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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지 Sep 27. 2020

핀란드 화장실에서 받은 문화충격

차이를 차별할 순 없어요,  당신도 나와 다르게 생겼어요




헬싱키 백화점 화장실에서 본 낯선 아이콘

 내 눈에 비친 핀란드는 여러모로 생경한 나라였다.

 시민들의 발이 되어주는 트램과 지하철에는 검표 절차가 없었다. 비용을 지불했는지 아닌지는 개인의 양심에 맡겼다. 건축물도 아름다웠다. 도시의 아름다움은 '건물이 얼마나 높은가'가 아닌, '건물에 어떤 철학이 담겼는가'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 그 어떤 도시보다 도서관이 훌륭했다. 도서관은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장소라는 상식을 깨기 위해 존재하는 공간 같았다. 도서관에 온 사람들은 엄숙하지도 정숙하지도 않았다. 시설을 이용하며 마음껏 수다를 떨고, 도시락을 먹고, 아이를 맨발로 뛰어놀게 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낯선 풍경이 있었다.

'눈을 씻고 다시 보다'라는 관용구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헬싱키의 대표적인 쇼핑 시설, 스토크만 Stockmann 백화점에서 본 아이콘이었다. 화장실을 알리는 표지판은 남성용, 여성용을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이분법적 성별 가름을 뛰어넘는 젠더 아이콘이 하나 더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나고야에서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기였다. 어떤 사회에서는 감춰야 하는 것인 양 쉬쉬하는 것을 지구 반대편에서는 당당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 신선했다.


 화장실 표지판에 문화충격을 받아 얼어있던 것도 잠시. 여행이라는 목적에 충실해야 했기에 예정대로 발길을 돌려 맞은편 아카데미아 서점으로 향했다. 핀란드를 대표하는 건축가 알바 알토가 설계했다고 해서 더욱 이름난 장소다.

 그곳 2층에는 '카페 알토'라고 하는 북카페가 있는데, 영화 <카모메 식당>의 배경으로 알려진 곳이다. 카페 알토에 자리를 잡고 영화를 추억하려는 순간, 직원이 다가왔다.


"여행 온 것 같은데 외국어로 된 메뉴판이 필요하니?"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보니 기존의 젠더 구분에 속하지 않는 젊은이가 있었다.

 직원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게 나를 응대했고, 나는 손님으로서 그의 도움을 받았다. 무엇 하나 다를 것 하나 없는 일상적인 카페 풍경이었다.

그 사람이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일하는 모습이 좋았다.




조금이라도 모나지 않은 돌은 없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누가 '다수'에 속하느냐 '소수'에 속하느냐는 그저 우연에 의해 결정될 뿐,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카페 알토에서 본 젊은이가 다수에 속하지 않을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특별히 잘못한 것은 없다.


 하지만 세상은 동화 같지 않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시대가 바뀌어도 소수자를 모난 돌로 여기는 문화는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일생을 완전무결하게 '다수'나 '보통', 혹은 '평범'의 편에서만 살아갈 수 없다. 남들에게 화살을 쏘고 정을 때리고 살던 사람도 인생의 어떤 모퉁이를 돌면 어느샌가 정 맞는 사람이 된다.

 

 이유야 셀 수 없이 다양하다.


 인종이 달라서, 종교가 있거나 없어서, 종교가 나와 같지 않아서, 외모나 행동이 남성 혹은 여성답지 않아서, 옷을 특이하게 입어서, 머리색이 튀어서, 부모 중 하나 혹은 둘이 없어서, 직업이 이러저러해서, 비혼이라서, 딩크라서, 외동이라서, 형제만 있어서, 자매만 있어서, 다자녀라서, 다문화라서, 왼손잡이라서, 신체의 모습이 달라서, 진학이나 취업 혹은 결혼이 늦어서, 고향이 서쪽이거나 동쪽이거나 북쪽이라서, 도시 출신이라 깍쟁이일 것 같아서, 살고 있는 집의 가치가 낮아 보여서, 비명문대를 졸업해서 등등.

셀 수도 없는 핑계를 긁어모아 서로를 '모난 돌'로 규정한다.


 이쯤 되니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여기서 하나라도 해당 안 하는 사람 있어?"


 이런 단편적인 특징이 사람을 대하는 기준이 된다면 그 누구도 자기 자신답게 살아갈 수 없다. 집단의 일원으로 생존하기 위해 진짜 모습은 숨기거나 억누르고, 어쩔 수 없이 가면을 쓰게 된다.

모난 돌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지 않기 위한 숨바꼭질의 시작이다.


