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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건축가 Sep 03. 2022

수습

건축소설: 내 집을 지어보고 싶습니다 # 25



카사 밀라(Casa Mila) - 안토니 가우디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근거지로 했던 안토니 가우디의 주택 작품. 자연의 선을 그대로 건축으로 가져왔던 그의 독창적인 건축 어휘가 유감없이 발휘된 걸작이다. 몬세라트 암벽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며, 그래서 별명이 채석장이다. 석재를 가공한 입면은 아름다운 곡선으로 마무리되었으며, 옥상에는 시그니쳐라고 할 수 있는 조형적인 굴뚝이 있다. 내력벽이 아닌 기둥을 사용하여 자유로운 평면과 입면을 구현하였고, 지하주차장을 시도하는 등 기술적인 시도들도 있었다. 



출처 : 단대신문(http://dknews.dankook.ac.kr)






목수 반장은 말이 나온 대로 보완 공사를 최대한 빨리 진행했다. 3일 만에 해당 내용을 다 해치우고 민영에게 사진을 보냈다.


“설 소장님. 말씀드린 대로 다 해놨어요. 사진 보냈으니까 한번 봐요. 별로 마음에 들진 않겠지만. 일단 넘어가고 준공 난 뒤에 다시 원상복구 해놔야지 뭐. 암튼 보시고 특검한테 보내시면 될 것 같아.”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반장님.”


민영은 보완 사진을 보고 한숨이 절로 나온다. 계단에 애써 해놓은 마감을 뜯고 억지로 난간을 달아 놓은 데다가, 테라스엔 보기 싫은 렉산이 덕지 덕지 붙어있다. 보기는 너무 싫지만, 일단 넘어가는 게 우선이다. 사진을 추슬러서 특검에게 이메일을 보낸다.


“건축사님, 저 얼마 전에 특검하신 주택 설계사무솝니다. 말씀하신 거 보완해서 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아.. 그래요. 내가 좀 바빠서.. 아무튼 고생하셨습니다. 빨리 보겠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흘러갔다. 아무런 소식도 없이 차일 피일 시간만 가니 민영은 피가 말랐다. 생각다 못해 특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건축사님.. 저 얼마 전에 특검하신 주택 설계사무손데요.. 어떻게 사진은 잘 보셨는지요..”

“아, 네. 그 주택이요? 사진은 잘 봤는데.. 음..”

“왜 그러시죠? 말씀하신대로 다 해놨는데요..”

“그게.. 직접 와서 설명 좀 해주시죠.”

“네? 설명이요?”

“사진으로만 봐선 잘 모르겠어서.. 정확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네요. 어떻게 조치를 했다는 것인지..”

“첨부한 글에 설명을 충분히 써 놓았는데요..”

“그것만으론 이해가 잘 안되네요. 아무튼 와서 설명 좀 해주세요.”


누구나 알아들을 만한 글로 설명을 잘 해놓았는데, 들어와서 설명을 하라니 민영은 기가 찼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돈 내놓으라는 거 같네요.”

사정을 들은 목수반장이 말했다.

“그런 뉘앙스가 맞죠?”

“네. 봉투를 못 받았으니 통과를 못시키겠다는 거 같습니다.”

지훈은 잔뜩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요새도 이런 사람이 있나요? 아 나.. 이거 어디 신고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목수반장이 말린다.

“일단 일이 커지기 전에, 봉투로 막을 수 있는 건 봉투로 막는 게 낫죠. 어디 말해서 이슈화가 되면, 이 사람 심기만 건드려서 처리가 끝없이 늘어질 수도 있어요.”

“우선 양 대표님께 사정을 알려드리고, 적당한 수준의 금액을 가져다 주는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소식을 들은 수경은 한숨을 내쉰다.

“진짜 요새도 그런 사람이 있군요.. 하 참. 그런 돈 나가는 건 진짜 아까운데. 일단 돈 백만원 정도 보내줄테니 그걸 들고 가보세요. 일단 처리가 되는 게 우선이니까.”

“알겠습니다. 일단 들어가서 잘 얘기해보겠습니다.”


다음날 민영은 특검의 설계사무실을 찾아갔다. 초인종을 누르려니 마음이 무겁다.

‘아, 이런 자리 진짜 싫은데.. 하는 수 없지. 어떻게든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하니까. 이런 것도 사회생활인가. 진짜 싫다..’

띵동~ 안에서 비서 같은 사람이 나온다.

“아, 안녕하세요. 건축사님 잠시 출타 나가셨는데. 좀 있다 들어오실 거에요. 저기 잠깐 앉아계세요.”


직원도 한 두명 밖에 없어보이는데, 어울리지 않게 비서는 왜 있지? 회계 같은 걸 하는 사람인가보다 민영은 생각했다. 워낙 오래된 옛날 건물이라, 80년대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 같다. 오래된 쇼파에 앉아 비서가 내온 드링크를 홀짝거린다. 


‘이렇게 오래된 건물에서.. 설계 일은 좀 들어오는 건가? 내가 남 걱정할 처지는 절대 아니지만..’


몇 분 뒤, 특검이 들어온다.

