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야 보인다.
2021년 7월 5일 종영된 '신박한 정리'는 애청했던 TV 프로그램 중 하나입니다. 인테리어를 하지 않고 정리만 했음에도 많은 변화가 있어 신기하고도 놀라웠습니다. 실생활에서도 쓸 수 있는 여러 정리 팁들도 알려줘 유익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집 중 배우 오정연 씨의 집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오정연 씨의 집은 온갖 추억들로 가득했습니다. 발레를 배울 때 신었던 토슈즈, 학창 시절 수능 성적표, 아나운서 시험 때 입은 옷과 광고 입간판 등 추억을 간직한 물건이 많았습니다. 그 결과 오정연의 집은 복잡해졌습니다. 추억의 방은 원할 때 추억의 물건을 꺼낼 수 없는 방이 되었고, 게스트룸은 누구도 잘 수 없는 방으로 변했습니다.
오정연 씨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추억이 담긴 물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추억의 물건들을 다시 꺼내 보는 경우는 많이 없습니다. 추억의 물건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 새로 구매한 물건들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합니다.
지식이나 관습 (혹은 습관)도 추억과 비슷합니다. 과거에는 잘 사용되던 지식이나 관습도 시간이 흐르면서 잘 사용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잘 사용되지 않는 과거의 지식이나 관습이 계속 자리를 잡고 있으면 새로운 지식이나 관습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피터 드러커는 '지식은 4~5년마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조직은 기존 구조 관습 등 친숙한 것들을 체계적으로 폐기하는 것을 전제로 조직되어야 한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일하면서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지식이 계속 유효하지는 않습니다. 너무 옛날이야기지만 제가 어렸을 때 상업고등학교에서 다니는 형과 누나들은 주산 및 타자를 배웠습니다. 생각하면 우습지만 대학교 때는 이력서 만들기가 전산 과목의 첫 번째 과제였습니다.
시간이 변함에 따라 필요한 지식이나 관습이 달라집니다.
지식의 유효성을 감소시키는 건 시간뿐만이 아닙니다. 하는 일이 변하면 기존 지식의 유효성이 감소합니다. 팀원일 때 성과를 내던 사람 중에 팀장이 돼서는 성과를 못 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과를 낼 수 있는 팀장의 지식은 팀원의 지식과는 다릅니다. 팀장은 팀원들을 데리고 일합니다. 팀워크 만들기 및 코칭 지식이 추가로 필요합니다.
이렇듯 여러 이유로 지식과 관습은 유효기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 유효기간은 계속 짧아지고 있습니다. 유효한 지식을 지니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야 합니다.
그런데,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기 전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전 지식을 비우는 일입니다. 지식을 비운다는 의미는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겁니다. 즉, 내가 잘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일 열린 자세를 갖추는 겁니다.
물론 기존 지식 위에 쌓여야 효과를 발휘하는 새로운 지식도 있습니다. 하지만, 혁신적인 지식은 기존 지식 구조로는 이해가 안 됩니다. 물리학의 거장 아인슈타인도 기존 물리학적인 지식 때문에 불확정성의 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럼, 이전 지식을 비우고 새로운 지식을 채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 번째는 결심해야 합니다.
오정연 씨의 물건들을 정리하기 위해 '신박한 정리'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오정연 씨의 물건들을 필요, 욕구, 버림으로 나누는 일입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힘든 것은 '버리겠다'라는 오정연 씨의 결심이었습니다. 추억이 가득한 물건을 버리거나 나눔을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버리겠다'라는 결심이 선행되어야 물건을 분류할 수 있고 버릴 수 있습니다. 이 결심을 하지 못했다면 TV에서 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식의 비움 즉 내가 가진 지식이 틀릴 수 있다는 것과 내가 모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건 어렵습니다. 연차나 직급이 높을수록 더 힘듭니다. 하지만 비워야 새로운 것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비우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두 번째, 새로운 지식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가까운 곳에서부터 찾아야 합니다.
'신박한 정리'에서 집을 정리할 때 다양한 도구들을 사용합니다. 많은 추억이 담긴 종이들은 사진으로 찍어서 A4 파일에 정리하고 오래된 비디오테이프들은 디지털화했으며 신발은 커피 케리어로 정리해 부피를 줄였습니다. A4 파일이나 영상의 디지털화 커피 케리어 등은 어렵지 않게 구하거나 서비스 의뢰를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지식을 얻는 방법도 마찬가집니다. 예전과 비교해 지식을 얻을 방법이 많아졌습니다. 학교나 책 이외에도 온·오프 강의들이 많아졌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지식을 얻는 방법은 내 주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지식을 얻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다양한 채널에서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새로운 지식에 대한 욕심이 없다면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채널도 보이지 않습니다.
세 번째, 계속 노력해야 합니다.
'신박한 정리'를 통해 무질서했던 공간들의 잘 정돈됩니다. 이런 변화를 보면서 '얼마나 오래갈까?'라는 걱정이 생깁니다. 조금만 정리를 게으르게 하면 예전으로 돌아갑니다. 새로운 물건이 하나 들어오면 기존 물건 하나를 버려야 정리된 상태가 유지됩니다.
지식도 마찬가집니다. 꾸준히 지식을 새롭게 얻지 않으면 어느새 뒤처집니다. 오늘 열린 자세로 새로운 지식을 얻었다고 내일도 새로운 지식을 얻는 건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은 모두에게 시간은 똑같이 흐른다는 기존 물리학을 뒤집은 상대성이론을 발표했습니다. 시간에 대한 기존 지식을 버리고 새로운 지식을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물리학은 명확한 답이 있어야 한다는 기존 패러다임을 버리지 않아 불확정성의 원리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새로운 지식의 습득은 습관적으로 해야 합니다. 또한, 습득한 내용을 적용해보려고 애써야 내 것이 됩니다. 어느 곳에나 배울 것은 있습니다. 내 집을 매일 청소하고 정리하는 것처럼 내 지식도 최근의 상태로 잘 유지될 수 있도록 매일 고민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네 번째, 다르게 사용할 방법을 찾습니다.
정리한다는 것은 버리는 것만을 뜻하진 않습니다. 정리는 물건들이 가진 역할에 맞게 공간을 찾아 주는 것을 포함합니다.
'신박한 정리'에서 버리지 않은 오정연 씨의 물건들은 역할에 맞는 자리에 재배치됐습니다. 안방에 있던 책상은 별도의 작업실로, 추억의 공간에 있던 김치 냉장고는 주방으로 이동을 시켰습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지식도 기존과 다르게 쓰일 수 있습니다. 일할 때 쓰던 지식이 다른 사람을 가르치거나 글을 쓸 데 필요한 지식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내가 가진 지식을 다른 용도로 쓸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확실한 정리는 버리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버리지 않은 채 정리를 시작하면 극히 일부만 정리하거나 중도에 정리를 포기하게 됩니다. 가지고 있던 물건을 버려야 새롭게 필요한 물건이 보입니다. 또한, 가지고 있던 물건을 버려야 기존 물건 중을 재배치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지속적으로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고 습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행동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많이 없습니다. 기존 지식을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존 지식을 버리지 않으면 새로운 지식 습득의 필요성을 덜 느끼게 됩니다. 또한, 가지고 있던 지식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없습니다.
버리고 비워야 새롭게 채울 수 있는 것, 재배치할 것이 보입니다.