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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지 Sep 24. 2020

한겨울 노르웨이를 가을 코트 입고 여행했다고?

우리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겨울왕국 노르웨이에는 비가 내렸다 

 나는 얼죽코(얼어 죽어도 코트)다. 요 몇 년간 롱 패딩이 유행했다지만 단 한 번도 입은 적이 없다. 그러나 노르웨이 여행을 준비할 때만큼은 갈등이 됐다. 

"노르웨이는 겨울 왕국이라는데, 과연 거기서도 얼죽코를 고수할 수 있을까?"

 아, 이번만큼은 자신이 없었다. 결국 남편의 다운재킷을 빌려 입기고 가기로 매듭지었다.


 "북유럽은 얼마나 추울까?" 하는 걱정을 안고 오슬로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 설국이 펼쳐질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길을 걸어 숙소를 찾아가는 내내 "서울보다 따뜻한데?" 하며 중얼거렸다.

 

  끼고 있던 장갑을 뺐다. 가방 가득 짊어지고 온 휴대용 손난로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북유럽 간다고 큰 마음먹고 장만한 방수 방한 부츠 때문에 발에 땀만 났다. 남편에게 빌린 다운재킷도 입을 일이 없었다.

 2020년 1월, 나는 얇은 가을 코트를 입고 노르웨이를 여행했다.


 북유럽 여행이 처음이기에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원래 이렇게 따뜻한지, 아니면 올해가 유독 특이한 건지 궁금했다. 정답은 후자였다.


 언론 보도를 확인하니 2020년은 노르웨이에서 기상 측정이 시행된 이래 가장 더운 겨울이라고 했다. 1월 초에는 온도가 섭씨 19도까지 올라 한겨울에 반팔을 입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1월에 반팔이라니. 계절이 거꾸로 물구나무서기라도 한 것일까? 


 푄 현상이 일어난 이유도 있지만 이상기후 탓도 컸다고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이변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북극 도시에 겨울이 사라진다고요?

 첫 날 뿐만이 아니었다. 노르웨이와 핀란드를 여행하는 내내 비만 만났다. 겨울 왕국을 떠도는 열흘 중 눈을 본 것은 하루 이틀 정도. 북극권인 트롬쇠 Tromsø에 갔을 때나 겨우 눈을 볼 수 있었다.


 트롬쇠 Tromsø. 북극의 관문인 이 도시는 북위 69도에 위치해 있다.

얼음의 땅으로 알려진 아이슬란드보다 더 북쪽이다. 겨울에는 24시간 밤이 지속되어 온종일 해를 볼 수 없는 극야의 도시이기도 하다. 

 여행자들이 이토록 먼 곳을 찾아가는 이유는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다. 이 드문 기회를 놓칠 수 없지. 나도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오로라 헌팅에 나섰다.


 전문 가이드와 함께 오로라 지수가 높으면서도 구름이 없는 하늘을 찾아 스웨덴과 핀란드 국경을 넘나들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구름 한 점 없이 말끔한 하늘에 오로라가 나타났다. 지구가 보여주는 오로라의 춤은 신비로웠다. 살면서 한 번 볼까 말까 한 일생일대의 명장면이었다.

 사진으로 찍었을 때 초록색으로 담기는 오로라는 실제로는 은빛에 가까웠다. 마법 같았다. 물결처럼 일렁이는 오로라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


 잠시 후, 담당 가이드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따뜻한 수프라도 마시며 몸을 녹이자는 것이었다. 함께 참가한 여행자들과 옹기종기 모닥불에 둘러앉았다.

 베트남, 남미, 미국, 호주 등 온갖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과 각자 소개를 한 후 노르웨이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가이드는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물어봐도 좋다고 했다.

 너나 할 것 없이 동시에 질문한 것은, "노르웨이 원래 이렇게 따뜻해요?"였다. 그 궁금증을 나만 갖고 있었던 게 아니었나 보다.


 가이드는 말했다.

 "원래 트롬쇠 겨울 기온은 영하 5도 내외예요. 그런데 이번 겨울은 0도 전후를 왔다 갔다 하고 있어요."

