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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건축가 Aug 17. 2022

특검

건축소설: 내 집을 지어보고 싶습니다 # 24

이미지 출처

https://brettdhlee.tistory.com/category/%EA%B1%B4%EC%B6%95%20Architecture/%EA%B1%B4%EC%B6%95%EA%B0%80%20Architect



루이스 바라간의 바라간 하우스. 멕시코 출신의 루이스 바라간은 원래 토목공학을 전공했지만 뒤늦게 건축에 심취해 르꼬르뷔제 등의 모더니즘 건축을 접하고 지역성과 모더니즘을 융합한 건축으로 유명해진다.  바라간 하우스는 1947년 설계한 뒤 그가 실제로 거주했고던 건물이다. 실내공간보다 더 큰 외부정원에는 수공간이 있고 곳곳에 빨강, 분홍, 파랑 등 선명한 색상을 사용해서 멕시코의 환경과 잘 어울리는 건축을 구현했다. 루이스 바라간은 조경에도 일가견이 있어 루이스 칸의 솔크 연구소 중정을 비울 것을 조언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띠리링~ 민영에게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양수경님 단독주택 신축공사 사용승인에 특별검사원 건축사가 선임되었습니다. 00구 강동준 건축사 전화 번호 000-0000...”


올게 왔구나. 이 사람이 우리 건물 특검이란 말이지.. 민영은 해야 할 말들을 생각해보고 통화 버튼을 힘겹게 눌렀다. 


“안녕하세요. 양수경 씨 단독주택 건물을 맡고 있는 설민영 건축사인데요..”

“아, 안녕하세요. 00구에 주택 하신 분이죠? 2층 짜리였나?”

“네, 맞습니다. 제가 따로 준비할 게 있을까요?”

“글쎄요.. 저희 동네 처음이시죠? 서울에서 내려와서 감리까지 하시던데..”

“네.. 그렇게 됐습니다.”

“그래도 지역이라는 게 있는데. 설계까진 그래도 괜찮은데, 감리까지 하심 좀 그렇죠. 저희도 먹고 살아야 되는데. 저희 지역에도 나이 많은 선배 건축사님들 많은데, 그분들 어떻게 먹고 살라고 그러세요.”

시작부터 텃세를 부리는 건가.. 민영은 예감이 좋지 않았다.

“네.. 건축주님이 워낙 설계한 사람이 감리까지 봐주셨으면 하셔서.. 그렇게 됐습니다.”

“그래도 잘 설득해 주셔야죠. 동종업계 사람들이 서로 도와주지 않으면 저희 다 죽는겁니다. 건축사님도 나이 안들 것 같죠? 나이 먹는 거 금방이에요. 서로 안도와주면 나중에 전부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 거에요.”

“...”

민영은 대꾸할 말을 찾기 어려워 그냥 입을 다물고 말았다.


“아무튼. 그냥 쬐그만 주택이죠? 따로 도면을 미리 받을 건 없을 것 같고. 현장 가서 보면 될 것 같은데. 내일 괜찮으세요?”

“예, 저는 언제든지 괜찮습니다.”

“그래요. 내일 아침 10시 쯤 뵙죠 뭐. 도면이랑 사용승인 검사 조서 좀 출력해서 가지고 와주세요.”

“제가 따로 모시러 갈 필요는 없을까요?”

“됐어요. 제 사무실이 훨씬 가까운데 뭘. 아무튼 내일 봅시다.”


특검을 차로 모시러 간다는 얘길 자주 들어서 그런 얘길 해봤지만 특검의 반응이 쎄하다. 예감이 많이 좋지 않지만 할 수 있는 준비를 하는 수 밖에 없다. 일단 지훈에게 전화를 해본다. 


“지훈씨, 특검 정해졌어요. 내일 오전 10시에 온다네요. 현장정리는 잘 되있죠?”

“그럼요. 며칠 전부터 완전 깨끗하게 해놨어요. 그 사람이 뭐 책잡을 거라도 있대요?”

“아직 현장 안봤으니까 그런 소린 안하는데.. 왜 서울 사람이 여기까지 와서 자기네 일 뺏어가냐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네요..”

“참 나. 쬐그만 나라에서 니 땅 내 땅이 어딨다고 그러지. 왜 인터넷 구매도 하지 말라고 하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네요. 아무튼 뭐가 됐든 그 사람이 도장 찍어줘야 건물 쓸 수 있다는 거죠?”