 '일반적'이라는 이름 아래 획일화된 삶의 모습만 종용하는 세상과, 모든 사회 구성원이 제각각 다양한 정체성을 드러내고 인정받는 세상. 둘 중 어디서 살고 싶냐 물으신다면, 나는 후자를 택할 것이다.




내가 띄운 편견의 부메랑은 돌고 돌아 나에게 온다

 '한 인간으로서의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토록 알량한 이유 중 하나를 근거로 나를 평가할 수도 있다. 이런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하고 마음먹는 데서 끝난다면야 세상이 꽃밭 같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내가 맞은 편견의 부메랑에 더 큰 분노를 실어, 다른 어딘가로 날려 보내는 경우도 많다.


 나는 2014년 가을 일본에 왔다. 이곳에 산지 어느덧 6년. 다양한 일을 경험했다.

 한국이 너무 좋다며 초면부터 무턱대고 호감을 갖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양국의 정치적 관계가 좋지 않을 때는 그 불똥이 나에게 튀기도 한다.

 다원주의 국가라기보다는 단일민족, 단일문화 사회에 가깝기 때문일까? '외국인'이라는 것만으로 편견을 갖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슬픈 때는 따로 있었다. 일본에서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차별당한 경험을 말하고,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하는 일본인들이 우물 안 개구리 같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한국 지인이 이렇게 말할 때다.

 

 "언니, 그래도 우리가 재일교포랑은 다르잖아? 나 일하는 곳에 재일교포 손님이 온 적 있는데 그 사람 진짜 별로더라. 언니도 재일교포 조심해."


 아, 뭐라 대답하면 좋을까.

말문이 막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등장인물만 바꾸어 차별을 재생산한 모양새다. 이 대화에 들어간 '재일교포'라는 단어는 때로는 누군가의 출신 지역이나 학교, 형제자매의 유무 등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곤 했다.

세간의 어처구니없는 편견이 얼마나 억울한지 알면서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를 학습해 가벼운 대화거리로 소비하는 것이다.

 

 혐오와 편견의 부메랑이 돌고 도는 한 우리 모두는 피해자이자 가해자다.

내가 남에게 던진 부메랑은 명분만 약간 바뀐 채 반드시 나와 내 가족, 이웃에게 되돌아온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누군가는 끊어야 하지 않을까?




그 부메랑, 그냥 처음부터 안 날리면 안 될까요?

 해결방법은 의외로 간단할지도 모른다. 각자의 타고난 특징이나 고유함을 그대로 인정하고, 함부로 깎아내리려 들지 않는 것이다.

 자기 자신도 울퉁불퉁하게 생겼으면서 남에게 "너 왜 그렇게 생겼어? 계란처럼 매끈해야지!"하고 큰소리치는 것을 깔끔하게 관두면 된다.

 우리는 형태도, 모양도, 크기도 다르기에 매력적인 존재다. 모난 부분이 있기에 서로의 빈틈을 채우며 살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차이'라는 것은 아주 큰 축복이다.


 더불어, 자신의 생김새를 타인의 시각으로 검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일본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우리 아이는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모난 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이가 타인의 차이를 존중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독특한 차이를 갈아 없애려 하지 않았으면 한다. 개개인이 어떤 모습이든, 모두가 사회를 이루는 소중한 구성원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아시아인이라서, 다문화가정이라서, 외동이라서'와 같은 모진 부메랑이 날아오면

"내가 아니고 니 편견이 잘못된 거야."하고 씩 웃으며 여유롭게 맞서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우리 아이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크면 좋겠다.


 여행이 끝난지는 이미 오래지만 핀란드 화장실에서 본 표지판과 카페 직원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왜일까? 그 날 그 장면을 자꾸만 떠올리고 곱씹게 된다.

 처음에는 분명 당황스러웠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헬싱키의 방식에 공감하는 마음이 자라난다.

그것은 성소수자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모남' 하나씩은 지니고 있는 세상 모든 이들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소녀이던 때부터 지금까지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문장 하나를 꺼내어 본다.


차이를 차별할 순 없어요.
당신도 나와 다르게 생겼어요.




2004년, 학교 담벼락에서 이 포스터를 본 순간을 기억한다. 16년이 흐른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바뀌었을까, 그대로일까?


겨울 헬싱키. 카모메 식당을 찾았지만 휴가 안내문만 덩그러니. 대신 겨울 바람 맞으며 야외수영을 했다.


건축알못도 경이롭게 하는 헬싱키는 고층 빌딩을 쌓아 정체성을 드러내는 도시들과는 대조적인 길을 가고 있다.


건축가 알바 알토가 설계한 것으로 유명한 아카데미아 서점, 그리고 카페 알토.


이 표지판이 그 표지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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