달 잊지 않고, 편지가 온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광활한 땅이 있는 외국 어딘가에서 어느 날은 옥수수를, 어느 때는 감자를 수확했다. 매번 여기저기 옮기면서 일을 하고, 일이 끝나면 내 통장에는 엄마의 시간이 쌓였다. 사실 민석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여름 방학이 오기 전 부고장을 받았다. 엄마의 지인은 엄마의 유언대로 무연고 처리를 하셨다는 말과 함께 이십사 년 만에 보게 된 엄마의 시간을 보내주었다.
매년 내가 보육원에 온 날을 기념하며 찍은 독사진을 부여잡고, 함께 있는 듯 합성된 사진은 딱 24장이었다. 그리고 딱 24년의 세월인 24권의 일기장에는 나에게 보내는 엄마의 편지로 가득했다. 엄마의 일기를 통해 내 생일이 사진을 찍은 그날이 생일이 아닌 내가 사찰에서 살게 된 첫날임을 알았다. 또한 엄마의 마지막을 지켜준 것이 바다라는 것도 알았다.
일을 찾아 간 바닷가 마을에서 엄마는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무엇보다 아쉬웠던 건 일기 마지막 장에는 돌아오는 진짜 내 생일에 맞춰 가겠다는 글이었다. 태어나 딱 100일을 엄마와 보냈다. 그 뒤로 본 적 없는 엄마는 단 한 번도 편지 속에 사진을 넣어 보내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일정대로라면 이번 진짜 생일엔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날일 것이다. 사진 속에 엄마는 늘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왼쪽으로 오른쪽을 바라보는 엄마의 옆얼굴 말고, 왼쪽과 오른쪽이 모두 있는 얼굴 전체는 이제 영영 보지 못할 터다. 어쩌면 내가 이 여행에 동행한 이유도 엄마의 마지막 시간을 알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다 왔다.”
민석은 한 동굴 앞에 나를 데리고 왔다.
“여기 들어가도 돼?”
“어, 원래 이 동굴은 없었어. 여긴 아버지가 냉장고로 쓰려고 팠는데, 생각보다 돌이 많아서 중간에 포기하셨어. 그래서 공주하고 나하고 맨날 여기서 놀았어. 엄청 시원했거든. 겨울에는 따뜻하고 그래서.”
민석은 동굴 속으로 성큼 들어가서는 가지고 온 라이트를 켰다.
“자, 너도 해. 깜깜해서 다칠지도 몰라.”
밤 산행 때나 쓰는 등산용 라이트를 이마에 착용하고, 불을 켰다. 동굴 벽마다 새겨진 다양한 그림들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누가 그린 거야?”
“공주. 자, 여기서부터 보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