 트롬쇠도 오슬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얘기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트롬쇠의 겨울은 30여 년 전보다 17일이나 짧아졌다고 한다. 이대로 간다면 앞으로 30년 후엔 겨울이 40일 이상 짧아질 것이라 했다.


 북극 도시에 겨울이 사라져 가고 있다니!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하자 큰 위기감이 느껴졌다.

 지금 다섯 살인 내 아이가 서른이 되었을 때, <겨울 왕국>은 동화책 속 이야기이자 전설로만 남을지도 모르겠다는 불안함이 엄습했다. 

 


 

북극의 더운 공기, 한반도 장마가 되어 돌아오다

 머나먼 북극 도시 이야기는 남의 일도, 먼 미래의 일도 아니었다. 북극 도시를 장악하던 위기감은 돌고 돌아 정확히 6개월 후 한반도에 상륙했다.


 2020년 여름, 동북아시아 장마는 처절했다.

 중국과 일본, 한국에 물폭탄이 연이어 떨어졌다. 한국 장마는 6월 24일부터 시작되어 8월 16일이 되어서야 끝났다. 54일이라는 역대 최장의 장마. 섬진강이 범람하고 화개장터가 잠겼다. 한강공원도 형체를 찾아볼 수 없었다. 긴 장마는 42명의 인명피해와 8천여 명의 이재민을 남겼다. 


 놀랍게도 그 장마의 원인은 내가 경험한 북극의 더운 겨울과 맞닿아 있었다. 


 장마는 북쪽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고기압과 남쪽에서 올라오는 더운 고기압이 만나 만들어진다. 그러다 남쪽에서 올라오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더 강한 힘으로 치고 올라오면서 장마전선이 북상하고, 장마가 끝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올해는 북극권 온도가 유난히 높아 적도와의 온도 차이가 적어졌다. 

대기를 빠르게 순환시키던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힘없이 굽이쳐 흘렀고, 그 틈으로 시린 공기가 한반도 북쪽으로 새어 들어와 차가운 기단을 만들었다. 유래 없는 일이었다.


 힘차게 올라오던 북태평양 고기압은 새 기단이 머금은 찬 공기를 밀고 나아가지 못했다. 더운 곳은 덥고, 추운 곳은 추워야 유지되는 지구의 균형이 깨진 탓에 역대 가장 긴 장마가 이어진 것이다.


 해가 갈수록 더워지는 북극의 겨울을 남 일인 양 강 건너 불구경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엄마이기에 할 수 있는 일

 이 일을 어떡하면 좋을까.

사실, 기후변화 문제를 풀어가기 위한 해법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단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실제 생활 모습이 다를 뿐이다. 


 '편리한 것'을 '좋은 것'이라 여기며 살아온 우리의 일상이 북극에 닿아 겨울을 사라지게 하고, 그것이 물폭탄이라는 형태로 되돌아온 것은 아닐까? 

이번 장마로 인한 피해는 오직 편한 것만 추구하며 살아온 우리 모두의 성적표 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실천한다는 것은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한다는 뜻. 약간의 번거로움과 귀찮음을 극복하지 않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사고를 전환해, '불편한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생태적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재생에너지의 영역을 넓혀 가는 것. 소비가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하며, 제로 웨이스트에 도전하는 것. 불편하지만 가치 있는 일이다. 


 아이들 세대에게 우리가 전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리 훌륭한 교육환경과 경제적 풍요를 물려준다 한들 살아갈 터전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얇디얇은 가을 코트를 입고 노르웨이를 여행하며, 미래세대에게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을 상속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생물이 살아 숨 쉬고 그 누구도 기후 위기로 위협받지 않는 세상을.


 지나간 일은 사람의 힘으로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내일 일은 사람의 의지로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어떤 절대자도 아닌, 엄마들 일지 모른다.




늦봄 같기도, 초가을 같기도 했던 오슬로 1월 풍경.


극야 현상이 나타나는 북극권에 가서야 겨울을 느꼈지만, 트롬쇠의 겨울도 점점 짧아지고 있다


아이에게 겨울을 전해줄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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