“아, 오셨어요? 오랜만이네요. 추운데 고생하셨네.”

“아닙니다.. 건축사님. 오랜만입니다.”


민영은 현장 사진을 쭉 펼쳐놓고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한다. 특검은 듣는지 마는지 건성 건성 고개를 가끔 끄덕거렸다.


“이렇게 해놨습니다.. 어떠신가요?”

“네.. 고생 하셨네요..”

특검의 표정이 심드렁하다. 결국 봉투를 줄 수 밖에 없겠구나. 민영은 민망하지만 눈을 질끈 감고 가방에서 봉투를 꺼냈다.


“이거.. 고생하셨는데 저희가 챙겨드리질 못해서..”

“아.. 뭐 이런 걸 다.. 이러시면 안 되는데요..”


특검은 못 이기는 척 봉투를 받아 주머니에 넣는다. 결국 원한 게 이런 건가..

“아무튼 알겠습니다. 잘 보고 처리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들어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네, 건축사님. 건축주님이 계속 기다리고 계셔서요.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봉투를 건네고 나오는 민영의 발걸음이 무겁다.

‘어찌 어찌 전달은 했는데.. 이 정도 금액이면 되는 건가? 주변에 물어봐도 이 금액이면 정말 많이 주는 거라고 했는데. 그리고 저 건축사는 해준다는 거야, 안 해준다는 거야? 돈 먹고도 안 해주면 정말 너무 하는거 아냐?’


그렇게 또 기약 없이 며칠이 흘렀다. 민영은 매일같이 세움터(인허가 관련 포털 사이트)를 들락거렸지만 처리되었다는 소식은 없었다. 또 특검에게 전화하기도 너무 눈치가 보이고.. 민영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고 안절 부절했다.


지훈의 전화가 왔다.

“민영씨, 어때요. 처리 됐어요?”

“아뇨.. 도통 소식이 없네요. 특검한테 다시 전화를 해야 할지..”

“하.. 참 답답하네요. 돈을 먹여도 그런다니.. 전화 한번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게요.. 이제 그냥 철판 깔고 계속 전화해야 할까봐요.”


민영은 맘을 크게 먹고 특검에게 전화를 건다. 

“아, 네 건축사님. 무슨 일이시죠?”

무슨 일인지 뻔한 건데, 이 특검은 참 뻔뻔하다. 아무래도 이런 일을 자주 벌여본 상습범이지 싶다.

“네. 특검 하신 것 처리가 안 되서.. 어찌 되고 있나 해서요.”

“아. 그거. 제가 좀 바빠서. 좀 기다리세요. 저도 제 할 일이 있는 거니까.”

특검이 일방적으로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 권한인데 뭘 재촉 하냐 이건가.. 이럴 땐 어떡해야 하나 민영은 막막해졌다. 


민영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전화를 걸었다. 이제 특검은 민영의 전화를 받지도 않는다. 아무래도 다른 대책이 필요할 것 같다. 지훈과 목수반장, 민영이 다시 모였다.


“이제 아예 전화를 받지도 않아요.. 어떡하면 좋죠?”

“돈은 돈대로 받아먹고, 아주 악질이네요.”

“돈을 더 달라는 걸까요?”

“이대로 계속 끌려가면 안되요. 더 주면 또 달라고 할 수도 있어요. 뭔가 다른 대책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담당 공무원에게 말해보면 어떨까요?”

“글쎄요.. 공무원이란 사람들이 이런 지저분한 일에 끼어들지 않으려고 해서.. 도움이 될지 모르겠어요.”


지훈이 나섰다.

“건축주가 나서서 이야기하면 뭔가 좀 다를지도 몰라요. 민원인 당사자니까. 전화로 하면 약하니까 직접 찾아가서 성토를 좀 해보겠습니다. 일단 공무원 찾아가 보고, 그것도 안 되면 특검 사무실에 가볼게요. 큰소리도 좀 질러보고 난리를 치겠습니다. 남자가 가면 좀 다를 거 아니에요.”


“음.. 일단 다른 방법이 없네. 그렇게라도 해보죠.”


지훈이 민영을 위로했다.

“민영 씨, 너무 걱정 말아요. 우리 엄마 인맥 장난 아니에요. 이런 거 무마시키려고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지금은 일단 지켜보자고 해서 안 나서고 계신 거에요. 정히 안 되면 엄마한테 이야기하면 될 거에요.”

“그런가요.. 그 뒤로 대표님께 말씀은 특별히 안 드리고 있는데..”

“제가 집에 가서 이야기 하고 있으니까 다 알고 계세요. 아무튼 제가 내일 구청 들어가서 공무원이랑 이야기 좀 해볼게요. 일단 저 혼자 가볼 테니까 민영 씨는 사무실에 계세요.”


다음날 아침 지훈은 구청으로 향했다. 







열린 설계와 소통으로 건축주, 시공사와 함께하는 건축을 만들어갑니다.


OPEN STUDIO ARCHITECTURE

글 쓰는 건축가 김선동의 오픈 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김선동

Kim Seondong

대표 소장 / 건축사

Architect (KIRA)

M.010-2051-4980

EMAIL ratm820309@gmail.com

www.openstudioarch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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