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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지 Sep 30. 2020

엄마의 가을방학, 지중해 몰타에서의 열흘

육아라는 장거리 마라톤을 위한 숨 고르기




엄마는 떠났다, 유럽 휴양지로

 내 일주일은 일하는 날 4일, 육아하는 날 3일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워킹맘들보다 일하는 시간은 짧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긴 편이다. 그래서 삶이 여유 있냐 하면, 전혀 아니다.


 4일 동안 일주일치 일을 몰아서 하고, 남은 3일에는 일주일치 엄마 노릇을 꾹꾹 눌러 담는다. 몸은 하나인데 해야 할 역할은 끝이 없다.

 영혼이 탈탈 털린 나머지 "손오공처럼 머리카락 뽑아서 분신술이라도 하고 싶다."는 엉뚱한 공상이 떠오른 날, 내가 제정신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남편을 붙들고 '열흘간의 가을방학 찬스'를 사용하겠다고 선언했다.


 '나'와 '일', '가정' 사이의 균형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원한다고 해서 누가 선뜻 알아주지도, 입을 벌려 떠먹여 주지도 않는다. 그러니 숨이 찰 땐 "너무 지쳐서 그런데 좀 쉴게. 충전하고 와서 교대하자. 너도 쉬어야지."라고 터놓고 표현하자는 것이 우리 부부의 약속이다.

 남편은 잘 쉬고 오라며 어깨를 다독여줬고, 한국에 가기 위해 아빠와 떨어져 본 경험이 많은 아이는 "엄마랑도 영상 통화하면 되니까 괜찮아." 하며 애착과 분리의 경계선을 건강하게 뛰어넘었다.

 

 가을방학을 손에 넣은 나는 나고야에서 인천으로, 인천에서 로마로, 로마에서 몰타로 세 대의 비행기를 탔다. 아이를 데리고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긴 비행이었다. 집을 나온 지 24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간신히 몰타에 닿았다. 이미 온 사방에 어둠이 내려앉은 후였다.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며 늘어난 것은 걱정이요, 발달한 것은 촉인데 몰타의 첫인상에서 위험은 감지되지 않았다. 은은한 불빛이 중세의 성곽을 밝혔고, 노천식당에서는 음악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주민과 여행자들은 해안가를 따라 산책하고 있었다. 꽤 낭만적이었다.

 

 다음 날, 밝은 햇살 아래 또렷하게 마주한 몰타는 첫인상 그대로였다.

역사, 풍경, 음식, 물가, 치안까지. 매력적인 여행지의 요건을 고루 갖추고 나를 끌어당겼다.




작은 나라에 여행자가 왜 이렇게 많아?

 몰타는 국토면적이 제주의 1/6 크기밖에 되지 않지만 볼거리가 실타래처럼 한없이 풀려나오는 나라다.

 선베드에 드러누워 낮잠만 자겠다고 마음먹어도, 가고 싶은 곳이 많아 자꾸만 몸을 움직이게 되는 것이 단점이랄까.


 몰타 풍경엔 사람을 이끄는 힘이 있었다. 깎아지른 절벽 뒤로 하늘과 바다가 만나 끝없는 수평선을 이루는 곳이었다. 도심에는 중세를 호령하던 기사단의 성이 우뚝 솟았고, 한 때 도시를 지키던 요새는 여전히 의기양양한 자태로 세월에 맞서고 있었다.

 상아빛 라임스톤으로 지은 집과 올록볼록 튀어나온 발코니는 동화 속을 걷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나지막한 구릉에는 채도 낮은 올리브와 포도나무가 자랐다. 민둥한 땅의 빈틈에 무심하게 핀 선인장은 이곳이 지중해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바다가 으뜸이었다. 몰타 코미노 섬은 '블루라군'으로 유명한데, 투명한 물결 위에 배 그림자가 비치는 장면이 더없이 청량했다. 바위에 수건 한 장 깔고 드러눕는 것만으로 완벽한 휴양이 완성되는 곳이 또 어디 있으랴.

 바다를 만난 후 지중해의 작은 섬 몰타가 유럽인들의 휴양지로 사랑받는 까닭을 단숨에 알게 되었다. 휴식을 찾아온 나에게 몰타 바다는 천국 같은 쉼터였다. 그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루시드폴을 듣고 듣고 또 듣고 원 없이 들었다. 아기 상어 뚜루루뚜루가 아니라면야 뭔들 좋지 아니하리. 아이가 아닌, 나를 돌보는 시간이었다.




하나의 정체성에 또 다른 정체성을 더한다는 것

 내가 몰타에 간 것은 풍경 때문만이 아니다. 진짜 목적은 다양한 문화의 교차점을 보고 싶어서였다.


 세계지도를 펴고, 유럽으로 손가락을 가져가면 지중해 한복판에서 몰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동서로는 지브롤터 해협과 카이로의 정중앙이자, 위로는 유럽, 아래로는 북아프리카를 잇는 절묘한 지점이다.

 지정학적 중요성은 몰타에게 고난이자 축복이었다. 태생부터 다른 문화권과의 교류가 활발했고, 카르타고, 로마제국, 시칠리아 제국, 에스파냐 왕국, 아랍, 노르만족이 차례로 몰타를 스쳐갔다.

 예루살렘이 이슬람 제국에 함락된 시점엔 기사단의 역사가 피어났다. 1800년부터 160년간은 영국 지배도 받았다. 이런 사연 때문에 몰타의 정체성을 단 하나의 문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위치 덕에 얻은 것도 있었으니, 다양한 문화가 맞물려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몰타만의 특색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몰타의 언어는 이탈리아어와 비슷하면서도 아랍어 같고, 식문화는 유럽스러우면서도 중동과 흡사하며, 기사단이 잠든 대성당은 아랍 양식 건축물로 둘러싸여 있다. 때문에 몰타를 여행하는 것은 숨은 그림 찾기 게임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거리에서도, 식당에서도 "이건 어떤 곳의 영향을 받았을까?"를 계속해서 궁리하게 된다.