“네 맞아요.”

“알았어요. 내일 엄마는 바빠서 오기 힘들다고 하시니까. 저랑 민영씨, 반장님 세 사람이 상대해야 겠네요.”


다음 날이 되었다. 9시 30분부터 민영과 일행은 현장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특히 민영은 제일 긴장한 눈치다.


“소장님, 뭘 그리 안절부절 해요. 이만한 주택에 볼 거 뭐 있다고.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목수반장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주변에서 워낙 험한 말을 많이 들어가지고.. 걱정이 많이 되네요. 괜찮겠죠?”

“저희 뭐 어긴 거 없잖아요. 떳떳한데 뭘 걱정이에요..”


그 순간, 멀리서 두리번거리며 어떤 남자가 다가왔다. 큰 가방을 짊어진 폼이 특검이 맞는 듯 하다. 민영이 쭈뼛거리며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특검.. 강동준 건축사님이시죠?”

“아, 네. 맞습니다. 이 건물인가 보죠? 아이구, 설계 잘 하셨네. 작품을 하셨네요 아주.”

특검은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알 수 없는 말을 건넸다.

“네, 아무래도 처음 하는 건물이다 보니..”

“아, 이 건물이 처음 하신 거에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하셨구만.”


몇 마디 덕담이 오가고 본격적인 현장검수가 시작됐다. 특검은 입구에서부터 심각한 표정으로 여기 저기를 훑어보고 있었다. 민영은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특검 옆을 수행(?)하며 따라갔다. 지훈과 목수반장은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음.. 이게.. 음.. 이래도 되나?”

“뭐, 뭐 땜에 그러시죠?”

“아, 일단 됐어요. 이 정도는. 아.. 아니에요. 일단 넘어갑시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이르러 특검은 줄자를 꺼냈다.


“일단 계단 폭이.. 내측이 1200 나와야 되는 거 아시죠?”

“아 네.. 그런데 저희 건물 면적이 200 헤베가 안넘어서..”

“아이고, 그건 법이고. 사람 다닐 때 1200이 당연히 나와야죠. 두 사람 왔다 갔다 지나가야 될 거 아니에요. 법만 가지고 건물 쓸 수 있겠어요?”

법까지 무시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니 민영은 말문이 막혔다. 가뜩이나 잔뜩 얼어있던 민영은 대꾸를 못하고 말았다.


“음.. 난간 안으로 재니까 5센티 정도 모자라네.. 이걸 어쩌나.. 난간 높이도 900이 안되고..”

“건축사님. 이 정도는 어떻게 안 될까요? 200제곱미터도 안되는 건물인데요..”

민영은 용기를 내서 간신히 말을 건넸다.

“일단 봅시다. 다른 거 다 보고..”


2층 테라스로 올라간 특검은 또다시 난간 쪽으로 다가갔다. 유심히 살피더니 또다시 줄자로 재보았다.

‘외부난간이야 당연히 1200이지. 여기서 시비걸 게 있겠어?’


“이 턱은 뭐죠?”

“방수를 감아 올려야 해서 턱을 좀 만들고 그 위에 투시형 난간을 달았는데요.. 뭐가 문제가 있을까요?”

“사람이 이 턱 위에 올라설 수가 있잖아요. 그럼 1200이 안되는 건데..”

“네?”


하다 하다 이렇게 시비를 거는 건가. 민영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문제가 되죠. 어린 아이가 이 위에 올라 타서 흔들고 장난친다고 생각해보세요. 위험할 거 아닙니까. 떨어지면 어떻게 하실 거에요.”

“그건..”

“아무튼 이것도 그냥 넘어갈 순 없습니다. 일단 다른 것도 좀 봅시다.”


지적사항이 하나 하나 쌓여갈수록 민영의 얼굴은 점점 새파랗게 질리고 있었다.


그러고도 특검은 한참동안 건물을 보고 또 보았다. 코딱지만한 건물에 볼 게 뭐가 있다고.. 민영은 긴장이 지나쳐 몸이 쪼그라들 지경이었다.


‘이제 제발 좀 그만 보지.. 정말 죽겠네 ㅠㅜ’


그렇게 민영의 정신이 나갈 때쯤 특검은 이윽고 말을 꺼냈다.


