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를 살아가는, '나'만큼 소중한 '우리'를 위해
평범한 30대 여성인 나는 맛집과 카페 투어, 쇼핑여행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따금 사회적 의미가 있는 여행지를 찾곤 한다.
인도에서는 뿌두체리에 있는 오로빌 공동체를 둘러보고, 방글라데시에서는 무하마드 유누스가 설립한 그라민 은행을 찾아가는 식이다.
세상에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기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도 크고 작은 균열과 삐걱거림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에서 나름대로의 대안을 생각하고, 변화를 실험하고자 하는 곳들을 좋아한다.
그 '대안'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완벽한 모습을 갖추고 있지 않더라도 말이다.
뉴욕에도 그런 곳이 많다.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핫 브레드 키친 Hot Bread Kitchen', 지역 농민과 사회적 소수자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저스트 푸드 Just food', 포장재 없는 슈퍼마켓으로 알려진 '더 필러리 The Fillery' 도 뉴욕에 자리 잡고 있다.
그중 내가 찾아간 곳은 엠마스토치 Emma's torch 라고 하는 비영리-사회적 기업 식당이다.
2016년에 탄생한 이 식당은 난민과 망명자, 인신매매 생존자를 직원으로 고용해 교육시킨 후 사회에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었다. 식당이 만들어진 목적은 직원들이 의미 있는 커리어를 쌓을 수 있게 돕는 것. 식당에 대한 궁금함이 일었다.
트럼프 정부의 강경한 반이민정책이 만리장성보다 더 거대한 성벽을 쌓아가던 시기. 내가 뉴욕에 간 것은 미국이 난민 수용 쿼터를 기존 4만 5천 명에서 3만 명으로 낮추겠다는 발표가 난 직후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주민을 위한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식당은 어떤 모습일까? 손님은 얼마나 있을까?'"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식당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예약할 수 있었다. 점심 방문이지만 주말이기에 예약을 하고 가는 쪽을 택했다.
지하철을 타고 브루클린에 있는 캐럴 스트리트 역 Carroll street station에 내렸더니, 듣던 대로 맨해튼의 스카이라인과는 대조적인 선을 지닌 마을이 나타났다. 주민들의 플리마켓이 열리는 아기자기한 주거지였다.
식당에 들어서 예약을 했다고 말하니 직원들이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카운터 형태의 좌석으로 안내받아 자리를 잡았다. 주변을 둘러봤다. 스무 평 정도 될법한 작은 공간. 여덟 개쯤 되는 테이블은 대부분 가족단위 손님들로 차 있었다.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메뉴판을 받아 들었다. 주로 중동과 남미 요리가 많았다. 중동 요리에 거부감이 없는 나에게는 반가운 음식이었다.
'에그 인 헬 Egg in hell'로도 알려진 샥슈카, 콩을 부드럽게 갈아 만든 후무스를 주문했다.
맛은? 일품이었다. 디저트로 시킨 피스타치오 브레드 푸딩까지, 엠마스토치 음식은 기대 이상이었다.
지향하는 가치가 아무리 의미 있다 하더라도 음식 맛이 부족하거나 제품 품질이 떨어지면 오래 지속하기 힘든 것이 사회적 기업인데, 엠마스토치의 샥슈카와 후무스는 다른 일반 식당과 비교해도 훌륭했다.
CNN을 비롯한 각종 현지 매체에서 이 식당을 연이어 주목한 것도 사회적 의미와 음식 맛 모두가 뛰어났기 때문이 아닐까?
담당 직원에게 "여행 중에 일부러 찾아왔는데 음식이 맛있어요!"라는 이야기로 말문을 트니, 기다렸다는 듯이 반색하며 식당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주었다.
식당을 운영하는 목적이 음식 제공만은 아니여서일까? 직원들은 식당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리는 동시에 방문자의 솔직한 피드백도 원하고 있었다.
궁금한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밤을 새워서라도 알려줄 기세였고, 손님에게 듣고 싶은 것도 많아 보였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물꼬를 텄다.
