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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건축가 Oct 14. 2022

사진촬영

건축소설: 내 집을 지어보고 싶습니다 # 28

 

수백당 - 승효상

승효상의 또 다른 주택 작업. 남양주의 기가 막힌 풍경을 앞에 두고 분동형 주택을 만들어냈다. 뒤쪽은 하나의 복도로 이어져 있지만 앞쪽은 방마다 작은 메스로 분동시키고 그 사이에 외부 공간을 삽입시켰다. 어반 보이드 - 웰콤시티의 주택 버젼이라고 할 만하다. 외부 환경, 조망과 건축을 조화시킨 능력이 탁월하다. 


이미지 출처:https://www.c3korea.net/subaekdang-by-iroje/



민영과 준수가 예전에 일했던 최강식 건축가 사무실. 가히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사무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기업, 부자들만 상대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설계비도 몇 억 대를 호가한다는 소문이다. 최강식은 근대건축의 거장 이정희 선생님에게 사사했고, 얼마 전 작고한 홍준성 건축가와 같이 일한 사이로도 유명하다.  


고급스런 인테리어와 깨끗한 책상, 각종 감각적인 소품들이 놓여있는 최강식의 사무실. 오늘도 일찍부터 출근한 강식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서류들을 살펴보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요새 일이 줄어서 큰일이네. 사무실 유지비는 계속 나가야 하는데. 확실히 경기가 안 좋아지고 물가가 너무 뛰어서 일이 확 줄었어. 여윳돈이 제법 있긴 하지만.. 아무튼 조금씩 대책을 마련해 놓아야 되겠어..’


부르르.. 갑자기 전화가 왔다. 이게 누구야. 몇 년 전에 퇴사해서 독립한 설민영이다. 준수 그놈이랑 결혼한다고 했다가 잘 안되었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그 뒤로는 어떻게 사는지 전혀 소식을 듣지 못해 궁금하던 차였다.


“이게 누구야. 설민영 건축가님 아니야. 하하. 그래, 어떻게 잘 지냈어?”

“안녕하세요.. 소장님. 진짜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시죠?”

“나야 뭐 항상 똑같지. 나보다는 니가 걱정인데.. 어떻게 설 소장님 사무실 운영 잘 하고 있어?”

“소장님이 저보고 소장이라고 하니까 정말 민망하네요..”

“왜 그래, 사무실 차렸으면 당연히 소장이지. 언제까지 팀장, 실장이라고 부를 순 없잖아.”

“그렇긴 하죠.. 아무튼 어떻게든 해나가고 있어요. 얼마 전에 주택 한 채 다 지었고.. 아 참. 현상이 하나 됐어요. 쬐그만 거긴 하지만. 주민 복지 센터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아, 그래? 진짜 잘됐다. 대단한데, 벌써 현상 당선도 다 되고..”

“아는 언니랑 몇 번 만에 겨우 된 거에요. 한 세 네 번 떨어진 거 같아요..”

“그래, 고생 많았네. 아무튼 잘 되간다니 다행이다. 언제 한번 얼굴 봐야 되는데.”

“네. 안 그래도 찾아 뵈려고 했어요. 부탁 드릴 것도 있고, 드릴 것도 있고..”

“드릴 거? 선물 같은 거 안 줘도 되는데..”

“아뇨.. 사실 제가 결혼을 하게 돼서.. 청첩장을 드려야 돼서요..”

“아, 그래? 이거 뭐, 설 소장님 경사가 겹쳤네. 민영이가 결혼을 한다구? 진짜? 누구랑?”

“그게.. 제가 한 주택 건축주 아드님이랑 사귀게 돼서.. 그 분이랑 하게 됐어요.”

“그래.. 또 그런 인연이 있구나. 진짜 축하한다.”


강식은 준수랑은 어찌 되었나 물어보려다 참는다. 어차피 잘 안되었다는 소문도 들은 터인데, 괜히 옛날 일은 물어 무엇 하나 싶다. 

“네. 그래서 결혼식에도 꼭 와주셨으면 하고..”

“그럼, 가야지. 사무실에도 이야기 했어?”

“네, 친한 사람들 몇 명한테는 이야기 했어요.”

“그래, 나도 같이 가서 얼굴 보면 되겠네. 날짜는 정해진 거지?”

“네. 4월 14일인가.. 그쯤 되구요..”


