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과 채움
8월 페리도트(Peridot)의 노란색과 녹색의 조합은 미묘하다. 아쉬움과 기쁨이 함께하는 내 감정과 닮았다.
퇴사 후 가장 큰 변화는 카카오톡이다. 퇴사 초기 위로를 전하던 목사님, 선배 경영자들 이외에 거의 연락이 없다. 계속 울리던 개인 또는 단체 카톡은 소리를 멈췄고, 각종 브랜드들이 보낸 카톡만이 나의 관심을 끌기 위해 웅웅 소리를 낸다. 심심하기도 하지만 여유가 있어 좋다. 허전하기도 하지만 귀찮지 않아서 좋다.
회사에서 내 스케쥴러는 각종 회의로 빼곡했다. 계획된 스케줄 이외에도 중간중간 치고 들어오는 일 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큰 덩어리로 정리된 심플한 스케줄이 나를 안내한다. 공백들이 숨을 쉬게 한다. 말끔하게 비워진 스케쥴러에 새로운 스케줄이 자리를 잡는 시기다. 바쁨이 덕(德)이던 나에게 여유라는 선물이 생겼다.
엄두도 못 냈던 평일 여행을 두 달간 열심히 다녔다. 두 달간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내와 시간을 보냈다. 모든 것을 같이 했다. 45살, 43살 너무 늦게 만나서 서운했던 마음을 보상이라도 하듯 매일 붙어 있었다. 바쁨 대신 추억을 쌓는 시간이 되었다.
150이 훌쩍 넘던 혈압은 퇴사 후 140 미만으로 떨어져, 고혈압약 없이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혈압으로 인해 개운하지 않았던 머리는 맑아졌다. 건강한 스트레스 대신 진짜 건강이 찾아왔다.
직장을 벗어난 내게 여유와 새로운 추억과 건강이 찾아왔다. 하지만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다. 북적북적했던 사람들과의 만남이 그리울 때도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일어나도 해야 할 일이 명확했던 그때가 쉬웠다는 생각도 든다. 고온 고압에 눌려 만들어진 페리도트처럼 회사의 시스템과 나의 노력이 나를 임원으로 경영자로 성장시켰다.
이제는 스스로 고온 고압을 만들어야 한다. 여유롭지만 만만치는 않다. 내 선택과 내 행함으로 결과가 나오기에 누구도 탓할 수 없다.
나는 누구와도 같지 않다. ISTJ에 신중 안정형이다. 배움과 분석, 책임, 관계, 신중이 나의 강점이다. 조직에 잘 순응하기도 하지만 비판적이기도 하다. 음악과 살사댄스를 좋아하지만 잘은 못한다. 끈기는 있지만 시작하는 게 어렵다. 여러 명이 있을 땐 말을 잘 안 하지만 단둘이 있을 땐 말을 많이 한다. 한 회사에서 20년간 일했고, 임원으로 경영자로 있었다. 나는 그 누구와도 다르다.
내가 남과 다르다는 것은 태양이 사람에게 준 페리도트처럼 귀하다. 나만의 이야기를 쓸 수 있고, 나만의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 나는 나여서 좋다. 회사를 통해 성장한 경험은 값지다. 회사에 감사하다. 하지만, 회사는 나를 잊게 했다. 나의 장점과 열정을 회사를 위해서만 일했다.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내 아내는 이런 나의 앞길을 응원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라고 권한다. 나 또한 남들이 보기에 꽤 괜찮은 직장을 그만두고 교육 사업을 하는 아내를 응원한다. 서로서로 응원하는 우리 부부는 행복하다. 8월의 탄생석 페리도트는 부부의 행복을 의미한다.
퇴사는 동료들과의 소통, 바쁨이 주는 뿌듯함을 비워 버렸다. 빈자리에는 새로움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 아내와의 추억, 건강이 채워지고 있다. 특히, 나를 응원해주는 아내 때문에 더욱 용기 내서 나의 길을 갈 수 있다. 노란색과 녹색의 애매한 조합으로 미묘했던 내 감정은 아내의 응원 덕분에 진한 녹색을 띠는 최상의 페리도트로 변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