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그해 여름은 유난히 뜨거웠다. 사람들은 산으로, 바다로 여행을 준비했고, 떠났고, 즐겼다. 그런 사람들에 비해 나의 여름은 유난히 덥기만 했다. 기숙사 에어컨은 방학이라는 이유로 작동을 안 했고, 고향으로 내려간 친구가 남겨둔 선풍기는 제 기능을 잃은 지 오래였다.
“야, 자고로 선풍기면 시원해야 하는 거 아니야? 넌 도대체 왜 이렇게 뜨거운 거야?”
“야야, 선풍기가 뭔 죄니? 이 날씨가 잘못이지. 보자.”
언제 온 건지 민석이 선풍기 앞에 앉아 있었다. 그도 나처럼 등록금을 벌어야 학교에 다닐 수 있었기에 방학이 되더라도 고향에 가지 않았다.
“에고, 너도 고생이 많다. 온종일 켜 대는데, 별수 없지. 아이고, 모터 봐라. 불 안 난 게 다행이네. 자, 요거 얹혀 줄게.”
실제 사람처럼 선풍기를 다독이며, 공감해 주던 민석이 뭔가를 선풍기 모터에 올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뜨거운 바람이 조금씩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이거 뭐야? 너 어떻게 한 거야?”
온종일 괴롭게 하던 바람이 해결되는 것보다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마치 풀지 못하는 어려운 숙제가 풀린 뭐 그런 기분이었다.
“내가 잡학 다식이잖니? 이거 아이스 팩이야. 요거 모터 위에 올려두면 선풍기 시원해진다고 하더라고. 역시. 그런데 오래 두면 안 돼. 불 나.”
“넵. 박사님!”
다정한 민석의 당부는 귓전으로 넘기고, 성의 없는 대꾸만 했으나 민석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야, 우리도 휴가 가자.”
이 뜬금없는 대화가 어색한 것도 없는 민석과 나였다.
“어디?”
웃긴 건 주제가 바뀌었다 해서 대화가 끊어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가고 싶은 마음 1도 전혀 없다는 것을 밑바탕에 깔고, 건성으로 답했다. 반면 민석은 진심이라는 것이 느껴져 슬쩍 부담스러웠다.
“섬에 안 갈래?”
“그러니까 어디?”
나는 예의를 차린 싫은 티였다. 귀찮고, 관심 없다는 듯이 버럭 거렸지만, 거의 24시간 같이 있는 민석이 모를 리 없었다. 민석은 진지하게 답했다.
“‘소용도’라고 들어봤나?”
“뭔 도?”
난생처음 듣는 섬 이름을 외우기도 전에 다음 날 오후, 나는 민석과 함께 작은 통통배에 있었다. 민석의 아버지가 우리를 데리려 타고 온 통통배는 바닷바람과 함께 파도까지 배 위로 끌어들였다. 내가 자란 동네는 삼면이 산이다. 바다 구경은 어쩌다 한 번 하는 거라서 이 상쾌하지 않은 짠 내가 낯설고, 어설픈 행동을 만들었다. 싫은 기색을 해도 될지 고민될 정도로 지금, 이 상황이 정말 마음에 안 들었다.
“싫은 기색 내. 어차피 그렇게 얼굴 구기고 있으면 다 알아. 서울 촌놈.”
짙은 청록색의 장화 같은 바지는 멜빵바지와도 같았고, 검은 민소매 티조차 돌돌 말아 어깨를 드러낸 곳에는 까만 나비가 그려져 있다. 그 위로 유독 까만 피부와 하얀 이가 대조적인 얼굴엔 불편한 미소가 걸려 있고, 아무렇게나 빗은 머리카락은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서울 촌놈 아니거든. 나는 산에서 자랐어. 이런 찐 바다는 처음이라서 그래.”
“아, 산 촌놈이었어?”
“촌놈, 촌놈 하지 마. 지는 바다 녀, 아, 미안.”
말실수를 인정했지만, 이미 여자애의 마음은 상한 후였다.
“아버지, 얘가 나보고 년이래? 때려도 돼?”
“맞잖아. 틀린 말 한 것도 아닌데, 봐줘.”
“아버지 때문에 산 줄 알아? 민석이 넌 얘가 뭐가 좋아서 친구 해?”
“나와 같아서. 나와 닮아서, 나를 제일 잘 이해해 줘서. 너와 같지, 뭐.”
“치…. 닮은 꼴은 다 친구래. 멍청한 시끼.”
여자애는 다 풀어진 머리카락을 다시 대충 묶었다. 그렇지만 세찬 바닷바람에 힘없이 흩어져 버렸다.
“이 바람 시끼. 이쁘게 있는 꼴을 못 봐.”
노를 젓는 아저씨가 여자애를 보며 웃었다. 민석도 이 상황이 좋은지 웃었다. 반면 나는 지금 이곳이 아주 싫다. 집에 가고 싶다. 아주 간절히.
30분 정도 바닷바람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멀리서도 보이는 소용도라는 세 글자가 커다랗게 쓰인 돌패가 보였다.
“다 왔다. 내릴 준비 해라.”
“네.”
아저씨가 소리치자, 민석과 여자애가 부산해졌다. 내가 도와주고 싶어 민석 옆을 졸졸 따라다니고 있으니, 여자애가 또 한마디 한다.
“야, 거슬리니까 저기 앉아 있어. 민석아, 아버지 배 대면 거기 있는 그거 부두에 묶어. 어딘지 기억하지?”
“어.”
여자애는 흔들리는 배는 아랑곳하지 않고, 작은 배를 돌아다니며, 정리하기도 하고, 꺼내기도 했다. 어느새 배는 소용도에 도착했다. 민석은 능숙하게 배에서 내려 몸짓만큼 큰 기둥 같은 곳에 밧줄을 묶었다. 밧줄은 바닷물에 젖어 꽤 무거운데도 민석의 표정은 큰 변화가 없어서 얼핏 보면 꽤 가볍고 쉬워 보였다.
“안 무거워?”
“바닷물에 젖은 밧줄이 안 무거울 리가. 이런 서울 아니 산 촌놈.”
“놈, 놈 하지 마. 내 이름은 오진영이야.”
“뭐? 오징어?”
물론 파도가 무섭게 치고 있어서 시끄럽기는 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 이름을 오징어라고 말할 줄 몰랐다. 이건 명백하게 나를 놀리는 행위였다.
“나 여자애라고 안 봐준다.”
“아, 나도 남자애라고 안 봐줘. 해 봐. 해 볼 거면.”
싸움을 걸듯 내뱉은 건 말뿐이었다. 다시 본래 할 일로 돌아간 여자애 손에는 바닷물이 가득 든 하얀 통이 들려있었다. 거기엔 여전히 팔팔한 물고기가 앞다투어 물을 튀기고 있었다.
“아버지? 이거 어쩔 거야?”
“어쩌긴. 이놈들 먹여야지.”
“이거 다?”
“너도 일기예보 들었잖아. 이번 주는 태풍 온다잖아. 조업 끝이야. 뭐든 먹어야지.”
“태풍?”
민석과 나의 여행은 1박 2일에서 길어봐야 2박이었다. 그런데, 일주일 동안 태풍이 와서 배를 띄우지 않는다면 나는 여기서 일주일 동안 있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이건 계획과 틀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