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건축가 Sep 22. 2022

수습 2

건축소설: 내 집을 지어보고 싶습니다 # 25

 


까사 바트요 - 안토니 가우디

가우디의 또 다른 주택 작품. 당대 건축가들의 경연장이라 할 수 있는 그라시아 거리에 위치해있다. 마치 바다를 연상시키는 각종 요소들이 건물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동물의 뼈를 연상시키는 기둥과 발코니 난간, 용의 비늘을 연상시키는 지붕 등등.. 이례적으로 신축이 아니고 파사드와 주요 부분을 고친 리모델링 작업이었다. 추파츕스 회사가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미영(담당 공무원)은 오늘도 아무 생각 없이 출근해서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오늘도 밀려드는 민원 전화들은 정말 짜증이 난다.


‘아.. 오늘도 전화 진짜 많이 오네. 하루가 너무 힘들다. 휴가는 대체 언제 쓸 수 있나.. 남들 다 부러워하는 공무원이라지만 정말 그만두고 싶다..’


“어이, 김 주무관. 바쁜가? 어제 말한 보고서 오늘까지 끝내야 돼. 알지?”

지나가면서 툭 던지는 팀장의 한마디에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진다.

“예.. 예. 알아요. 오늘 안에 해놓을게요.”

쏟아지는 업무에 정신이 나갈 것 같다. 바람이라도 쐬자 하며 자판기 커피 한 잔 들고 구청 앞 작은 벤치로 나선다. 이럴 때 데리고 갈 동료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마침 친한 사람들은 모두 외근 나가고 없다.


모처럼 여유를 가지고 벤치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고 있는데, 저 멀리서 웬 남자가 다가온다. 훤칠하게 잘 생긴 얼굴. 아, 전에 그 주택 건축주 아냐? 그 주택 사용승인 들어왔었는데, 여긴 웬일이지?


“어, 전에 저 보시지 않으셨어요? 00동 단독주택 건축주인데요. 저 기억하시죠?”

지훈이 미영을 알아보며 반갑게 물었다. 민영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피어오르며 얼굴이 빨개졌다.


“아.. 그럼요. 기억합니다. 요새 사용승인 진행 중이시죠?”

“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구청 찾아왔는데..  마침 밖에 계셨네요. 부서까지 찾아갈 필요가 없어졌으니 잘 됐네요.”


미영을 만난 지훈은 자초지종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특검이라는 게 원래 이런가요? 거의 막무가내로.. 합법적으로 해 놓은 것도 시비를 거는 거예요. 이래도 되는 건가요?”

“아.. 좀 까다롭게 보는 분들도 있긴 한데.. 조금 심하긴 했네요. 안 그래도 왜 이렇게 처리가 안 되나 좀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어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구청에서 좀 나서서 해결해주셔야 되는 거 아닌가요?”

“이게, 사용승인 검사는 그분들의 고유 영역이라.. 저희가 막 나서기도 쉽지가 않네요..”

“그럼 저희는 그 사람들이 도장 찍어줄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되는 건가요? 저희 어머니 집에 못 들어오셔서 난리예요.”


지훈의 하소연을 듣는 미영은 난감해졌다.

‘아.. 그 특검 뭔가 사고 칠 거 같긴 하더니.. 결국 이렇게 땡깡을 부리고 있었구나. 섣불리 나섰다간 나한테 책임이 돌아올 거고.. 이럴 땐 두 분이 알아서 하라고 하고 그냥 물러서는 게 상책인데..’


“주무관님이 어떻게 좀 해주세요. 전화해서 통과시켜 달라고 해주시던가요. 이렇게 선량한 시민들이 피해를 입도록 놔두셔도 되나요?”

지훈의 언성이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미영은 나름대로 큰 결심을 했다.

‘그래. 내가 도와줘서 어떻게든 해결하도록 해보자. 그럼 이 남자도 나한테 관심을 좀 가져 줄지도 몰라..

“알겠습니다. 제가 나서서 통과되도록 좀 해보겠습니다. 기다려보세요..”

“네? 어떻게 한다는 이야기시죠?”

“그것까진 아실 필요 없고.. 아무튼 너무 걱정마시구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시면 될 것 같아요.”

“네.. 아무튼 힘써 주신다는 거죠? 그럼 주무관님만 믿고 가보겠습니다.”


주무관과 말이 통하지 않으면 특검 사무실로 찾아가려고 했던 지훈은 일단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주무관이 뭔가 힘을 써줄 것 같군. 일단 좀 기다려보자. 여기서 해결이 안 되면 특검을 찾아가던지.. 하다 못해 시장을 찾아가 탄원을 하던지.’


자리로 돌아온 미영은 책상 위 서류함을 뒤적거린다. 그러다 예전 서류 하나를 발견하고 확인한 뒤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동준은 00시에서 잔뼈가 굵은 건축가다. 벌써 30년 넘게 이 지방에서 이 일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자격증만 있어도 일이 많아서 돈 벌기가 쉬웠는데, 요새는 지역 개발도 많이 줄어서 일거리가 뜸해졌다. 나이가 드니 직접 도면 그리기도 힘들고, 공사 감리나 사용승인 특검 등 여러 가지 다른 일들에도 손을 뻗기 시작해서 이제는 그것이 주 업무가 되어버렸다. 동준은 특히 다른 지역 건축사들이 00시에 들어와서 설계, 감리를 하는 것이 눈에 거슬렸다. 가뜩이나 일도 없는 판에 다른 지역 일까지 굳이 뺏아서 해야 하는 건가? 그런 게 걸릴 때마다 동준은 말 그대로 ‘본때’를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용승인 특검을 하면 뒤로 받는 촌지도 꽤나 쏠쏠했다. 그런 것을 좀 심하게 하다가 시비가 크게 걸려서 몇 년 전에는 행정처분을 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버릇을 못 고치고 있었고, 이번에 걸린 단독주택도 서울 건축사에게 본때를 보여주리라 하고 잔뜩 벼르고 있었다.


