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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건축가 Oct 09. 2022

거절

건축소설: 내 집을 지어보고 싶습니다 # 27

수졸당 - 승효상

대한민국의 대표 건축가라고 할 수 있는 승효상의 수졸당이다. 이 주택을 시작으로 승효상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의 집으로도 유명하다. 모더니즘의 어휘를 사용하면서도 한옥의 공간들을 현대적으로 잘 구현해냈다. 내외부 공간이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복잡하면서도 살기는 불편할 수도 있는 집이다. 전체 건물의 모습보다 중정을 바라보는 위의 사진이 가장 유명하다. 




“어머니, 저희 사용승인 났어요. 다행히 잘 해결됐네요.”

“그래, 고생 많았다. 이제 진짜 이사 준비 해야겠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던 지훈은 담당 주무관이 생각났다. 이렇게 갑자기 해결된 건 분명히 그 주무관이 힘을 써줬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 주무관, 말만 한게 아니고 진짜 힘을 좀 썼나보네. 고맙긴 하다. 전화라도 한번 해볼까..’

“안녕하세요, 주무관님. 저 용인 주택 건축준데요.”

앗, 그 잘생긴 건축주다. 사용승인 났다고 전화한 걸까? 미영은 갑자기 가슴이 떨렸다.


“네~ 안녕하세요. 어쩐 일이세요?”

미영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용승인 나가지구요. 한 달 넘게 끌리던 건데, 주무관님 찾아뵈니까 바로 해결됐어요. 뭔가 하긴 하셨나보네요?”

“아, 네.. 특검 건축사한테 알아듣도록 잘 이야기 했습니다. 찬찬히 설명하니까 수긍 하더라구요..”

구구절절 다 설명할 필요는 없으니, 미영은 적당히 둘러서 이야기했다.

“그랬군요. 아무튼 감사드립니다. 고맙다고 전화 드렸어요.”


미영은 여기서 뭔가 승부를 걸어야 되겠다고 직감했다. 지금 이 건축주가 나한테 전화를 건 것은 신의 계시 같은 것이다. 여기서 통화를 끊어버리면 이 건축주.. 남자와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다. 미영은 나름대로 큰 결심을 하고 말을 이어갔다.


“저.. 건축주님. 혹시 내일 오전에 시간 괜찮으신가요?”

“네? 저요? 저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지훈은 갑자기 주무관이 시간이 있냐고 묻자 적잖이 당황했다.

“네.. 제가 약간 드릴 말씀이 있어서.. 전화로 말씀드리기가 좀 그래서요. 혹시 방문해주실 수 있나 해서요.”

“뭐 땜에 그러시죠? 제가 직접 가서 해야 할 행정처리 같은 게 있을까요?”

“사용승인 이후에 행정 처리 같은 게 살짝 복잡해서.. 취득세 같은 것도 납부하셔야 되구요. 혹시 시간 되시면 제가 직접 안내해드리고 싶어서요...”


그런 걸 안내해주려고 나보고 직접 들어오라고? 지훈은 적잖이 황당했지만, 일단 사용승인을 잘 처리해준 은인이기 때문에 바로 싫은 티를 낼 순 없었다. 방금 전까지 감사하다고 하다가, 그런 걸로 들어오라고 한다고 화를 낼 수도 없지 않은가?


“아.. 제가 들어갈 필요까지 있을까 싶습니다만.. 일단 알겠습니다. 오전에 크게 일도 없으니 한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내일 뵐게요..”


미영은 전화를 끊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핑계로 남자를 불러들이다니.. 자기가 생각해도 황당하긴 하다. 하지만 어쩌랴, 이런 핑계라도 대야 만날 수 있을 게 아닌가. 


‘이 남자를 불러들이는 것 까진 성공했어. 이제 어떡하지... 음 그래. 이 남자에게 줄 선물이라도 하나 사야겠어. 뭔가 부담이 안 될만한 걸로..’


지훈은 민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만한 일로 주무관이 들어오라고 하는 게 맞는 건가 싶다.