한참을 이야기하던 민영이 본론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결혼 이야기도 그런데, 사실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음, 그래. 민영아. 뭔데?”

“제가 주택을 잡지에 좀 내 보려구요. 기자랑은 컨텍이 되긴 했는데. 글을 맡길 사람이 없어서요. 바쁘시겠지만, 소장님한테 좀 부탁할까 해서.. 너무 바쁘실 것 같긴 한데..”


민영은 부탁하면서도 민망스럽다. 사실 강식은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건축가다. 민영 같은 초짜 건축가의 건물을 리뷰, 비평하기엔 소위 ‘급’이 안 맞긴 했다. 하지만 따로 부탁할 사람도 없고, 이왕이면 강식에게 글을 맡기고 싶은 게 민영의 솔직한 마음이다. 


“그래. 괜찮아 민영아. 신경 쓸 거 없어. 민영이가 사무실을 냈는데 그 정도는 도와줘야지. 글 써줄게. 걱정 하지마.”


민영은 뛸 듯이 기뻤다.

“진짜요? 와.. 소장님.. 진짜 감사드려요..”

“그래. 언제 가면 되는 거야? 현장은 한 번 보고 써야지.”

“그건 제가 소장님 만나 뵙고 자세히 말씀드릴게요. 소장님, 이번 주 언제 시간 되세요?”

“글세, 이번 주 스케줄 표 좀 보고..”


2주 뒤. 강식은 차를 몰고 00시로 향하고 있다. 민영의 주택을 둘러보기로 한 날이다.

‘날씨가 좋네. 오늘 준공 촬영도 같이 한다고 했는데. 사진 잘 나오겠네. 다행이다.’


현장에 도착하니 민영이 벌써 도착해있다. 

“어머, 소장님. 일찍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그래, 민영아. 일주일만이긴 하지만, 잘 지냈지? 결혼 준빈 잘 되가고?”

“네, 뭐 그냥 저냥 하고 있어요..”

“아, 저 친구인가보네. 안녕하세요.”


저만치서 훤칠한 청년 한명이 다가선다. 강식은 지훈을 처음보긴 하지만, 서글서글한 인상이 척 봐도 마음에 드는 청년이다.

“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강지훈이라고 합니다. 오늘 저희 집 보러 오셨다구요. 잘 부탁드립니다.”

“현장 소장 노릇까지 같이 하셨다고 하던데. 대단하시네요. 이게 모르는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닌데. 능력이 대단하신 것 같아요.”

“아닙니다. 할 사람이 없으니 제가 나서긴 했는데.. 어설픈 게 많았어요. 정말 힘들게 겨우 겨우 끝냈습니다. 잘 안된 것도 많고.. 민영씨가 많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절대 못했을 거에요.”

“왜요, 건물 엄청 잘 나왔는데. 민영아, 진짜 좋은데. 첫 작품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야.”

“에이, 왜 그러세요.. 소장님 보시기에 많이 어설프실 텐데.. 사실 좀 부끄럽긴 한데요. 아무튼 잘 부탁드릴게요.”

“그래, 아무튼 찬찬히 둘러봐야지. 사진작가 벌써 와서 찍고 있지?”

“아, 네.. 안 그래도 소장님이 소개 잘 해주셔가지고.. 작가 용역비를 소장님이 내 주셨다던데.. 진짜에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

“그 정도 가지고 뭘. 저 친구 알지? 우리나라에서 건축 사진 제일 잘 찍는 사람이야. 내 건물도 항상 맡기는 친구고. 알아서 잘 찍어줄 테니까 걱정 하지마. 그럼 들어가 볼까?”


강식은 대문 안으로 들어서서 건물을 찬찬히 둘러본다. 초보 건축가다보니 아직은 설익은 듯한 풋풋한 느낌도 분명히 있지만, 그것을 채우기 위해 그만큼 치열하고 열심히 연구하고 고민한 흔적이 곳곳에 묻어난다. 자신의 사무실에서 일하던 시절 민영에게서 받았던 느낌이 고스란히 건축에서도 배어나오는 느낌이다.


‘건축이라는 게 참 거짓말을 못하는 거구나. 설계한 사람의 생각이나 취향이 그대로 디자인에 묻어나니까.. 민영이라는 사람이 건축에서도 느껴지니 참 신기한 일이야. 남의 건물을 둘러보고 평가하는 것도 꽤 오랜만에 하는 일이지만.. 내 건축도 나 자신을 반영하는 거겠지. 앞으로 내 작업에 임하는 자세도 돌아봐야 하겠어..’