 기존에 지니고 있던 하나의 정체성에 또 다른 정체성이 더해져 만들어진 몰타만의 고유함. 다른 나라가 대체할 수 없는 이곳만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엄마가 되는 것은 또 다른 나를 얻는 과정

 몰타를 돌아보며 우리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존재에 '엄마'라는 이름이 덧붙여진 것도 때로는 고난이지만 결국은 축복이 아닐까?  


 스물일곱 결혼, 스물아홉 출산. 내 결혼과 출산은 요즘 기준으로는 조금 빨랐다. 친구들은 나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주로 "너 같은 개인주의자가 어떻게 결혼을 결심했어?", "결혼을 하면 자기 인생이 없어진다는데, 정말 그래?", "아기가 태어나면 내 정체성은 사라진대. 엄마가 되기 무서워."같은 이야기였다.

 기혼자의 삶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느껴지지 않았다. 결혼 후의 삶이 어떤지 궁금해서 나오는 순수한 질문이었다.


 만성피로에 찌든 나와 남편의 일상을 돌이켜보자면, 일정 부분 포기한 것이 분명 있다.

 생활의 구조가 가족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은 물론이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남편에게도 나와 동등한 지분을 내어주어야 한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엄마의 의무'라는 무게감마저 더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무언가 '좋은 것'을 얻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정당한 비용이다. 가족을, 배우자를, 아이를, 아무 노력이나 대가도 없이 공짜로 얻을 수는 없다. 내가 꾸린 가정의 안락함과 안정감은 그만큼의 수고와 고생을 담담하게 감내했기에 주어지는 것이다.


 정체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를 잃었다기보다는, 확장됐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과거에는 애써 돈을 벌고, 그럴싸한 성과를 얻어도 어딘가 허무한 구석이 있었다. 예쁜 옷과 구두를 수없이 사들이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다가도 문득 "인생 사는 즐거움이 이게 다일까?"를 중얼거리곤 했다.

 그런데 아이를 낳으며 내 이름 석자에 '시뽀 엄마'라는 정체성이 더해지자 공허함이 말끔히 흩어졌다. 아이의 성장을 돕는 것은 내 삶의 목적을 한결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결혼'과 '양육'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으며 과거보다 더 넓은 의미의 정체성을 새로이 정립했을 뿐, 변화는 소멸을 의미하지 않았다.


 남편과의 관계도 그렇다. 부부 모두가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한 육아는 남녀관계의 걸림돌이 아니었다. 비록 아기자기한 데이트를 하는 횟수는 일주일에 한 번으로 줄었지만, '아이 양육'이라는 공동의 과제를 해내기 위해 둘이서 한 팀이 되는 기쁨이 있다. 말 그대로 삶의 동반자를 얻은 것이다. 남편이 남자 친구이던 때는 느끼지 못한 감정이었다.


 이웃한 여러 나라의 정체성을 흡수하고, 그것을 알맞게 버무려 재탄생한 지금의 몰타를 보며 정체성의 정의를 생각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를 중심에 두되, 생의 중간중간 더해지는 다른 정체성도 기꺼이 수용하겠노라고. 그것이 아내이든, 엄마이든, 할머니이든 말이다.

 결론적으로, 결혼과 출산은 내가 지불한 고난만큼의 축복을 주었다.




육아라는 장거리 마라톤을 위한 숨 고르기

 하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부모들은 축복을 축복이라 느끼지 못한다. 축복을 만끽할만한 여유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부모 휴가다.

 그것은 '아이가 원하는 것'이 아닌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시간이자, 삶과 일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기회다. 매일매일 수행해야 하는 역할과 의무로부터 한 발짝 떨어지면 그제야 축복이 고개를 내민다. "그동안 바빠서 나 여기 있는 것도 몰랐지?"하고 말이다.


 자녀 양육은 잠깐 질주하면 끝나는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다. 평생 뛰어야 하는 장거리 마라톤이다. 긴 시간 동안 호흡과 심박수를 알맞게 조절해야 하기에, 매일을 숨 가쁘게 달리는 것은 득이 되지만은 않는다.

 엄마가 휴식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자신의 책임이나 역할을 다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숨을 고르는 과정일 뿐이다.


 몰타에서의 짧은 날들은 나에게 숨 고르기를 할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낯선 거리를 천천히 거닐며 육아라는 마라톤에 선수로 나선 내가 어디쯤 달리고 있는지, 방향은 맞는지, 속도가 빠르거나 느리지는 않은지, 아이와 함께 발을 잘 맞추고 있는지를 되짚어봤다. 평소에는 미처 생각지 못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발견했다. 고행 뒤에 숨은 축복을. 일상을 의미 있게 살아갈 동력을 발견하자, 엄마라는 이름의 마라토너는 더 신나게 달릴 수 있었다.

육아 대장정에 지친 엄마들에게 잠깐의 방학이 주어져야 하는 이유다.

  




수도 발레타에서 본 쓰리 시티즈. 몰타 기사단장이 있는 세인트 안젤로 요새가 보인다.


라임스톤으로 만든 집과 낮은 계단이 인상 깊은 거리. 몰타 어딜 가나 올리브색과 상아색이 조화롭게 어울린다.


화살을 피하기 위해 곡선으로 만들어진 골목과 성 요한 대성당. 기사단의 시대가 열렸을 때의 흔적이다.


아이가 아닌, 나를 돌보는 엄마의 가을방학


몰타 명물 음식. 층층이 쌓은 소고기를 찐 '브라지올리'와 토끼고기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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