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7: 시선 c.

시선 c.

by 다온

20XX.08.08.


오블리비언에 정착한지 어느새 한 달 정도 되었다. 그동안 이것저것 정리하고 보고 싶었던 소통하고 싶었던 사람들과 만나느라 일기를 쓸 짬이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블리비언으로 이주하기로 한 나의 결정은 아주 현명한 결정이었다. 물론 매우 오랜만에 사람과 모니터가 아니라 직접 대면해서 대화하고 교류하는 것에 다시 익숙해지는데 좀 시간이 걸리긴 했고, 예전에 내가 치를 떨었던 이른바 감정 소모가 완전히 없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어떤 중간 장치 없이 타인과 직접적으로 음성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것, 상대가 나의 말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 더 용이해졌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직접 상대의 표정과 눈빛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어떤 방법보다도 금새 나의 끝이 보이지 않는 공허함과 외로움을 채워주었다. 흔히들 하는 말처럼 너무 익숙하고 당연한 것이다 보니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는 관계와 소통이라는 것이 부질 없어 보이고 나의 감정만 소모하는, 체력만 축내는 것이라고 느껴질 때마다 홀로 견뎌야 했던 외로움과 막막함을 다시 떠올릴 것이다.


또한 역지사지의 자세를 가져볼까 한다. 관계를 유지하고 소통을 하는데 있어서 내가 하게 되는 감정 소모가 분명 존재하지만 나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나와 소통함으로써 상대방이 지게 될 감정 소모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여태껏 나는 상대가 감당해야 할 비용은 생각하지 않고 내가 짊어져야 할 비용만 생각하며 억울해 한 것이다. (난 손해보고는 못 사는 성격이다. 나 혼자서만 부당한 값을 치루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못한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절대 억울해 할 일이 아닌데 말이다. 그저 귀찮음을 없애고 편안하자고 시작했던 나홀로 지구 생활이 나에게 이렇게 많은 가르침을 안겨줄 줄 것이라고 예전의 나는 상상이나 했을까? 일상적인 외로움, 때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답답함으로 힘들기도 한 지구 생활이었지만 분명 얻어가는 것 또한 많은 지구 생활이었다.


오블리비언에서의 생활은 매우 평화롭다. 물론 가족 간의 크고 작은 다툼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크게 소란스럽거나 심각한 일은 없었다. 반대로 내가 급히 떠나온 지구는 아주 어지러워 보이긴 한다. 드디어 터질 것이 터졌나 보다. 나도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은 아니라서 도대체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지는 알지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이번 폭로로 인해 시작된 혼란은 꽤 오래 지속될 것 같이 보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와 크게 관련이 있는 일은 아니라서 그저 나와 스페이스 오블리비언에 피해가 가는 일만 없었으면 좋겠다. 혼란스럽고 머리 아픈 건 정말 질색이다. 지구에 있을 때도 무슨 일만 일어나면 아주 시끄러워지고 머리가 아팠다. 지금 이대로의 평화롭고 조용한 딱 좋다. 지금 이대로가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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