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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건축가 Jul 19. 2022

준공 접수

건축 소설: 내 집을 지어보고 싶습니다 # 23

게릿 리스 펠트의 슈뢰더 하우스. 네덜란드의 건축사조인 데 스틸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건물이다. 몬드리안의 추상화를 그대로 건축화시킨듯한 건물이다. 벽, 슬라브, 지붕 등의 요소들이 서로 미끄러지듯 따로 노는 듯한 구성이 인상적이다.




복잡한 상황이 정리되고 두 사람은 따로 주변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뭔가 조용한 상황에서 분위기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에서 지훈이 먼저 말을 꺼냈다.

“소장님. 갑작스럽게 제 감정을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까는 너무 열이 받아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요.”

“아니에요, 지훈 씨. 충분히 이해해요..”

“소장님.. 아니 민영 씨. 홧김에 한 말이긴 하지만.. 제 마음은 진심입니다. 처음 민영 씨를 만난 이후로 한 순간도 민영 씨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제가 지금은 좀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앞으로 어떻게든 민영 씨 행복하게 해 드릴 겁니다. 저 정말 민영 씨 좋아.. 아니, 사랑합니다.”


지훈은 어색하지만 힘겹게 자기 마음을 이야기했다. 지훈을 바라보는 민영은 침묵에 잠겼다. 사실 민영이 아무리 눈치가 없다고 하지만, 지훈이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일도 너무 바쁘고, 최근에는 준수까지 엮이는 바람에 그것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아니, 외면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민영도 지훈이 좋았다. 하지만, 남녀 사이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아직 없었다. 하지만, 지훈이 워낙 박력 있게 대시해 오자 민영은 일단 받아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민영이 워낙 착한 것도 있고..


“지훈 씨. 절 좋게 생각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동안 저한테 잘해준 것도 그런 이유가 있었네요.. 그래요. 저도 지훈 씨 좋게 생각해요. 아직은 좀 조심스럽지만.. 앞으로 잘해봐요 우리.”


민영의 대답을 들은 지훈은 뛸 듯이 기뻤다. 홧김에 한 말인데 이렇게 일이 잘 될 줄은 몰랐는데.


“정말요? 정말이죠? 소장님, 아니 민영 씨. 그럼 오늘부터 우리 사귀는 겁니다!”


민영은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수줍은 미소만 배시시 흘릴 뿐이었다.


그 뒤로 공사는 탄력이 붙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12월이 되자 내부 마감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화장실 타일과 주방 가구 등이 붙기 시작했다. 지훈과 민영은 현장에서도 자주 만나고, 휴일에 데이트도 하면서 급속히 가까워져 연인 같은 티가 나기 시작했다. 현장 사람들도 그런 사건을 다들 직접 본 지라 두 사람이 연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훈 씨, 생각보다 진도가 빠르네요. 지훈 씨가 감독을 잘해서 그런 것 같아요. 소질 있네요, 하하.”

“아니에요. 민영 씨가 잘 챙겨줘서 그렇죠.. 이제 이 삼주? 만 더 작업하면 거진 다 끝날 것 같은데요.”

“ 그럼 이제 준공 접수를 준비해야 하는데..”

“준공이라는 게.. 또 시청에 허락을 받아야 되는 건가요?”

“네, 건물이 허가 난 대로 합법적으로 지어졌는지 체크받는 거예요.”

“어휴, 이게 절차가 정말 많네요. 허가에, 착공신고에, 준공에..”

“원래 이름은 사용승인인데.. 아무튼 원래 이걸 받기 전에 건물을 쓰면 불법이에요. 작은 건물은 그냥 막 쓰는 경우도 많지만..”

“그래서 제가 해야 하는 게 뭐죠?”

“자재 리스트랑 각종 필증.. 이게 초보 현장소장님이 감당하기에 하실 게 정말 많을 거예요. 제가 최대한 챙겨 드리고, 반장님한테도 부탁드려야겠어요.”


목수 반장은 지금까지 현장에 남아서 각종 공사를 챙기고 있었다. 사실상 준 현장소장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었다.


“반장님, 설 소장님이 준공 서류를 챙겨야 된다는데요. 반장님 좀 해보셨어요?”

“내가 그런 서류까지 챙겨본 적은 없지. 옆에서 쳐다본 적은 있어도.”

“아시겠지만, 제가 뭐든지 다 처음이라 쉽지가 않네요. 좀 도와주셔야겠어요.”

“그래, 애인 하는 일 열심히 도와야지, 하하. 설계 소장님이랑 요즘 잘 돼가요?”


갑자기 놀림을 받은 지훈이 얼굴이 벌게진다.

“왜 그러세요, 반장님. 이제 시작인데..”

“하하, 농담이야. 아무튼 나이도 있는데 빨리 결혼해야지. 날짜 잡히면 빨리 말해줘요. 가서 국수도 먹고 그래야지.”

“아직 그런 정도가 아닌데요.. 아무튼 빨리 챙겨주세요..”

