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들. 짧은 시간, 좋은 얘기만 해도 모자랄 판인데 그 아까운 시간 둘이 토닥거리고 있다. 한참을 그러다 토라져 가버리고 약간의 냉각기가 지나면 서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다 남자가 용기를 내어 먼저 연락을 한다.
'미안해'
'뭐가 미안한지 말해봐'
'00 때문에..'
'그래, 아는 사람이 그래?' 이 경우는 운 좋게 맞춘 경우다.
'미안해'
'뭐가 미안한지 말해봐'
'00 때문에..'
'뭐? 자기 한 짓도 몰라? 그러고 00도 한 거야? 자수했다가 덤터기 쓴 경우다.
뭐, 운이 좋았건 덤터기를 쓴 경우던 빠져나갈 길은 처음부터 없었다. 사랑을 키워가는 단계에서 연인들의 모습은 이렇다. 다투지 않은 연인이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 연인이라면 반드시 다투고, 다투지 않았다면 아직 연인이 아니다. 다툼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다투면서 사랑을 키워가는 것이다. 에로스 사랑에는 '다툼'이 필수 조건이다. 다툼이 없다는 연인을 두고 '아직 멀었다'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다툼의 주된 이유는 자신 위주의 생각과 상대방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이것 조금 해주면 안 되니?'
'내 상황이 이러니 네가 조금 이해해주면 안 되니?'
다 맞는 말이다. 각자의 바람과 여건이 있다. 나에겐 작은 바람이지만 상대에겐 어려울 수도 있고, 나는 많은 양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만족하지 못할 경우도 있다. 이나저나 공통점은 서로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타협의 여지가 없다. 서로를 주장하다 보니 자연 다툼이 생긴다. 사랑의 스타일이 달라 그럴 수도 있다. 주고 또 주는 스타일이 있는가 하면 작게 주고 많이 받는 스타일, 받은 만큼 주는 스타일이 있다. 스타일의 다름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하는 스타일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면 그 사이에 조그마한 토닥거림이 생긴다. 에로스 사랑의 특징이기도 하다.
연인들이 싸우는 이유는 간단하다. 욕심이다. 다른 직접적인 이유가 있어도 실상 근본 원인은 내가 더 많은 사랑을 갖고 싶은 욕심. 나 만이 차지해야 하는 욕심 때문이다. 에로스 사랑에는 욕심이 필연적이다. 만일 욕심이 없다면 이건 아가페 사랑이다. 주고 또 주는 스타일의 사랑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 뿐, 주어도 오는 게 없으면 나중에는 다투게 된다. 결국은 욕심으로 귀결된다.
연인들의 다툼도 사랑의 한 부분이다. 사랑의 깊이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 달라지는 것이 정상이다. 초기에, 사랑을 갖고자 열망할 때는 전부를 양보하기에 다툼이 없다가, 사랑의 단계에 진입하면 더 많은 사랑을 갖고 싶은 욕심이 생기고, 발전하여 집착에 이르게 된다. 전부를, 더 가지려고 하는 욕심의 결과가 그런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렇다고 다툼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다툼으로 인해 상대를 그만큼 더 알게 되고, 더 가깝게 되는 것이다. 장작에 불이 붙을 땐 연기도 나고, 소리도 난다. 그러다 활활 타게 된다.
물론 다 타서 재가 될 때까지도 여러 변화가 있다. 재가 되기 전 더 나은 사랑을 찾아갈지도 모르지만. 다투다 보면 다투지 않을 때가 온다. 에로스 사랑은 그래서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