식당을 방문하기 전에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엠마'가 누구인지였다. 창립자 이름일까? 아니면 직원일까?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알고 보니 엠마는 자유의 여신상 받침대에 새겨진 시 <새로운 거상>을 쓴 작가, '엠마 라자루스 Emma Lazarus'에서 따 온 이름이라고 했다. 식당 상호는 바로 그 엠마의 뜻을 계승하기 위한 것이었다.
너의 지치고 가난한
자유를 숨쉬기를 열망하는 무리들을
너의 풍성한 해안가의 가련한 족속들을 나에게 보내다오
폭풍우에 시달린, 고향 없는 자들을 나에게 보내다오
황금의 문 곁에서 나의 램프를 들어 올릴 터이니.
<새로운 거상 The New Colossus>, 1883
이러한 뜻을 이어 2019년에는 총 43개국에서 온 57명이 엠마스토치를 거쳐 갔다고 한다.
직원이 되면 2개월 동안 유급 트레이닝을 받는다는데, 앞으로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데에 꼭 필요한 요리 강습과 더불어 멘토의 지원, 영어교육과 직업 소개도 제공받는다. 단순한 일터가 아닌 교실이자 학교인 것이다.
훈련이 끝나면 엠마스토치가 발행한 졸업장을 쥐고 사회로 나간다. 작년엔 직원 중 97%가 직업을 찾아 뉴욕에 정착했다고 한다.
브루클린에 있는 아주 작은 식당의 활약을 보며, 식당이 지향하는 가치만큼은 다른 어떤 곳보다 넓다는 생각을 했다. '너와 내가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한 흔적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자라는 내 아이가 처음 말을 배우기 시작한 무렵, 알려주고 싶은 한국어가 있었다.
바로 '우리'라는 단어. '너'와 '나'를 가깝게 이어주는 아름다운 이 말을 꼭 전해주고 싶었다.
우리라는 이름의 울타리 안에 속해 있는 동안 삶의 불안은 절반이 된다. 나를 남으로 여기지 않는 따뜻함, 서로가 서로를 도울 것이라는 믿음, 그 속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우리'는 다양한 의미를 품고 있는 긍정의 단어다.
하지만 때로는 그 단어가 잔혹하다는 생각도 든다. 모두를 한데 아우르는 데만 쓰일 것 같지만, 나와 남을 가르는 도구로 이용될 때도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데."라는 말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이들이 내 공동체 속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 지역 출신 아니잖아."라는 말은 내 고장 사람을 제외한 모든 한국인을 타자화한다.
"우리 아파트 사는 것도 아닌데."는 바로 길 건너에 사는 이웃도 남으로 만든다.
그 단어를 좁은 의미로 쓰면 쓸수록 내부에 속한 이들 간의 결속력은 높아질 수 있겠지만, 필연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우리'라는 이름의 울타리를 조금 더 확장하면 어떨까? 울타리를 넓히면 넓힐수록 공동체로 삼을 수 있는 사람들의 폭도 넓어진다. 같은 단어를 더욱 가치롭게 쓸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런 면에서 모두에게 기회를 주는 엠마스토치의 울타리는 넓었다.
앞으로 아이에게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면, 엄마가 만난 뉴욕의 작은 식당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이 단어의 무궁무진한 쓰임새에 대해서도 일러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국가와 국적을 불문하고 누구나 난민이나 망명자가 될 수 있는 시대다. 개개인이 자기 삶을 성실히 산다고 해서 피해 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예컨대 기후 난민이 그러하다. 기온 0.5도가 상승하면 전 세계적으로 1억 명의 난민이 증가한다니, 이런 위기로부터 그 어떤 나라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기에 지역주의와 국가주의를 넘어 더 큰 연대를 이루어야 하지 않을까?
엠마스토치에서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한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우리'가 되어주는 식당. 밥 한 끼에 세계를 담은 엠마스토치는 뉴욕의 진정한 '멋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