“민영씨, 전데요. 주무관이 행정절차 안내해주겠다고 저보고 들어오라네요. 보통 이런 일이 있나요?”

“네? 주무관이요? 건축주보고 들어오라고 한다구요?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일이네요. 보통 주무관들 민원인 만나는 거 정말 싫어해요. 최대한 안 만나려고 하는데..”

“그러니까요. 제가 생각해도 그런데.. 그래도 사용승인 잘 처리해준 게 고맙기도 해서 안 들어간다고 할 수도 없었어요.”

“그러네요. 사실 사용승인 끝나면 거의 끝난 거라 남은 절차가 별 게 없는데.. 근생도 아니고 영업신고를 할 필요도 없고. 아무튼 잘 다녀오세요, 지훈씨.”


“미영씨, 오늘 무슨 날이야? 엄청 잘 차려입고 왔네?”

지나가던 팀장이 미영에게 한마디 했다. 안 그래도 다른 팀원들도 미영이 뭔가 잘 차려입고 왔다는 것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아니에요.. 그냥 입던 대로 입고 온 건데요..”

“아닌데.. 전혀 못 보던 옷인데. 화장도 그렇고. 누구 만나러 가나?”

“아이 참, 자꾸 왜 그러세요! 저 바쁜데 자꾸 쓸데없는 말 시키지 마세요!”

“아, 알았어, 알았어. 화까지 낼 필욘 없잖아. 그래, 수고하고.”


오늘을 위해서 안 입던 옷까지 입고 나온 미영은 안 그래도 불편한데 팀장까지 눈치를 주자 심기가 불편해졌다. 그 남자가 언제 오려나 잔뜩 긴장하고 있던 참이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밤새도록 고민해서 머리 속이 새하얘질 지경이다.


‘으..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불러는 놨는데. 우선 행정 절차에 대해 최대한 자세히 이야기해주자. 그리고 나서 본론을 꺼내야 하니까..’


밖에서 서성이던 지훈이 건축과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조금 헷갈리기는 하는데, 예전에도 와봤던 곳이라 금방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주무관님, 안녕하세요? 오라하셔서 오긴 했습니다만.. 따로 하실 말씀이 있으세요?”

“아.. 안녕하세요. 오셨네요.. 이리로 앉으세요.”


미영은 속으로는 바짝 긴장했지만 최대한 밝게 웃으면서 지훈을 맞이했다.

“이게.. 사용 승인 처리가 됐다고 해도 절차가 다 끝난 게 아니라서.. 좀 자세히 설명드리고 싶어서요..”

미영은 두꺼운 행정 매뉴얼 책을 꺼내서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훈은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차츰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뭐야, 별거 아니잖아. 당연히 해야 할 것들 아냐? 고작 이런 거 설명하라고 들어오라고 한 건가..?’


한참동안 설명을 들은 지훈이 입을 열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주무관님. 생각보단 할 게 많긴 하네요. 하지만 대부분 건축사랑 시공사가 알아서 해줄 것 같고.. 아. 저희는 시공사가 저이긴 합니다만. 하하.”

“직영공사긴 한데.. 설마 공사를 직접 하신 거에요?”

“네. 제가 직접 업자들 수배해서 공사 했어요. 정말 죽을 뻔했네요.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지훈은 민영에게서 직영 공사에서 시공사가 공사하도록 하는 건 엄밀히 말해서 불법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그런 내용은 말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 정말 대단하세요. 정말 고생하셨네요. 가끔 그런 분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직접 본 건 첨이에요..”

“아무튼, 사용승인도 신경 많이 써주시고, 이렇게 따로 설명까지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제 하실 말씀 다 하신건가요?”


아니다. 결정적으로 선물을 줘야 한다. 어제 백화점에 가서 남자에게 어울릴만한 손목시계를 급하게 샀다. 이걸 어떻게 자연스럽게 건네야 하나 밤새도록 고민했던 터였다.

“아.. 건축주님. 제가 좀 드릴 게 있는데..”

“네? 저한테요? 뭘 주시려고..”

