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문신

3화

by 그래

민석은 동굴 안쪽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거기엔 동그란 머리, 네모난 몸통, 그리고 세모가 사람처럼 그려져 있었다.


“이건 아버지 이건 엄마, 엄마 옆에는 공주, 그 옆에는 나.”

민석은 공주가 언제 그렸는지, 무엇을 그렸는지 다 알고 있었다. 공주가 그린 그림 옆에는 집도 있고, 자동차도 있고, 꽃도 있었다.

“이건 내가 다 그렸어. 나 돌 위에 그림 그린다고 진짜 별짓 다 했어. 흑은 공주 차지. 돌은 내 차지. 내가 목공을 잘하는 이유는 이 때문인지도.”


민석은 동굴 속에 모든 그림과 순간을 다 알고 있었다. 공주의 그림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변했다.


“잘 그렸지?”

“응. 이 정도면 화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화가 맞아. 공주 그림 사려면 한 장은 있어야 할걸?”

“1장? 100만 원?”

“아니, 거기서 동그라미 2개는 더 붙을걸.”

“정말? 그런데 나 공주라는 화가 못 들어봤는데?”

“파밀리오! 들어 봤어?”

“응.”

“파밀리오가 라틴어로 나비라는 뜻이야. 공주 어깨에 나비 문신 봤지? 그거 공주가 자기라고 티 내는 거.”

“아, 아? 아!”


너무 놀라서 너무 큰 소리를 냈다. 동굴 전체 울리는 소리에 나조차 깜짝 놀랐다.

“이제 갈까?”

“그래. 해가 아주 잘 보이는 곳으로 부탁해.”

“잠이 안 오는구나? 오케이.”


민석은 낮은 산을 잘 올랐다. 이 녀석이 이렇게 체력이 좋은지 처음 알았다.


“잘 타네.”

“매일 탔으니까.”

“하긴, 네 동네지.”

“글치, 내 동네지. 너도 산에 살았다며?”

“버스가 다녀. 자동차도 올라가고. 내가 직접 산을 탈 기회가 없었어.”

내가 있던 곳은 산속 보육원, 사실 사찰이다. 생활 형편이 어려운 부모님이 맡겨두고 가는 아이들 중의 한 명이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아이들은 모두 부모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유일하게 나는 그곳에서 20년을 보냈다. 악착같이 공부한 이유는 사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갔을 때만이었다. 두둑한 장학금도 받을 수 있었기에 나는 매일 공부를 했다. 엄마의 편지는 나의 전부였다.


매일 이동한 엄마이기에 편지를 보내본 적은 없다. 딱 한 번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엄마가 알려준 곳으로 전화를 한 적이 있다. 엄마의 목소리가 아닌 낯선 외국인의 목소리에 놀라 끊어버렸지만, 그건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이미 놓친 거지만.

“다 왔다.”

“지금 시간이 3시네. 해 뜨려면 1시간은 지나야 해.”

“응. 여기 앉을까?”


그가 추천한 곳에는 엉성한 의자가 있었다.


“여기 좋다.”

“그치. 나도 여기 좋아해. 여긴 다 보이거든. 그래도 엄마한테는 닿지 않지만.”


민석은 씁쓸하게 웃었다.


“있지. 우리 엄마 며칠 전에 돌아가셨어. 엄마가 마지막으로 일한 곳이 어촌이래. 바닷가 마을에 가정부로 갔는데, 거기서 전염병이 돌아서 엄마도 걸려버렸다고 하더라. 딱 일주일 아파하다 가셨다고 마지막까지 내 이름을 불렀다고 했어. 나 그때 뭐 했지라고 생각하는데, 술 마시고 있었어. 엄마가 준 돈으로 흥청망청 술 마실 때 엄마는 낯선 바다 냄새 맡으면서 돌아가신 거야.”

“자식, 자, 이거 너만 빌려주는 거다.”

“고맙다.”


하얀 손수건에는 꼬마 숙녀와 꼬마 신사가 그려져 있었다.

“공주가 그린 거야. 공주가 그려서 꽃잎 찧고, 잎사귀 찧어서 일일이 수공예로 만들어준 거야. 작년 겨울에. 그때 오랫동안 친구가 되자고 했었지.”

“네가 말한 그 공주가 이 공주구나.”

“어, 그 공주가 이 공주. 내가 유일하게 동생으로 인정한 공주지.”

“동생? 아, 동생이었구나.”

“동생이지, 엄마 동생의 딸인데.”

“그렇지. 그러면 사촌이 되는 건가?”

“사촌! 난 사촌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어서 그런 거 낯서네. 참, 너 내가 공주라고 부르니까 좋아하는 여자인 줄 알았지? 사실 좋아하긴 해. 여자가 아니라 동생으로서 말이지.”

“그래. 미안해. 오해했다.”

“인정하나는 드럽게 빨라.”

이상하게 마음이 놓인다. 그러다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다.


“그러면 아저씨는 공주의 아버지네. 그런데 공주는 아부지고, 넌 아버지야?”

“공주가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하자고 했어. 서류상에는 사촌이지만, 여기선 내가 오빠야. 겨울에 태어난 공주와 여름에 태어난 나.”


확인받았다는 사실 때문인지 나도 모르는 긴 한숨을 토해내고 말았다. 순간 민석이 보았을까 눈치를 보다 민석의 발끝을 비추는 붉은 해 쪽으로 의도적으로 말길을 돌려버렸다.


“야, 해 뜬다.”

“어디?”

다행히 민석은 나의 의도 따라 바다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말로만 듣던 수평선을 기준으로 올라오는 태양은 부끄러움 따위 없었다. 순식간에 둥근 얼굴을 모두 드러내고, 자기 자리를 찾아 떠올랐다.

“와, 멋지다.”

“언제 봐도 멋지긴 하다.”

멋지다는 말과는 달리 민석은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했다.


“가서 자. 난 좀 더 보다가 내려갈게.”

“그래. 난 먼저 간다.”


걸어가면서도 굳이 왼손을 들어 흔든다. 동시에 오른손으로 길 따라 내려오라며 손짓하며 내려갔다. 집에서 여기까지 다듬어진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길을 잃을까 봐 걱정하는 친구라니, 참 자상한 녀석이다.

나는 어설프게 만든 의자에 앉았다. 얼기설기 못질한 것이 튼튼한 건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반면 의자를 중심으로 세워진 지붕은 마감까지 확실하게 되어 있는 것이 비를 막을 수 있어 보였고, 얼핏 버스 정류소 같기도 했다.


“야! 거기 내 자리거든.”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툭 튀어나온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비키라고. 넌 여기 서서 봐. 여긴 내 자리.”

손도 아니고, 발로 내 무릎을 탁탁 치던 공주는 내가 일어나자, 마치 선심을 쓰듯 옆에 빈 공간을 가리켰다. 겨우 반나절 보았을 뿐인데, 공주의 무례한 행동이 익숙해져 버렸다.

“기대도 돼. 이거는 아부지가 만들어서 튼튼해. 저 뚱뚱한 민석이가 기대도 안 무너졌거든.”

“민석이가 뚱뚱해?”

“몸무게가 100킬로 넘으면 뚱뚱한 거지.”

“대신 키가 크잖아.”

“키도 크지. 그러고 보니까 우리 아버지도 키 큰데, 넌 좀 작다.”

“내가 표준이야, 아저씨 하고 민석이가 표준보다 큰 거지.”

“발끈하긴. 어리네.”

“안 어리거든. 이래 봬도 나 군대 갔다 왔어.”


토요일 연재
이전 02화나비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