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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루하 Jun 26. 2024

부모

부모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요즘 디코를 통해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쩔 수 없는 세대차이, 나이차이를 느낀다. 가급적 말을 안 하고 있는 이유는 나이에 의해 나오는 경험적 스킬이 나와 나도 모르게 내 나이를 밝히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들의 이야기는 글감이 되기 때문에 정말 소중한 시간이다.        

       

그런데 나이가 많음으로 인해 하는 조언을 하고 싶을 때가 많다. 어제도 그런 날이었다. 나는 이미 부모의 입장에 있다. 어린 작가들 사이에서 의례 나오는 고민 중에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련된 게 많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가 부모라는 것을 알리는 경우가 생긴다. 어쩔 수 없는 나이차로 인해 들켜버렸다. 생각을 말하다보면 그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부모가 처음이듯이 자식도 처음이다.'라고 말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것 중에 하나는 어른도 실수한다는 것이다. 처음인 삶의 최선을 다하기는 하지만, 어른도 자식도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한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훈육의 목적에서 벗어나 과한 혹은 알면서 하는 실수를 한다는 것이다.               

이 실수를 인정하느냐 마느냐 이것이 어른의 권위를 세우고 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 게 스스로 권위를 세우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이야기를 했을 때 그들은 생각보다 그런 어른은 없다고 말했다. 거기서 오는 괴리감에 놀랐다.      

         

나는 좋은 엄마의 기준은 아니다. 나도 실수도 많이 하고, 정형적인 T성향이 강해서 현실주의적인 의견을 주거나 글 이외는 관심도 없어서 감동도 크게 없다. 생각보다 ‘네 일이니까 믿는다’ 말하고 정도로 끝낸다. 실패는 어쩌냐는 질문에 나는 말했다. 마음 아프지 않으냐고 물음도 같이 한다.    

            

나의 대답은 "실패할 수도 있어. 울고 속상해하고 그건 당연한 거지. 그럴 수 있다 생각하는 어른도 쉽지 않지. 하지만 다시 할지 말지는 네가 선택해. 네 인생이니까 나는 지원을 해줄 뿐이야."이다. 믿어준다는 말로 정리하던 그들의 대답에 그런가? 했다.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길에 어른이 안내자 역할을 하는 것이 맞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부모는 자식 뒤에 있는 존재다. 이끌어 가는 존재가 아니라 뒤에서 기다려주고, 쓰러질 때 나무처럼 쉴 수 있는 그늘이 되어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나의 교육은 거기에 뒷받침하고 있다. 아이가 넘어졌을 때 무조건 손을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길 독려하다 아이가 손을 내밀면 잡아주는 존재가 부모가 아닐까? 아이가 원하면 언제든 "응. 엄마, 아빠 여기 있어!" 답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의 시는 


부모라고 해서 모두를 알 수 없습니다. 실수를 하는 존재이고 인정해야 하는 존재이죠. 부모가 처음이기 전에 사람이기 때문에 시행착오가 있습니다. 어른이면서 부모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어서 부담이 아주 크답니다. 오늘은 그런 부모님을 위해 안아주는 것은 어떨까요? 아내에게 남편에게 부모 한다고 고생 많다고 한 마디 해주세요. 가끔은 사랑을 표현하는 것만큼 큰 힘이 되는 건 없답니다. 날씨가 더워지니 늘 말하게 되네요. 건강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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