“이 정도면 된 것 같네요. 일단 계단이랑 외부 난간인데.. 이 두 가지를 어쩐다..”

어쩐다니? 이 정도면 경미한 것 아닌가? 원래는 구청에 들어가서 의견서를 제출하고 끝나는 절차다.

“왜 그러시죠?”

“보완사항이 너무 커서 도저히 의견서를 못써드리겠네요. 제대로 수정된 걸 봐야 쓸 수 있겠어요. 이대로 넘어가는 건 좀 아닌 것 같고.. 며칠 안에 보완된 거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주세요. 그걸 봐야 의견 적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또다시 민영이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의견을 못 써 주시겠다니.. 그게 무슨..”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수정된 걸 봐야 의견 써 드릴 수 있다는 거고요. 제 전화번호 아시죠? 그리로 사진 보내주세요. 아님 명함에 써 있는 메일로 보내주시던가.. 아무튼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대로 가시면..”

“그러니까 빨리 수정해서 보내주시고 연락주시라니까요. 저도 바빠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러고서 특검은 휑하니 사라져버렸다. 민영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대문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제서야 멀리서 지훈과 목수반장이 다가왔다. 


“진짜 오래 걸리네. 민영씨, 어땠어요? 괜찮았어요?”

“..어떡해요 지훈씨.. 망했어요..”

“망하다니, 왜요? 무슨 일이에요?”

민영은 그 자리에 서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서 있었다. 지훈과 목수반장은 당황해서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고 자초지종을 들은 지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라구요?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에요? 그런 걸 지적 했다구요? 그게 말이 되요?”

“말이 안되죠.. 근데 특검 말은 법이나 마찬가지라.. 그걸 보완 안하면 도장을 안찍어주겠다는 거에요..”

“이건 진짜 갑의 횡폰데요. 와.. 참 나 살다 살다 별 일을 다 보겠네..”

목수반장이 지훈을 말리며 말했다.

“강사장, 일단 진정하고.. 이걸 어떻게 수습할지를 생각해야지. 나 참. 딴 건 모르겠고 계단 폭 5센티를 어떻게 확보하지?”

“그런 부당한 요구를 받아줘야 되는 거에요?”

“일단 넘어가야 되니까.. 아무리 치사하고 아니꼬워도 어쩌겠어. 그건 그렇고, 설소장님 봉투는 준거야?”

“아뇨.. 분위기도 그렇고.. 못 줬어요..”

일종의 뇌물로 준비한 봉투를 민영이 가지고 있었다. 분위기 봐서 전달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순진한 민영이 차마 그걸 전달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이고. 우리 소장님이 그것도 못 줬구만. 그것도 안주니까 더 분위기가 안 좋아진거네. 하.. 참. 아무튼 이걸 어쩐다..”

“반장님은 뭔가 대책이 있으세요?”

“일단 내부 수장 석고보드 다 뜯어야지. 한쪽 다 뜯어내고 벽지 바르면 오 센티 정도는 나올거요. 거기에 난간도 벽 쪽으로 더 바짝 붙이고. 난간 높이야 높여 달면 그만이고.”

“그럼 내부 공사 해 놓은거 다 상하잖아요?”

“그게 문제야? 사용승인이 떨어져야 건물을 쓸 거 아냐. 사진 찍어 보내면 된다니까 그 쪽만 잘 뜯어보지 뭐. 어차피 다시 공사해야 되는 거니까. 그리고 외부 난간은..”

“외부 난간은 어쩌죠?”

“사람 밟고 올라서는 걸 시비 거니까 앞을 렉산(폴리카보네이트. 플라스틱의 일종) 같은 걸로 막죠. 그럼 사람이 턱을 못 밟을 테니까. 일단 보기 싫어도 그렇게 하고 넘어간 다음 다시 뗍시다. 어쩔 수 없으니까.”


목수 반장의 대책을 듣고 민영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단 다른 방법이 없었다. 특검이 말하는 대로 얼른 수습하고 보는 수 밖에..  







열린 설계와 소통으로 건축주, 시공사와 함께하는 건축을 만들어갑니다.


OPEN STUDIO ARCHITECTURE

글 쓰는 건축가 김선동의 오픈 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김선동

Kim Seondong

대표 소장 / 건축사

Architect (KIRA)

M.010-2051-4980

EMAIL ratm820309@gmail.com

www.openstudioarch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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