‘이 정도로 넘어가면 안 돼. 한 번 더 찾아오게 만들던지, 아무튼 싹싹 빌도록 만들어야지. 이 정도로 넘어가면 날 만만하게 생각할 테니까. 저번에 보낸 뒤로 연락이 없는데.. 급해지면 찾아오던지 하겠지. 좀 기다려 보자.’    


띠리링~ 동준의 전화기가 울린다. 번호를 보니 구청인 것 같다. 구청에서 나한테 무슨 일이지?


“여보세요. 강동준 건축사입니다.”

“안녕하세요. 저 00구 건축가 김미영 주무관입니다.”

건축 주무관? 주무관이 나한테 무슨 일이지. 특검이 하는 일에 주무관이 나설 일이 별로 없는데..


“아, 네.. 안녕하세요 주무관님. 웬일로 저한테 직접.. 무슨 일이시죠?”

“전에 접수되었던 양수경 씨 단독주택 사용승인 건이 처리가 안 되고 있어서 무슨 일인가 해서요.”

“아 그거요.. 현장에서 좀 경미하게 수정할 것들이 있어서.. 그거 지시하고 수정되는 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구청에 건축주님이 직접 다녀가셨어요. 합법적으로 다 해놨는데 특검이 억지를 부려서 사용승인 못하고 있다구요. 제가 듣기에도 다 잘해놓으신 것 같던데, 왜 안 해주시는 거예요?”

“그게..  제가 볼 땐 좀 문제가 있어서요. 그 사람이야 건물 주인이니까 다 괜찮다고 하겠죠. 건축주 말 믿고 사용승인 내줄 순 없는 거 아닙니까.”

“건축주가 사진 다 보여주던데요. 건축사님 지적 사항도 이야기하시고. 별 거 아니던데, 괜한 시비 걸고 계신 거 아니에요?”


이 사람이 건축주 편들면서 나한테 시비 거는 건가. 내가 잘못했다는 거야? 동준은 강하게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보세요 주무관님. 말씀이 너무 심하십니다. 사용승인 조사는 특검 고유권한입니다. 주무관님이 간섭하실 일이 아닌데요. 조사 의견은 제가 판단해서 내는 겁니다. 주무관님이 상관하실 일이 아니라구요.”

“그건 아는데요. 좀 심해 보여서 그런 거예요. 쬐그만 주택 뭐가 있다고 그러세요. 난간 높이 다 맞추고 했는데도 안 내주시면 어떡해요.”

“하.. 그런 판단도 다 제가 알아서 하는 겁니다. 주무관님은 가만히 계십시오.”

미영은 이 사람이 말로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는 수 없지. 비장의 카드를 꺼내는 수밖에..


“저기요. 건축사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예전에 이런 거 때문에 행정처분 받은 거 잊어버리셨어요?”

“네? 뭐라구요?”

“이렇게 억지 쓰시다가 건축주가 민원 넣고 난리 나서 행정처분 나갔잖아요. 건축주가 시청 와서 드러눕고 시장님 멱살 잡고..”

“아.. 그 얘긴 좀..”

“그러니까 잘 좀 처리해달라는 거예요. 그리고 이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요. 건축사님 면허 무단으로 대여해주신 적 있죠?”

“예..? 그건..”


동준은 뜨끔했다. 예전에 다른 지역에 있는 아는 사람이 요청해서 면허를 빌려준 적이 있긴 했다. 일이 없다 보니 그런 일까지 하게 된 건데, 그걸 이 사람이 어떻게 알았지?

“작년에 다른 지역에서 의심된다고 공문 날라온 적 있었는데. 그래도 저희 지역에서 오래 일하시고 하신 분이니까 그냥 눈 감고 넘어가드린 거예요. 안 그래도 힘드신 거 같아서.”

“...”

“제가 그건 눈 감아 드릴게요. 그러니까 이번 거 빨리 처리해주세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음.. 하지만..”

“해주시겠어요, 못해주시겠어요? 못하시겠다면 또 행정처분 나가야 됩니다.”

“으.. 알겠습니다..”

동준은 마지못해 알았다고 대답했다. 또 행정처분을 받거나 하면 정말 길거리로 나앉아야 할 판이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네, 그럼 그렇게 알고 끊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전화를 끊고 미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아무튼 이 건축사도 진짜 심하긴 하네. 억지도 정도껏 부려야지..’


민영은 그 뒤로 하염없이 세움터 화면만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나, 저제나 언제 처리가 되려나.. 그러던 어느 날, 화면에 갑자기 ‘완료’가 떴다. 와! 처리가 됐다! 민영은 순간적으로 눈물이 날 뻔했다. 


“지훈 씨, 저희 처리됐어요! 사용승인 났어요!”

“그래요? 와 다행이네. 잘 됐다. 확실히 주무관 찾아갔더니 효과가 있네요.”

“그런 건가.. 아무튼 다행이에요. 고생했어요, 지훈 씨.”

“제가 뭐 한 게 있나요. 민영 씨가 다 한 거지. 고생 많았어요. 엄마한테 빨리 알려줘야겠어요.”






열린 설계와 소통으로 건축주, 시공사와 함께하는 건축을 만들어갑니다.


OPEN STUDIO ARCHITECTURE

글 쓰는 건축가 김선동의 오픈 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김선동

Kim Seondong

대표 소장 / 건축사

Architect (KIRA)

M.010-2051-4980

EMAIL ratm820309@gmail.com

www.openstudioarchi.com

                    

이전 25화 수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