민영과 함께 집안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는데, 마당 저 멀리 테이블과 의자가 보이고 거기에 앉아 있는 한 중년 여성이 보인다. 


“저 분이 이 주택 건축주세요. 00기업 양수경 대표님이세요.”

“아.. 00기업.. 보석 파는 걸로 유명하지 않나? 자주 들어봤는데.. 어떻게 알게 된 거야?”

“그게.. 그냥 인터넷 보고 오셨다고.. 그 정도밖에 말씀 안 하셨어요.”

“아, 그래? 희한하네. 니가 홍보를 그렇게 열심히 하지도 않았을 텐데.”

“그러니까요. 참 신기한 일이었어요.”  


저 정도 되는 거물이 그냥 인터넷으로 찾고 이런 초짜 건축가를 찾아왔다고? 강식은 고개를 기웃거리게 되었지만, 아무튼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어 수경에게 다가간다.


“안녕하세요, 건축가 최강식입니다. 민영이 예전 사무실 소장이었습니다. 이 건물을 잡지에 낸다고 해서.. 글을 써주려고 둘러보려고 왔습니다.”

“네, 민영이.. 아니 설 소장님께 말씀 들었습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집이 참 좋네요. 땅에 착 가라앉은 게,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설 소장님이 설계 잘 해주신 덕분이죠. 정말 만족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능력 있는 건축가를 알아봐주신 덕분이죠. 민영이 대신해서 감사드립니다.”

“최 소장님 워낙 유명하시잖아요. 제 주변에서도 최 소장님께 건물 맡겼다는 사람 많았는데. 00기업 유 대표님이라던지..”

“아 유 대표님이요.. 하하. 워낙 잘 해주셔서. 그 분 사옥 올릴 때도 고생 많이 했습니다..”


강식이 워낙 최상위층의 부유한 사람들만 상대하다 보니 인맥도 그 쪽으로 많이 형성되어 있다. 수경도 그 부류에 속한 인물이다 보니 자연히 아는 사람들도 많이 겹치게 된다. 그런 저런 이야기로 한참이 흘러갔다. 

“아무튼 잘 보고 가세요. 글 잘 부탁 드리구요.”

“네, 알겠습니다. 건물이 워낙 좋으니, 특별히 잘 쓸 필요도 없이 있는 그대로만 쓰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수경을 뒤로 하고 강식은 다시 건물을 보기 위해 돌아섰다. 그 때 강식의 머리 속에 수경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얼굴인데.. 어디서 봤더라? 처음 보는 사람인데 처음 보는 느낌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 아냐. 분명히 어디선가 봤어. 어디였더라.. 아주 예전에.. 어딘가에서..’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얼굴을 찌푸리던 강식을 보고 민영이 물었다.

“소장님, 어디 불편하세요? 안색이 안 좋으세요.”

“아, 아냐. 아무 일도 아냐. 살짝 머리가 아팠네. 가끔 있는 일이야. 편두통이 있어서..”

“소장님도 나이가 드셔서.. 건강 잘 챙기세요.”

“그래, 좋은 것 많이 먹고 있어. 운동도 자주 해야 하는데.. 아무튼, 마저 볼까?”


사진 촬영과 답사를 마치고 강식은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올랐다.

“민영아, 오늘 즐거웠어. 오랜만에 신인 건축가의 좋은 건물을 보니 기분이 좋은데.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에이, 뭘 제 걸 보시고.. 놀리려고 그러시는 거죠?”

“아냐, 진심이야. 정말 잘 했어. 내 신인 시절도 생각나고.. 아무튼 좋은 구경 잘 했네. 글은 약속한 날짜까지 써서 보내줄게. 결혼 준비 잘 하고.” 


서울로 올라가는 차 안에서도 강식의 머리 속에서는 수경의 얼굴이 떠나질 않는다. 분명 어디선가 본 얼굴인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진짜 답답하네.. 누구더라. 어디서 보긴 봤는데..’








열린 설계와 소통으로 건축주, 시공사와 함께하는 건축을 만들어갑니다.


OPEN STUDIO ARCHITECTURE

글 쓰는 건축가 김선동의 오픈 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김선동

Kim Seondong

대표 소장 / 건축사

Architect (KIRA)

M.010-2051-4980

EMAIL ratm820309@gmail.com

www.openstudioarch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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