현장 사람들이 두 사람 사이를 놀리는 것은 거의 일상이 되고 있었다.


그 후로 몇 주가 흘렀다. 조경을 비롯한 거의 모든 공사가 완료되었고, 이제 준공(사용승인) 접수를 넣으면 될 듯싶었다. 민영은 수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설민영입니다.”

“아, 소장님. 공사 잘 되가죠?”

“예,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라.. 자잘한 것만 남았습니다. 사용승인 접수하면 될 것 같아서요.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아, 우리 지훈이랑 사귄다면서요. 하하. 얘기 들었어요. 어떻게, 잘 돼가요?”


민영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얼굴이 빨개졌다.

“아... 네. 그렇게 됐습니다.. 지훈 씨가 말하던가요?”

“괜찮아요. 전 좋은데요. 지훈이 그놈도 빨리 자리 잡아야지. 저희 아들 잘 부탁해요.”

수경이 갑자기 건축주에서 남자 친구 엄마의 포지션으로 바뀌게 되자 민영은 어떻게 말을 이어가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소장님, 지훈이랑 사귄다고 어색해하지 마시고, 예전처럼 편하게 대해 주세요. 전 소장님 정말 좋게 보고 있거든요. 제 아들 여자 친구로도 정말 좋다고 생각해요.”

“감사합니다, 대표님.. 제가 공사 구분 못한다고 보실까 봐 걱정이 돼서요.”

“그거야 지훈이 그놈이 좋다고 한 건데. 소장님이 무슨 잘못이에요. 괜찮으니까 아무 걱정 마세요.”


민영은 대화를 이어가기가 어색했지만, 일단 해야 할 말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그래서.. 다음 주 정도면 사용승인 접수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알겠어요. 그 뒤에 절차는 어떻게 되죠?”

“특검(특별검사원 건축사)이라는 건축사가 지정돼서 현장을 보고요. 관청에서는 서류 보고 이상 없는지 확인하고.. 그런 게 ok 되면 사용승인이 나는 겁니다.”

“특검.. 예전부터 자주 이야기했었죠. 공무원 대신 지역 건축사가 나와서 본다는 거죠?”


특검. 사용승인에서 가장 까다로운 절차고 긴장되는 과정이다. 민영은 예전부터 특검이 와서 잔뜩 지적하고 가서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너무 자주 들어서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다. 이 현장은 민영이 온전히 전담하는 첫 번째 현장인 데다가, 이 현장은 지방이라 특검이 더 까다로울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걱정만 한다고 해결될 일은 없었다. 일단 부딪혀 보는 수밖에.


‘그래, 쪼끄만 주택 뭐 신경 쓸 게 있겠어. 난간 높이 같은 것만 좀 챙기면 되겠지.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일단 넣어 보자.’


며칠 뒤 민영은 지훈에게 받은 서류를 정리해서 사용승인을 접수했다.

‘예전에 허가 내준 그 공무원이겠지.. 일단 전화를 넣어보자.’

잔뜩 긴장한 민영이 공무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허가 건축과 김미영입니다.”

“안녕하세요, 주무관님. 00구에 양수경 씨 단독주택 설계하는 설계사무손데요. 방금 사용승인 접수해서 연락드렸습니다.”


미경은 한창 처리할 일이 많았지만, 예전에 미남 건축주가 찾아왔던 단독주택 프로젝트가 퍼뜩 떠올랐다.


“아, 아... 예. 그 단독주택. 그거 다 지었나요?”

“네. 거의 다 돼서. 방금 접수했습니다.”

“서류 다 확인하셨죠? 다시 챙기지 않도록 잘 좀 봐주시고요. 벌써 접수하셨다니, 암튼 보고 말씀드릴게요. 특검 지정되면 연락 갈 겁니다.”


이 주무관은 역시 내가 전화하니까 바로 까칠해지는구나.. 원래 이런 사람이구나 싶은 민영이었다.


며칠 뒤 미경은 특검이 지정된 것을 보았다.


‘어? 강동준 건축사? 이 사람.. 예전에도 하도 진상을 부려서 유명한 사람인데.. 뇌물 받아먹고 난리 치다가 행정처분까지 받은 사람 아닌가? 아직도 특검을 하고 있네.. 지방 건축사협회에서 연줄, 인맥이 대단하다더니.. 아직도 붙어있구나. 그 여자 건축사, 고생깨나 하겠는데..’


민영은 앞으로 닥칠 시련은 모른 채 현장에 나와 특검이 지적할 만한 부분은 없는지 다시 한번 체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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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설계와 소통으로 건축주, 시공사와 함께하는 건축을 만들어갑니다.


OPEN STUDIO ARCHITECTURE

글 쓰는 건축가 김선동의 오픈 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김선동

Kim Seondong

대표 소장 / 건축사

Architect (KIRA)

M.010-2051-4980

EMAIL ratm820309@gmail.com

www.openstudioarch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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