여기까지 들어온 것도 당황스러운데, 뭘 또 준다고 하자 지훈은 정말 놀랐다.

“여기서는 좀 그렇고.. 혹시 시간 좀 괜찮으세요? 1층에 카페가 하나 있는데.. 커피 한잔 하고 가셔도 괜찮으세요..?”

“아, 네.. 전 괜찮습니다만..”


억지로 이 여자 주무관에게 이끌려 커피까지 먹게 된 지훈의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뭘 또 준다는 거야.. 나 참.’


지훈과 함께 1층으로 내려가는 미영의 머리 속도 복잡하긴 마찬가지였다.

‘이게 과연 잘 하는 짓일까.. 아냐. 여기서 뭔가 안 해보고 그냥 보낼 순 없어. 마음을 굳게 먹자, 미영아.’


두 사람이 커피 한잔씩 시켜놓고 마주 앉았다. 지훈이 말을 꺼냈다.

“저한테 뭘 주신다구요? 제가 받을 게 없는데.. 뭔가요?”


미영은 주춤주춤 망설이고 망설이다 겨우 겨우 말을 꺼냈다.

“이거.. 제가 개인적으로 준비한건데.. 공사하고 사용승인 하고 하시느라고 고생 많으셨을 것 같아서.. 입주 축하하는 의미로 가볍게 하나 사봤어요. 부담 안 가지셨으면 좋겠는데..”


미영이 작은 쇼핑백 하나 내밀었다. 전형적인 선물 포장이었다. 


지훈은 이제야 미영이 해왔던 행동이 모두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 나를 남자로 좋게 생각해서 이런 일을 벌여왔던 거구나.. 그걸 눈치 못채고 있었구나.


한참을 생각하던 지훈이 이윽고 말을 꺼냈다.

“아.. 참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하하. 주무관님이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이제야 이해가 좀 되네요. 어떤 마음으로 저를 부르셨는지 대충 알 것 같습니다. 제가 좀 둔해서.. 눈치가 좀 없었네요.”

“...”

“저를 좋게 생각해주시고 일처리도 잘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런 선물까지 준비해주신 것도 정말 감사 드려요.. 근데 죄송하지만.. 제가 좋아하고 사귀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영은 순간 머리에 망치를 맞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퍼득 허가 때 이 남자와 같이 들어왔던 여자 건축사가 생각났다.


“아.. 설마 그..”

“네. 맞습니다. 그 여자 건축사랑 사귀고 있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구요. 조만간 결혼하자고 할 생각입니다.”


“아..”

“이런 말씀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아무튼 마음만은 잘 받겠습니다. 주무관님도 좋은 분 꼭 만나시길 바라겠습니다. 전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할 말을 마친 지훈이 미영에게 목례를 하고 카페를 빠져 나갔다. 혼자 남은 미영은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남겨진 선물을 보며 속으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어째서 좋은 남자들은 벌써 다 임자가 있는 걸까. 나한테도 남자가 오긴 할까..’


구청을 나서는 지훈에게 민영의 전화가 왔다.

“지훈씨, 구청 다녀왔어요? 주무관이 뭐래요?”

“아, 그냥 간단한 행정 절차 알려줬어요. 굳이 들어올 필요 없는 것 같은데 오라 가라 하고.. 이 사람들 좀 이상한 것 같아요.”

“그쵸? 부를 이유가 전혀 없는데..”

“네. 그래서 뭐라 한마디 했어요. 사람 부를 시간에 일이나 더 하라구요. 이따 봐요, 민영씨.”


지훈은 오늘 있었던 일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게 민영과 미영을 위한 배려가 아닐까 싶었다. 






열린 설계와 소통으로 건축주, 시공사와 함께하는 건축을 만들어갑니다.


OPEN STUDIO ARCHITECTURE

글 쓰는 건축가 김선동의 오픈 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김선동

Kim Seondong

대표 소장 / 건축사

Architect (KIRA)

M.010-2051-4980

EMAIL ratm820309@gmail.com

www.openstudioarch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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